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만길 시인 아름다운 세상 한쪽 평론
아름다운 세상 한쪽
문학박사/시인 허만길
남극은 차가워도 하얀 빛깔로
세상을 아름답게 빛냅니다.
북극별은 아련히 멀리 있어도
온갖 만물의 꿈을 변함없이 지켜줍니다.
꽃 피는 봄의 숨소리에
꽃벌레는 꽃의 품에 안겨 행복합니다.
착한 사람들은 세찬 비바람에도
더 아름다운 세상을 위해
노래하며 열심히 땀흘립니다.
더 높은 보람의 아름다운 세상을 위해
참된 부모는 자식에게 따뜻한 희생을 베풀고
참된 스승은 제자에게 성심 어린
가르침을 아끼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사는 세상은
아름다운 모습을 이어갑니다.
더 높이 이어갑니다.
그래서 우리가 사는 세상은
꽃빛 맑은 하늘을 바라보며
사람과 바람과 바다와 산이 함께 모여
아름다운 이야기가 됩니다.
이름다운 삶과 세상을
더 좋게 일구려는 노력 저쪽
여기저기 어느 한쪽에서는
착한 이의 마음을 두려움으로 흔들고
착한 이의 희망을 슬픔으로 찢어놓기도 합니다.
여기저기 어느 한쪽에서는
부모의 희생의 소망을 망상으로 만들고
스승의 성심을 업신여기려 합니다.
전쟁의 잿더미가 딩굴고
악의 날개가 제 세상인 듯
아름다운 삶 아름다운 세상을 파괴합니다.
그 밑바닥에 착하지 못한
악마의 마음이 있습니다.
여기저기 어느 한쪽에서는
간악한 배은망덕과 교활한 이기주의와
잔인한 모함과 교묘한 착취와 극악한 살상과
종교를 내세운 비종교적인 악행의 얼굴이
머지않아 지옥 속에서 울부짖으며
기약 없이 고통받을 스스로의 영혼을 외면한 채
착한 마음씨와 아름다운 세상을
망가뜨리는 죄악을 저지르고 있습니다.
악한 마음씨의 악한 모습들이여
한사코 악마의 길로 들어서는 자들이여
너희는 인간과 세상을 고통스럽게 하고도
통쾌하게 웃으려고만 하느냐.
너희로 말미암아
지금 고통받는 사람과 세상은 따로 있는데
너희로 말미암아
이미 고통받은 사람과 세상은 따로 있는데
끝내는 하느님 살려 주세요
끝내는 부처님 자비를 베푸소서
외치기만 하면 빌기만 하면
이미 저지른 죄악의 사슬에서
온통 자유로울 수 있으리라 믿느냐.
절대 진리의 심판과
절대 진리의 인과응보가
너희가 지닌 장난감처럼
힘없이 흐느적거릴 것이라 믿느냐.
착한 마음씨 착한 예의 착한 정의로
착하게 열심히 살아온 존재들의
하늘 오르는 찬란한 모습이 떠오르지 않느냐.
(월간 한국국보문학 2026년 3월호), 52~55쪽
선과 악의 이분법과 설교적 서정
― 허만길 「아름다운 세상 한쪽」에 대하여
허만길의 「아름다운 세상 한쪽」은 제목이 암시하듯 세계의 양면성에 대한 윤리적 성찰을 시적 언어로 형상화하려는 작품이다. 시는 남극, 북극별, 꽃과 벌레 같은 자연 이미지를 통해 ‘아름다운 세상’의 질서를 제시하고, 이어 전쟁과 악마, 배은망덕과 살상이라는 어휘를 통해 ‘파괴되는 세상’을 대비한다. 전반부와 후반부는 명확한 가치 대립 구조를 이루며, 시 전체는 선과 악의 충돌이라는 윤리적 도식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이 작품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도덕적 지향성의 분명함이다. 시는 망설임 없이 ‘착한 사람들’, ‘참된 부모’, ‘참된 스승’을 긍정적 가치로 제시하고, 그 반대편에 ‘악마의 마음’, ‘간악한 배은망덕’, ‘교묘한 착취’를 배치한다. 가치 판단은 모호하지 않으며, 시적 화자는 윤리적 기준을 독자에게 명확히 제시한다. 이러한 태도는 독자에게 정서적 안정감을 준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분명히 규정되는 세계는 도덕적 확신을 공유하려는 독자층에게 일정한 공감과 위안을 제공한다.
그러나 바로 그 지점에서 시적 긴장은 약화된다. 선과 악이 복합적으로 얽히는 인간 현실의 모순이나 회색 지대는 거의 탐색되지 않는다. 악은 전적으로 외부화되어 있고, 선은 전적으로 정당화된다. 결과적으로 이 작품은 세계를 해석하기보다는 선언한다. 시적 질문이 열려 있다기보다, 도덕적 답변이 이미 준비되어 있다. 현대시가 지향하는 다층적 의미 생성이나 아이러니, 모순의 내면화와는 거리가 있다.
이미지 운용 또한 특징적이다. 남극의 흰 빛, 북극별, 꽃과 벌레, 전쟁의 잿더미, 악의 날개 등은 직관적으로 이해 가능한 상징들이다. 그러나 이 상징들은 새로운 맥락 속에서 재해석되기보다는 관습적 의미를 그대로 유지한다. 남극은 순수, 북극별은 희망, 전쟁은 파괴라는 도식이 반복된다. 이미지가 독립적인 상상력을 촉발하기보다는 메시지를 보조하는 장치로 기능한다는 점에서 상징의 확장성이 제한된다.
언어적 측면에서 보면, 형용사 중심의 가치 규정이 두드러진다. ‘아름다운’, ‘착한’, ‘악한’, ‘참된’이라는 수식어는 시 전체를 지배한다. 이러한 반복은 주제 의식을 강화하지만, 동시에 시적 밀도를 낮춘다. 시적 언어는 통상적으로 의미를 압축하고 함축을 통해 여운을 남기지만, 이 작품에서는 의미가 비교적 직접적으로 전달된다. 특히 후반부의 “간악한 배은망덕과 교활한 이기주의와 잔인한 모함과 교묘한 착취와 극악한 살상”이라는 구절은 리듬감은 있으나, 시적 응축보다는 선언적 나열에 가깝다. 이로 인해 작품은 점차 산문적 호소문에 가까운 분위기로 이동한다.
종교적 어휘의 사용도 주목할 만하다. “하느님 살려 주세요”, “부처님 자비를 베푸소서”라는 구절은 절대적 심판과 인과응보에 대한 신념을 드러낸다. 이는 시의 도덕적 세계관을 강화하는 동시에, 작품을 신앙적 고백의 영역으로 이동시킨다. 그 결과 시는 미학적 긴장보다는 윤리적 경고와 설교의 성격을 띠게 된다.
결국 「아름다운 세상 한쪽」은 미학적 실험이나 언어적 혁신을 지향하는 작품이라기보다, 가치 선언과 도덕적 호소에 방점이 찍힌 서정시로 평가할 수 있다. 시적 감동은 이미지의 참신성이나 표현의 압축에서 나오기보다는, 선과 정의에 대한 확신에서 비롯된다. 이 작품은 독자를 사유의 모호성 속으로 끌어들이기보다, 분명한 윤리적 입장 위에 세워 두려 한다.
따라서 이 시의 문학적 성취는 메시지의 명료성에 있으며, 한계 또한 그 명료성에 있다. 선과 악의 구도가 더욱 복합적으로 다뤄지고, 이미지가 설명의 기능을 넘어 독자적 생명력을 획득할 때, 이 작품은 보다 높은 시적 긴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김희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