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수패설成守稗說》
“卵上加卵(난상가란)”이라는 말은 문자 그대로는 “알 위에 또 알을 더한다”는 뜻이다. 상식적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둥근 알은 서로 포개지지 않는다. 그래서 이 표현은 대개 같은 말을 되풀이하거나, 이미 충분한 사실 위에 불필요한 덧붙임을 하는 경우를 빗대는 말로 쓰인다. 말하자면 중언부언(重言復言)의 형상화다.
그런데 조선 후기 한문 소화집 《성수패설成守稗說》에는 이 불가능한 말을 전혀 다른 결로 비틀어 놓은 짧은 이야기가 실려 있다.
어느 집에 억울하게 옥에 갇힌 남편이 있었다. 죄는 가볍지 않았고, 풀려날 가망도 희박했다. 집에는 남편을 기다리는 부인 하나뿐이었다. 그녀는 날마다 작은 소반 위에 계란 두 알을 나란히 올려놓고 통곡했다. 아침에도 울고, 밤에도 울었다. 그러면서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포개지게 해주소서. 이 알 위에 이 알이 포개지게 해주소서.”
둥근 알이 둥근 알 위에 얹힌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보는 이가 있다면 헛된 짓이라 혀를 찼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멈추지 않았다. 계란을 포개달라는 기도는 사실 남편의 억울함이 풀리기를 바라는 염원이었다. 서로 겹치지 않는 두 알처럼 갈라진 삶이 다시 하나로 이어지기를 바라는 간절함이었다.
마침 그 무렵, 임금이 민정을 살피겠다며 미복 차림으로 거리를 거닐고 있었다. 궁궐 밖 백성의 소리를 직접 듣겠다는 뜻이었다. 한밤중, 적막을 가르며 들려오는 곡성이 그의 발길을 멈추게 했다.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문밖에서 사연을 엿들었다.
“계란 위에 계란을 포개지게 해주소서.”
임금은 처음에는 의아해했다. 그러나 사연을 듣고 나자 그 정성에 마음이 움직였다. 둥근 알을 포개달라는 것은 억지를 쓰는 말이 아니었다. 불가능해 보이는 일이라도 지극한 정성으로 빌겠다는 절박함의 다른 표현이었다.
임금은 돌아가 신하에게 명했다. “옥에 갇힌 자의 사연을 다시 살피라.” 재조사 끝에 과중한 처벌이 드러났고, 남편은 석방되었다. 훗날 임금은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그대의 부인이 계란 위에 계란을 지성으로 포갰도다.”
이 이야기는 겉으로는 소화(笑話)처럼 보이지만, 그 속에는 미묘한 전환이 있다. ‘卵上加卵’이 쓸데없는 반복의 상징이라면, 여기서는 오히려 반복되는 기도의 힘을 상징한다. 둥근 알이 실제로 포개진 것은 아니다. 그러나 불가능한 형상을 끝없이 그려낸 정성이 현실을 움직였다.
그래서 이 고사는 두 갈래의 얼굴을 가진다. 하나는 군더더기를 경계하는 언어의 채찍이다. 같은 말을 되풀이하며 실속 없는 덧붙임을 일삼는 태도를 비웃는다. 다른 하나는, 이치에 닿지 않아 보이는 소망이라도 간절함이 쌓이면 세상의 문을 두드릴 수 있다는 역설이다.
둥근 알은 서로 포개지지 않는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은 때로 불가능한 형상을 붙들고도 끝내 현실을 바꾼다. 《성수패설》은 그 간극을 짧은 일화로 남겼다. “난상가란”이라는 말이 단지 중언부언의 표지로만 머물지 않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