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에 붙인 이야기

외모 콤플렉스

by 김희곤


알랭 드 보통은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에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얼굴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그 얼굴에 붙인 이야기를 사랑한다고. 특정한 각도, 특정한 빛 아래, 특정한 순간의 표정, 그것은 물리적 사실이 아니라 해석의 산물”이라고.


나는 그 말을 읽으며 한참 생각했다. 그렇다면 내 얼굴도 누군가에게는 하나의 이야기가 될 수 있을까? 보통의 표현을 빌리자면, 외모란 욕망이 입힌 금박이다. 연애 초기의 눈에 비친 얼굴은 사실의 묘사가 아니라 감정이 덧씌운 과잉 해석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완벽하지 않은 얼굴이야말로, 오히려 더 많은 이야기를 품을 수 있는 것 아닐까.


나는 스스로를 달랬다. 완벽한 외모는 보는 사람에게 단 하나의 결론만 허용한다. ‘예쁘다’, ‘잘생겼다’ .그것으로 끝이다. 어떤 상상을 하든 결론은 이미 정해져 있다. 완벽함에는 일종의 독재가 있는 셈이다. 반면 나 같은 불완전한 얼굴은 해석의 자유를 준다. 같은 얼굴을 바라보더라도 각자의 방식으로 매력을 발견할 수 있다. 물론 이것이 정신 승리라는 것쯤은 나도 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그냥 완벽한 외모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알랭 드 보통(Alain de Botton)이 뭐라 하든, 스탕달(Stendhal)의 결정화(crystallization)가 어쩌든, 그런 논리와는 별개로, 그냥 한번쯤은 그랬으면 싶다. 조금만 일찍 태어났더라면 압구정에서 싹 고쳐볼 수도 있었을 텐데. 거울을 볼 때마다 그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