Mindfulness 에 대한 고찰

어떻게 mindfulness가 세상에 나오게 되었을까?

by 강가

서양에서, 특히 미국에서, mindfulness가 어떻게 소개 되었을까?


미국은 전세계 자본주의의 핵심이 되는 국가이다 (즉, 정부 개입 최소화). 이러한 경제 시스템은 경제학이라는 학문과도 그 흐름을 같이 해왔다. 최근 경제학의 흐름은, 행동경제학이 주류경제학을 대체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행동경제학자인 Dr. Daniel Kahneman, Dr. Richard Thaler등이 각 2002년, 2017년에 노벨경제학상을 받았다. 지금까지, 경제학은 사람의 행동이 아닌 경제학의 시스템에 초점이 맞춰져 온 것을 본다면 (정부 개입 등), 이 수상은 매우 이례적인 사례라고 볼 수도 있다.


이러한 경제학 흐름의 변화에는, 기존의 경제학 시스템적 사고로는 경제를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다고 인지하기 시작했기 때문일 수 있다. 1998년쯤 아시아를 강타한 IMF와 2008년 리먼브라더스 사태로 인한 금융위기는 특정 경제학자들과 기존의 경제학 모델의 입지를 좁히게 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기존의 이상적인 경제 모델적 사고로는 그러한 일이 발생하지 않았어야 했기 때문일까? 오래전, 보이지 않는 손에 대한 대안으로 케인즈 (John Maynard Keynes)의 수정자본주의가 나오고 그에 대한 대안으로 하이에크 (Friedrich Hayek)의 신자유주의가 각광을 받았다. 그리고 지금, 다른 모델이 필요한 시점이 온 것일까?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서 시장이 이상적으로 수요와 공급을 맞추어 나갈 것처럼 보이나,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정부가 적극적으로 시장에 개입하여도 모든 것을 완벽히 조절해 나가는 것 또한 쉽지 않다. 시장은 생각보다 그렇게 단순한 영역이 아니라는 것이 점점 입증이 되어 가고 있다. 최적의 경제학 모델은 상황과 환경에 따라 변한다. 그리고 무엇 보다, 경제의 핵심인 시장을 이루는 것은 사람이다. 많은 경우, 사람은 욕망에 의해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 시장의 기저에 깔려 있는 본질은 사람의 마음인 것이다.


그렇게 대안으로 경제학에 나온 것이 행동경제학적 사고방식이라 볼 수 있다. 사람의 행동을 연구하는 것이다. 즉, 더 깊이 행동을 이끄는 메커니즘이 무엇인지 연구 하는 것. 즉, 사회과학적 사고방식이 편입되었다고 할 수 있을까? 사회과학에서 가장 많이 연구되는 모델 중 하나는 TPB (Theory of Planned Behavior)이다. 의도를 이해하려고 한다. 의도가 행동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요소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대부분, 사람은 의도가 형성이 되고 행동을 하는 경향이 매우 강하다. 그것이, 외부로 드러나든지 혹은 드러나지 않든지 말이다


가장 널리 알려진 행동경제학의 프레임중 중 하나는 시스템1과 시스템2 사고방식이다. 시스템1이란, 무의식적 빠른 사고 모드다. 시스템2는 의식적이며 상대적으로 느린 사고 모드이다. 시스템1은 본능적이고 즉각적인 측면이 강하다. 따라서, 의식적인 측면이 많이 결여된 과정이라 볼 수도 있다. 무엇인가를 반복하게 되면, 많은 경우, 시스템2적인 사고방식도 이 시스템1적 사고방식을 따라가게 된다. 예로, 가던 길을 계속 가면, 주의 깊게 의식적 사고를 하지 않고 가게 된다. 이미 몸에 배어 있기 때문이다.


시스템1의 긍정적인 측면을 고려한다면, 이러한 각인된 활동을 우리는 전문화라고 이야기 하기도 한다.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자동적으로 무엇인가를 제안 한다. 이미, 동일한 혹은 비슷한 과정을 수 없이 반복되어 왔기 때문이다. 이러한 본능적으로 빠른 사고 방식이 현대에는 경쟁력으로 작용을 한다. 현대의 기술, 발전 등이 이러한 전문화에 기반한다고 볼 수도 있다. 현대에서의 중요한 발전 원동력 중 하나는, 각자 자신의 전문화된 영역을 극대화하여 시너지 효과를 발생시키는 것이다. 짧은 시간 내에 한 낙후된 도시가 마천루 빌딩으로 가득한 도시로 변모 된다. 이는 전문화의 산물이라고 볼 수도 있다.


허나, 이러한 시스템1 접근의 문제 (혹, 잠재적 문제) 중 하나는, 무의식적 사고의 전반적 전향일 것이다. 의식적으로 사고를 하지 않고 무엇인가를 본능적으로 그리고 습관적으로 하는 경우가 많게 될 수 있다. 따라서, 우리의 행동 기저에 깔려 있는 의도를 (흔히 말하는) 알아차림 하지 못하고 행동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를 ‘자동화 모드’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사람의 의식에 이러한 자동화 모드가 지배적이게 된다면, 사람은 정말 기계가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온 것이 mindfulness다. 이러한 흐름을 직접적으로 고려하여 mindfulness가 나온 것인지는 불투명하다. 하지만, mindfulness가 널리 퍼지게 된 배경에는 그만한 사회적인 니즈 (needs)가 저변에 깔려 있기 때문이기지 않을까? 따라서, mindfulness는 매우 시기적절하게 소개 된 처럼 보인다. 즉, 많은 부분에 있어, 의식적이지 않은 현대인들의 의식적 발란스를 맞추기 위한, 하나의 대안으로 나온 개념이라고 볼 수도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런데, 문제 (혹 잠재적 문제) 중 하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mindfulness 가 무엇인지 잘 모는것 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나의 경험에 따르면, 단순히 mind와 fulness가 합쳐진 언어적 해석으로는 마음을 가득 채운 듯한 그러한 인상을 심어줄 가능성이 높다. 아니면, 마음상태를 alert 해야 한다는 인식이 주어질 수 있다. 모르는 사람이 그 단어 자체만을 보고 이해하는 것은 쉽지 않다. 전문가의 해석이 필요하거나 다른 매개체의 추가 설명이 필요할 수 있다.


언어적인 해석과 설명으로 mindfulness를 이해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아무리 mindful, mindful 강조를 하여도, 한 사람의 의식수준이 변하기란 쉽지 않다. 특히, 동일한 환경, 동일한 행동패턴, 동일한 사고 방식 등, 아무 것도 변하지 않은 상태에서 단지 mindful이라는 언어와 개념을 배웠다고 해서 변화가 이루어 지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적절한 안내 없이는, 큰 부작용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


Mindfulness의 핵심은 언어, 논리, 해석, 설명이 아니라 실천 및 실행 그 자체다.


하지만 단순히 실행만 한다고 해서 모든 것이 해결이 되는 것 또한 아니다.


올바른 setting이 전제 되어야 할 것이다. Mindfulness를 함에 있어, 자신의 에너지 소비를 최소화 하며, 실행 할 수 있는 그러한 이상적인setting이 분명히 존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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