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세연 Feb 11. 2022

1. 골프를 시작하게 되는 계기

 ■ 에피소드 1: 한쪽만 있는 골프장갑

 

  1998 봄쯤으로 기억이 된다. 아침 회의가 끝나고 자리에 돌아오니 책상 위에 조그마한 선물꾸러미가 하나 놓여 있었다. 팀원 중 한 명이 옆 부서 박차규 과장이 호주 출장 다녀와서 가져온 선물이라고 하였다. 포장을 풀어보니 왼손 장갑 한 짝이 들어있었다. 이리저리 둘러보아도 오른손 장갑 한 짝을 도저히 찾을 수 없었다. 이 친구가 선물을 줄려면 제대로 줄 것이지 장갑을 한 짝만 주다니 하면서, 혹시 무슨 착오가 있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박차규 과장에게 전화를 했다.

  “박 과장 혹시 가방 안에 장갑하나 빠진 것 없어요? 아침에 놓고 간 선물 중 오른손 장갑이 없어서 전화를 했습니다.”  그러자 박차규 과장은

  “아니, 팀장님 그건 골프용 장갑인데요. 원래 왼손 하나밖에 없는 겁니다.”

  “오, 그래요?” 하면서 나는 슬며시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그날 이후 내 주변에서 골프 이야기만 나오면 이 이야기가 제일 먼저 가십gossip 거리로 올라왔다.  


  나이 마흔이 다 되어 사회생활도 10년을 넘어서자 친한 친구들을 만나면 심심찮게 골프 이야기가 나왔다. 일간 신문 스포츠 면에도 골프에 관한 내용이 꾸준히 기사화되어 나의 관심을 자극하고 있었다. 이즈음 내가 골프를 시작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것은 1998년 7월에 US 여자오픈대회에서 박세리 선수가 우승한 것이 촉매가 되었다. 연장전 18번 홀에서 박세리 선수가 신발을 벗고 물속에 들어가서 샷 하는 장면을 TV를 통해 라이브 중계로 보면서 골프에 대한 환상과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되었다. 그날 우승으로 박세리 선수가 월드스타가 되자, 나와 성이 같고 가운데 돌림자도 ‘세’ 자여서 나는 ‘세리 오빠’라는 별명을 추가로 얻게 되었다.

박세리 선수가 1998년 US여자오픈 연장전 18번 홀에서 연못에 종아리가 잠긴 상태에서 트러블 샷을 하는 장면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1998.7.6.) 


  여하튼 골프 문외한이었던 나를 보고, 먼저 경험한 선배들이 이구동성으로 한 마디씩 하였다. 

  “허리가 돌아갈 때 배우는 것이 좋아.”

  “평생 할 수 있는 운동은 골프밖에 없어.”

  “나이 들어 체면상 칠 수밖에 없을 때는 못 배운 걸 후회하지.”

  “초록 필드에 나가보면 생각이 달라질 걸.”

  그래 한번 배워보자. 배워서 남 주는 것도 아니라는 생각으로 결심을 굳히고, 어떻게 하는 것이 가장 골프를 배우는 지름길인지를 아는 사람 중심으로 여기저기 물어보았다. 골프를 이미 치고 있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생각만 하다가는 안 돼, 무조건 저질러 놓고 보는 거야”라는 조언을 했다. 며칠 후 나는 퇴근하자마자 바로 집 앞에 있는 골프연습장에 가서 3개월 회원으로 등록하였다.


 ■ 에피소드 2: 실패로 끝난 마흔 살의 시도


  골프연습장에 등록을 하자 주위에서 "이왕 골프를 배우기로 하였다면 본인 클럽을 한 세트 가지고 있어야 한다"라고 이야기를 하였다. 그런데 나의 월급으로는 클럽을 사는 비용이 만만하지 않았다. 당시에는 골프클럽을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였고 골프에 대한 인식이 호화사치 운동으로 간주되어 골프클럽에 특별소비세와 수입관세가 많이 부과되어 가격이 매우 비싼 편이었다. 해외출장이라도 나가게 되면 드라이버 좋은 것 하나 사서 관세를 물지 않으려고 중고채로 둔갑시켜 가지고 들어오는 것이 자랑스러운 영웅담이 되었다. 초보자로서 중고채 정도 적당한 수준에서 마련해보려고 이런저런 궁리를 하고 있던 차에 어느 날 김찬호 부장이 나를 불렀다.  

