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의 민족
색의 위계: 우주의 질서를 입다
색은 원래 예쁜 것의 문제가 아니었다. 먼저 질서의 문제였다. 누가 어떤 자리에 있는지, 누구에게 어디까지 허락되는지, 그 보이지 않는 선을 눈에 보이게 만드는 방식이었다. 고대 사회에서 옷의 색은 취향보다 규범에 가까웠다. 옷은 누구나 입지만, 아무 색이나 입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어떤 색은 하늘과 땅의 이치를 등에 지고 있었고, 어떤 색은 권력과 얼마나 가까운지를 드러냈다. 사람은 옷을 걸쳤지만, 사실은 자기 신분과 세계관을 함께 걸치고 있었던 셈이다.
동양에서는 이 감각이 더 분명했다. 색은 단순히 눈에 보이는 빛깔이 아니라, 음양오행이 몸 바깥으로 드러난 형태였다. 청·적·황·백·흑의 오방색은 그저 색 이름이 아니었다. 동과 서, 남과 북, 그리고 중앙. 봄과 여름, 가을과 겨울. 자연의 순환과 공간의 질서가 색 속에 들어 있었다. 그러니 복색은 장식이 아니라 일종의 언어였다. 그 사회가 우주를 어떻게 이해하는지, 또 인간의 자리를 어떻게 나누는지 보여주는 언어 말이다.
황색은 그 질서의 가장 높은 자리에 놓였다. 중앙과 토를 상징하는 황색이 군주권, 더 정확히는 황제권과 결합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중심이라는 뜻 자체가 이미 다르다. 세계의 한가운데, 질서의 축, 권위의 원점. 그런 상징이 황색에 붙었다. 조선에서 왕이 붉은 곤룡포를 입던 체계가 대한제국 선포 이후 황색으로 이동한 것도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옷 한 벌의 색이 바뀐 것이 아니다. 권력의 이름이 달라졌고, 스스로를 놓는 자리도 달라졌다는 선언이었다.
서양에도 비슷한 감각은 있었다. 다만 그 색이 황색이 아니라 자주색이었다. 고대 로마에서 티리안 퍼플은 너무 비쌌고, 너무 희귀했고, 그래서 더없이 정치적이었다. 누구나 가질 수 없는 색은 결국 누구나 범접할 수 없는 사람의 색이 된다. 동양의 황색과 서양의 자주색은 상징 체계는 달라도 한 가지에서는 만난다. 최고 권력은 늘 가장 드문 색을 통해 자신을 시각화한다는 점이다.
청색은 조금 다르다. 정점의 색이라기보다, 다가올 시간을 품은 색이다. 동쪽, 봄, 목의 기운. 아직 무르익지 않았지만 분명히 자라나는 힘. 그래서 청색은 젊음과 가능성을 뜻했다. 조선에서 세자가 아청색 계열의 복색을 입은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읽을 수 있다. 그는 아직 왕이 아니지만, 이미 평범한 사람의 자리에는 있지 않다. 현재의 권력이 아니라 예비된 권력, 완성되기 전의 중심. 청색은 그런 미완의 위엄을 드러내는 색이었다.
백색은 더 복잡하다. 그래서 더 흥미롭다. 흰색은 쉽게 순결, 정결, 신성함을 떠올리게 한다. 인도의 브라만, 가톨릭 전통 속 교황의 흰 복색도 그런 상징을 뒷받침한다. 그런데 한민족의 백의는 그렇게 한 줄로 정리되지 않는다. 이 흰옷에는 여러 층위가 겹쳐 있다. 빛을 숭상하던 오래된 감각도 있고, 화려함보다 절제를 높이 본 미의식도 있다. 동시에 염색 기술과 비용의 문제, 생활의 현실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니 백의를 두고 무조건 고결함만 말하는 것도, 반대로 가난의 표지로만 읽는 것도 둘 다 부족하다.
흰옷은 현실이면서 이상이었다. 살림의 형편이 스며 있는 색이면서도, 그 안에 스스로를 단정히 지키고 싶어 하는 마음이 들어 있었다. 신분 질서의 흔적도 있었고, 생활 윤리의 표정도 있었다. 한민족의 백의 전통이 오래 기억되는 이유도 아마 거기에 있을 것이다. 흰색은 비어 있는 색처럼 보이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많은 뜻이 들어간다.
결국 복식의 역사는 유행의 기록이 아니다. 한 사회가 권위와 도덕을 어디에 놓았는지, 무엇을 높고 낮다고 여겼는지, 인간을 어떤 질서 속에 배치했는지를 보여주는 기록이다. 사람은 옷에 색을 입혔지만, 그 색은 다시 사람의 자리를 규정했다. 그러니 색의 위계를 읽는다는 것은 단지 아름다움의 취향을 읽는 일이 아니다. 그 시대 사람들이 세계를 어떻게 이해했고, 그 안에서 자신을 어디에 놓았는지를 읽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