尊德性與道問學

마음을 공경할 것인가, 학문을 통해 나아갈 것인가 ?

by 김희곤


군자의 공부에는 두 방향이 있다.


하나는 인간 내면의 도덕적 본성을 공경하는 것, 다른 하나는 학문을 통해 사물의 이치를 탐구하는 것.


이 두 길은 같은 목적지를 향하지만, 걷는 방식이 달랐다. 그리고 그 차이는 송대 이후 1,000년에 걸친 유학 사상의 가장 뜨거운 논쟁을 낳았다.


《중용》이 던진 하나의 질문


《예기·중용》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故君子尊德性而道問學,致廣大而盡精微,極高明而道中庸.


그러므로 군자는 덕성을 높이고 학문을 통해 나아가며, 넓고 크게 이르면서 정밀하고 미세함을 다하고, 높고 밝음을 극진히 하면서 중용을 따른다.


— 《禮記·中庸》


전자를 존덕성(尊德性), 후자를 도문학(道問學)이라 한다.


언뜻 단순해 보이는 이 두 개념은 송대 이후 유학자들이 깊이 씨름한 철학적 긴장의 핵심이었다. 마음에서 출발할 것인가, 학문에서 출발할 것인가 — 이 물음은 단순한 공부법의 차이가 아니라 인간 존재와 도덕의 근원을 묻는 질문이었다.


마음 안에 이미 모든 것이 있다 — 존덕성(尊德性)


존덕성에서 말하는 덕성(德性)은 외부에서 배워서 얻는 것이 아니다. 맹자는 이를 명쾌하게 말했다.


仁義禮智,非由外鑠我也,我固有之也.


인·의·예·지는 밖에서 나를 녹여 넣은 것이 아니라, 내가 본래 가지고 있는 것이다.


— 《孟子·告子上》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선한 본성을 가지고 있다. 그 본성은 이미 완전하다. 문제는 욕망과 습관에 가려 흐려진다는 것이다. 따라서 수양의 출발점은 밖으로 나가 지식을 쌓는 것이 아니라, 안으로 들어가 본래의 마음을 회복하는 것이다.


남송의 육구연(陸九淵, 1139~1193)은 이 전통을 계승하여 가장 과감한 명제를 내놓았다.


宇宙便是吾心,吾心即是宇宙.

心即理也.


우주가 곧 나의 마음이요, 나의 마음이 곧 우주다.

마음이 곧 이치다.


육구연에게 우주의 이치는 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이미 내 마음 속에 있다. 그렇다면 수천 권의 책을 읽고 외부 세계를 탐구하는 것은 본질을 빗겨가는 일이 될 수 있다. 가장 급한 것은 발명본심(發明本心) 즉 내 마음의 빛을 되찾는 일이다.


사물을 통해 이치에 이른다 — 도문학(道問學)


주희(朱熹, 1130~1200)는 다른 길을 걸었다. 그에게 이치(理)는 분명히 마음 속에 있지만, 그것은 자동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이치를 밝히려면 외부 세계를 탐구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即物而窮其理.


사물을 통해 그 이치를 끝까지 궁구한다.


이것이 격물치지(格物致知)다. 한 권의 책, 한 가지 사건, 한 사람의 행동 — 이 모든 것에는 이치가 담겨 있다. 그것을 하나씩 탐구하다 보면 어느 순간 모든 이치가 하나로 연결되는 경지에 이른다.


주희에게 도문학은 단순한 지식 축적이 아니다. 그것은 도덕적 이해를 깊고 넓게 만드는 과정이다. 독서와 토론, 역사의 이해, 경험적 성찰 — 이 모든 것이 수양의 재료가 된다.


아호사에서 맞붙다 — 1175년, 강서


1175년, 남송 효종 때 학자 여조겸(呂祖謙)의 주선으로 주희와 육구연 형제가 강서 아호사(鵝湖寺)에 모였다. 이틀에 걸친 논쟁은 유학사상 가장 유명한 지적 충돌로 기록된다.


두 사람은 같은 성인의 도를 지향했다. 그러나 그 문을 여는 열쇠가 달랐다.


주희 — 박학(博學)으로 먼저 넓게 배워, 이치를 밝힌다.

육구연 — 먼저 마음을 바로 세우면(明心), 덕이 선다.


육구연의 형 육구소는 시를 지어 주희의 공부법을 비판했다. “지엽적인 것을 따라가느라 근본을 잃는다”는 것이었다. 주희도 물러서지 않았다. “마음만 붙잡고 있으면 독단에 빠진다”고 맞섰다.


논쟁은 결론 없이 끝났다. 그러나 이 충돌은 이후 수백 년 유학 사상 전개의 가장 중요한 분기점이 되었다.


왕양명 — 마음 밖에는 아무것도 없다

육구연이 심은 씨앗은 명대(明代)에 이르러 꽃을 피웠다. 왕양명(王陽明, 1472~1529)은 심학을 계승하고 심화했다.


無心外之理,無心外之物.

마음 밖에 이치가 없고, 마음 밖에 사물도 없다.


왕양명은 한때 주희의 격물론을 따라 대나무 앞에 앉아 그 이치를 탐구하다 며칠 만에 쓰러졌다. 그 실패의 경험이 그를 다른 길로 이끌었다.


그는 격물(格物)의 의미를 완전히 다시 해석했다. 주희에게 격물이 “사물에 나아가 이치를 탐구하는 것”이었다면, 왕양명에게 격물은 “일상의 모든 일 속에서 마음의 사욕(私慾)을 제거하고 양지(良知)를 실현하는 것”이었다.


인간에게는 양지(良知)가 있다. 옳고 그름을 직관적으로 아는 능력, 이것은 배워서 얻는 것이 아니라 태어날 때부터 주어진 것이다. 수양이란 이 양지를 현실의 삶 속에서 막힘없이 실현하는 일이다.


지행합일(知行合一).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은 하나다.


왕양명에게 격물은 지식 탐구가 아니라 도덕적 실천이다. 학문의 목적지가 완전히 마음 안으로 들어왔다.


긴장은 끝나지 않는다, 그래서 살아있다


존덕성과 도문학은 대립하는 두 개의 길이 아니다. 《중용》은 처음부터 이 둘을 함께 말했다. 군자는 덕성을 높이면서 동시에 학문을 통해 나아간다.


그러나 인간의 사유는 항상 한쪽을 더 강조하게 된다. 주희는 학문의 축적을 통해 이치에 이르는 길을 강조했고, 육구연과 왕양명은 마음을 밝히는 것이 먼저라고 보았다.


어쩌면 이 긴장 자체가 유가 수양론의 생명력일지도 모른다. 마음과 학문, 직관과 탐구, 내면과 외부 — 이 두 축을 어떻게 함께 붙들 것인가라는 물음은 지금도 유효하다.


결국 유가 전통에서의 학문은 지식의 양을 늘리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내 마음의 도덕성을 밝히고, 그것을 살아가는 모든 순간 속에서 실현하는 과정이다.


마음을 먼저 세울 것인가, 학문으로 먼저 나아갈 것인가? 어쩌면 이 질문 자체가 우리를 더 깊은 사유로 이끄는 가장 오래된 초대장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