   “박 팀장 요새 골프에 입문했다던데, 오늘 아침 신문을 보니 M사가 국산화에 성공하여 클럽을 수출도 하고 초보자가 쓰기에 적당한 것 같은데, 참고하세요”하면서 신문광고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지난 주말 이 회사 드라이버를 쳐 볼 기회가 있었는데 반발력도 좋고 쓸 만하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신문광고를 오려서 집으로 가져와 여러 가지 고민을 한 후, 수입품 대비 가격이 매우 저렴해서 가성비가 있어 보여 이 기회에 클럽을 장만하자는 생각이 들어 M사에 전화를 했다. M사는 주문제작을 하므로 나의 체중, 신장, 그리고 일천한 나의 골프경력 등을 묻고 대금 송금이 끝나면 제작에 들어가 3주 후에 받을 수 있다고 했다. 3주쯤 지난 어느 날, 퇴근을 하고 집에 가니 골프채가 택배로 도착해 있었다. 기대하던 클럽을 받은 기쁨으로 포장을 풀고 드라이버, 우드, 아이언 세트를 순차적으로 하나씩 확인을 하였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발견되었다. 드라이버와 5번 우드는 정상적으로 있었다. 그러나 아이언 세트는 주문 당시 9개인데,  총개수는 맞으나 1번과 2번 아이언은 없고 5번과 9번 아이언은 2개씩 들어있었다. 참 이상하다 싶어서 M사에 전화를 했다.

   “여보세요, 저는 귀사의 골프채를 구입한 사람입니다. 아이언세트가 잘못 배송된 것 같아 문의를 드립니다”라고 하면서 내가 확인한 내용을 이야기했다. 그러자 전화를 받는 여직원이 웃는 목소리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선생님, 원래 아마추어 골프 아이언세트는 1번과 2번이 없고 3번에서 9번까지 7개가 있습니다. 그리고 선생님이 이야기하신 것 중에 영문 ‘S’ 자와  영문 ‘P’ 자가 고딕으로 표시되어 혼돈되신 것 같은데, S는 '5'가 아니라 샌드웨지의 약자이고, P는 '9'가 아니라 피칭웨지의 약자로 총 9개가 맞습니다.”

  이 말을 듣고 다시 확인을 해보니 실제로 여직원이 하는 말이 맞았다. 

  "아! 네, 맞습니다. 제가 착각을 했나 봅니다. 설명 감사합니다." 수화기를 내려놓았지만, 수화기 저 너머에서 그 여직원의 웃는 모습이 내 눈에 선하게 그려지는 순간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새로 장만한 골프채로 다음날부터 열심히 골프를 배우려고 노력을 하였다. 그러나 잦은 야근으로 인해 불규칙한 연습 기회가 흥미를 잃게 만들었고, 아직 절박하지 않다는 내면과의 타협이 석 달 동안 열대여섯 번 정도 연습장에 나가고는 배우기를 그만두었다. 

 

 ■ 마흔여덟에 다시 시작한 골프


  어떤 일이나 행동을 시작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계기가 있어야 한다. 살이 쪄서 체중이 많이 나가 배 나온 것이 보기 싫고, 기존의 옷도 몸에 맞지 않아 고민이 생기거나, 혹은 건강에 적신호가 켜져서 살을 빼야 할 때 운동을 시작하거나 다이어트 식단으로 체중을 조절하는 계기가 되는 것이다.

  SBS ‘힐링캠프, 기쁘지 아니한가’에 박인비 프로가 출연해 자신이 오늘날의 골프여제가 된 계기를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였다.(경기일보 2013.9.3.) 

  “가족 모두가 골프광이다. 어릴 때부터 골프를 하라고 권유를 많이 받았고 골프장에 억지로 데려갔는데, 재미없어서 안 한다고 하다가 박세리 선수가 US 여자오픈에서 우승하는 걸 보고 시작했다.”

제74회 US여자오픈이 열리는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컨트리클럽 오브 찰스턴에 전시된 역대 우승자. 왼쪽에서 네 번째가 박세리 선수이다.(연합뉴스 2019.5.29)

 

  마흔 살에 시도하다가 바로 그만둔 골프를 8년이 지난 2006년쯤에 다시 시작하고자 마음을 먹었다. 당시 마흔일곱의 대기업 부장급 나이는 향후 몇 년 안에 임원 승진을 앞둔 중요한 시기였다. 이미 주위에 동료나 친한 분들이 대부분 골프를 하고 있었고 대화중에 은근히 나에게 골프 치는 것을 권하기도 하였다. 

  그중 가장 와닿는 말이 “임원이 되기 위해서 골프를 배우는 것이 아니라 임원이 되고 나서도 골프를 치지 못하면 잘 어울릴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해석을 덧붙이면, 모임과 교제의 폭이 제한되고 중요한 업무나 비즈니스에 있어서 상대방 안에 있는 깊은 생각을 읽을 수 있는 기회가 줄어든다는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5시간 내외의 긴 라운딩 시간을 같이하므로 평소에는 언급하기 어려운 인간관계, 업무능력, 가족관계, 음식과 취미  등 여러 가지 정보를 공유할 수 있다고 하였다. 이러한 권유가 나로 하여금 다시 골프를 시작하도록 하는 계기가 되었다.   

