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유 《사설》이 공자를 꺼내 든 이유
한유(韓愈)가 《사설(師說)》에서 공자를 꺼내 든 것은, 성인이라 하여 홀로 완성되는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가장 날카로운 방식으로 증명하기 위해서였다. “성인에게는 일정한 스승이 없어서, 공자는 담자(郯子)·장홍(萇弘)·사양(師襄)·노담(老聃)을 스승으로 삼았다.” 이 한 문장이 《사설》의 심장이다.
공자는 담자를 찾아가 소호씨(少皞氏)의 조관(鳥官) 체계, 즉 새 이름으로 관직을 삼던 고대 제도를 물었다. 장홍(萇弘)에게서는 예악(禮樂)의 이치를 배웠고, 사양(師襄)에게서는 거문고를 익혔으며, 노담(老聃) 앞에서는 예의 근본을 질문하였다. 공자가 배움을 의탁한 방식은, 한 사람에게 전부를 맡기는 귀의(歸依)가 아니었다. 분야마다 먼저 깨친 자를 찾아가, 그 전문(專門)만을 가져오는 방식이었다.
담자의 무리가 공자보다 깊은 인물이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어떤 한 문제 앞에서는 공자에게도 그들에게 배울 것이 있었다. 한유는 바로 이 사실에서 논리를 세운다. “제자가 반드시 스승만 못한 것도 아니고, 스승이 반드시 제자보다 나은 것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명망이나 지위가 아니라, 누가 어떤 도를 먼저 들었고 어느 학술에 정통하였는가 하는 점뿐이다.
공자는 일찍이 말했다. “세 사람이 길을 가면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 한유는 이 말을 이어받아, 스승과 제자의 관계란 위아래의 고정된 서열이 아니라 도(道) 앞에서 끊임없이 뒤바뀔 수 있는 살아 있는 질서라고 선언하였다.
결국 《사설》이 공자를 통해 말하고자 한 것은 이것이다. 참으로 큰 사람일수록 배움을 부끄러워하지 않으며, 참된 배움은 한 사람의 권위에 기대지 않고 각자의 전문과 장처(長處)를 알아보는 데서 비로소 시작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