  골프연습장에 3개월 회원 등록을 하면서 지난번과 같이 중도에 그만두지 않기로 단단히 마음을 먹었다. 아내는 작심삼일에서 멈추지 말라고 하면서 신형 골프클럽 선물로 나를 격려해주었다. 


 ■ 일반적으로 골프를 시작하게 되는 계기


  취업포털 인크루트가 2021년 직장인 564명을 대상으로 최근 인기 급상승 중인 골프에 대한 직장인 관심도와 이들의 골프 시작 계기(중복응답)를 물었다. 가장 많은 응답은 동료와 상사 포함 비즈니스 관계자의 권유(43.2%)로 자의보다 타의로 인한 시작이 절반 가까이 됐다. 다음으로는 골프가 재미있어 보여서(33.7%), 운동을 하고 싶어서(27.9%), 가족 권유(20.0%), 직업상 필요(17.9%) 등이 뒤를 따랐다.(파이낸셜뉴스 2021.11.1.)

  이와 같이 직장에서는 타의에 의해 골프를 배워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고 하는 사람들이 약  43%인데, 이유인즉슨 상사, 거래처 등과의 관계를 향상해 업무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도록 하는 데 목적이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산업 및 조직심리학자인 빅터 브룸Victor H. Vroom은 "인간이 어떤 행동을 하려고 할 때 그 행동에서 자신이 어떤 결과를 얻을 것인가를 기대하고 그 기대에 따라 행동의 실행 여부를 결정한다"라는 '기대이론 expectancy theory'을 제안하였다.(네이버 지식백과 2022.2.10.열심히 일을 하면 성과를 내고 성과에 따른 승진이나 연봉 인상과 같은 보상이 있을 것을 기대하여 동기부여가 된다는 이론으로, 골프를 배움으로써 인간관계를 넓히고 이것이 본인의 직무 수행에 있어 도움이 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골프를 하게 되는 계기가 되는 것으로 이는 기대이론이 지지하는 바와 같은 측면이 있다.

 

  (주)골프존이 2017년 국내 골프인구 조사 결과, 국내 골프인구는 469만 명으로 6년 연속 연평균 11.6%의 성장률을 나타내며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무엇보다 최근 1~2년 사이 신규 골퍼 유입 비중이 34.0%로 증가하며 골프인구수가 늘어났다. 이러한 구력 2년 이하 신규 골퍼들의 골프 이용 현황을 보면 스크린골프장 이용 비율이 85.5%로 가장 높고, 스크린골프장만 이용하는 이용 비율도 59.1%로 가장 높게 조사됐다.(충청뉴스 2018.4.12.)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말이 있듯이 친구와 함께 스크린 골프장에 따라가서 골프에 끌려 입문을 하게 되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은 것 같다. 골프는 막연히 관심이 생겨 혼자서 시작하기는 쉽지 않은 운동이다. 필자처럼 주변에서 아는 사람들이 같이 권유하거나 혹은 덩달아 다니다가 시작하게 되는 경우가 흔하다. 특히 최근에 스크린골프의 활성화와 실재감 있는 환경 구성으로 예전보다 시작하기에 비용 부담이 적고, 스크린골프장에서 회식 등을 진행하는 문화가 새롭게 생겨나면서 MZ세대 사이에서도 골프에 대한 관심을 증대시키게 되었다고 생각된다. 


  마지막으로 골프를 시작하게 되는 계기 한 가지를 더 이야기하자면, 골프 대중화에 영향을 받는 부분이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한국 골프선수들의 세계적인 활약으로 골프에 대한 대중적 관심과 인지도를 높인 부분이 있다. 특히 미국 여자프로골프협회LPGA 대회에서 한국 여자선수들이 보여주는 활약은 실로 대단하다. 월요일 아침에 밤잠을 설치면서 생중계 방송을 봤다는 이야기를 주변에서 자주 하는 것을 보면, 골프에 대한 관심 증대와 대중화에 상당한 기여를 하였다고 본다. 

  또한 방송이나 인터넷 등을 통하여 골프를 쉽게 자주 접할 기회가 많아서 한 번쯤 배워보고 싶은 운동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일 수도 있다. 어느 정도 나이가 들고 사회생활을 하는 중장년층 스포츠로만 여겨지던 골프가 젊은 층에서도 호응을 얻으면서 각 방송사는 다양한 골프 예능프로그램을 선보였다. 2021년 5월 TV조선 ‘골프왕’을 시작으로 JTBC ‘세리머니 클럽’, MBN ‘그랜파’, SBS ‘편먹고 072(공치리)’, MBC '전설끼리 홀인원' 등 다양한 콘텐츠의 골프 예능프로그램이 생겨났다는 것이 이를 반증하고 있다. 


*각주: 에피소드 1, 2는 필자가 쓴 에세이 집 '부장님 댁이 어딥니까?'(1999)에서 일부 내용 인용.






















작가의 이전글 경케한 골프 "목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