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에 닿기 전에는 삽을 놓지 말아야 한다

느리게 가는 사람이 결국 멀리 간다

by 김희곤

사람은 종종 두 절벽 사이에 선다. 이루고 싶은 것은 많은데 내 능력이 그것을 감당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두려움, 그리고 현실과 쉽게 타협하며 살고 싶지 않다는 고집, 이 두 가지가 그 절벽이다. 마음은 자꾸 앞서가는데 발은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새로운 도전을 향해 뛰어들기에는 용기가 모자라고, 그렇다고 지금의 자리에 만족하기에는 마음이 허락하지 않는다. 그래서 사람은 자꾸 초조해진다.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미리 실패로 그리고, 아직 끝나지 않은 오늘을 벌써 패배처럼 받아들인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 답답함이 전적으로 나쁜 것만은 아니다. 아무 뜻도 품지 않은 사람은 자신의 게으름을 괴로워하지 않는다. 삶과 타협해 버린 사람은 지금의 안온함이 부끄럽지도 않다. 그런데 우리는 게으를 수는 있어도 그 게으름을 편하게 껴안을 수는 없다. 아무 생각 없이 살 수도 있지만, 그렇게 살고 나면 마음이 더 불편해진다. 이 불편함은 아직 마음이 살아 있다는 증거다. 아직 내 안에서 어떤 가능성이 완전히 꺼지지 않았다는 징표다.

문제는 초조함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다루는 방식이다. 마음이 급해질수록 사람은 자꾸 결과부터 확인하려 든다. 씨를 뿌리고도 곧장 열매를 찾고, 몇 번 해 보지도 않고 나와 맞지 않는 길이라고 단정한다. 오늘 시작한 일을 내일의 성취와 견주고, 아직 익지 않은 시간을 실패라고 부른다. 그럴 때 삶은 더 힘들어진다. 할 일은 여전히 남아 있는데 마음만 먼저 닳아 버리기 때문이다.

고전은 바로 이 지점을 정확히 짚는다. 《논어》에는 "빨리 이루려 하면 도리어 이르지 못하고, 작은 이익을 탐하면 큰일을 이루지 못한다(欲速則不達, 見小利則大事不成)"라는 말이 있다. 조급함은 속도를 높여 주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사람을 쉽게 지치게 하고 길을 짧게 만든다. 눈앞의 반응과 즉각적인 보상에 매달리기 시작하면, 오래 걸리는 일은 끝내 감당하지 못하게 된다. 큰일은 대개 느리게 자라는데, 사람의 마음은 자꾸 그것을 서둘러 거두려 들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맹자》의 비유는 더욱 가슴에 와 닿는다. 맹자는 "뜻을 둔 사람은 우물을 파는 이와 같으니, 아홉 길을 팠어도 샘에 닿지 못하면 우물을 버린 것과 다르지 않다(有爲者辟若掘井, 掘井九軔而不及泉, 猶爲棄井也)"고 했다. 이 구절은 《맹자》 〈진심상〉에 나오는 맹자 자신의 말이다. 핵심은 아홉 길이라는 숫자가 주는 감각에 있다. 거의 다 왔는데 손을 놓으면, 결과는 처음부터 파지 않은 것과 다르지 않다. 우리 삶의 많은 좌절도 이와 비슷하다. 능력이 모자란 탓이라기보다, 샘에 닿기 직전의 침묵을 견디지 못해 멈추는 경우가 더 많다.

그래서 삶에 필요한 것은 순간의 열정보다 오래 가는 리듬이다. 《순자》 〈권학〉이 그 이치를 담담하게 짚는다. "반걸음, 한 걸음을 쌓지 않으면 천 리에 이를 수 없고, 작은 물줄기를 모으지 않으면 강과 바다를 이룰 수 없다(不積蹞步, 無以致千里; 不積小流, 無以成江海)." 위대한 성취는 거창한 도약에서 생기지 않는다. 천 리는 어느 날 갑자기 뛰어넘는 거리가 아니다. 남들이 보기에는 보잘것없는 하루,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반복, 아무 변화도 없는 듯한 축적이 쌓여 마침내 멀리 닿는다.

결국 사람을 무너뜨리는 것은 꿈의 크기가 아니라 호흡의 짧음일지 모른다. 큰 꿈을 품는 것은 잘못이 아니다. 문제는 그 꿈을 짧은 시간 안에 끝내려는 조급함에 있다. 마음이 조급하면 오늘 내디뎌야 할 한 걸음보다 내일 얻어야 할 결과만 바라보게 된다. 그러면 하루는 늘 모자라고, 나는 늘 뒤처진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삶은 원래 그렇게 빨리 모습을 바꾸지 않는다. 조용한 날들이 쌓여야 비로소 눈에 보이는 변화가 생긴다. 겉으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여도, 안으로는 분명히 무언가가 자라고 있다.

그러니 지금 필요한 것은 자신을 몰아치는 채찍이 아니다. 나는 왜 이 모양인가, 왜 남들처럼 빨리 가지 못하는가? 그렇게 스스로를 몰아붙인다고 해서 길이 갑자기 열리지는 않는다. 그런 마음은 오히려 삽을 더 빨리 내려놓게 만들 뿐이다. 필요한 것은 조금 느리더라도 끝까지 가는 힘이다. 오늘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내일 또 이어 가고, 반응이 없더라도 잠시 더 파 보는 것—그렇게 견디는 시간이 결국 사람을 바꾼다.

초조함에 삽을 놓지 말아야 한다. 빨리 가려 하기보다 끝까지 가려 해야 한다. 우물은 끝까지 판 사람의 것이고, 천 리는 한 걸음씩 쌓아 온 사람의 것이다. 삶은 재능의 번쩍임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오래 버티는 습관, 포기하지 않는 리듬, 그리고 아직 보이지 않는 변화를 믿는 마음, 그것이 마침내 사람을 원하는 곳 가까이 데려다 놓는다.

어쩌면 우리는 지금도 샘 바로 위를 파고 있는지 모른다. 그런데 물소리가 들리지 않는다고 해서 곧장 땅을 탓하고, 운명을 탓하고, 내 능력을 탓하며 삽을 던져 버리곤 한다. 하지만 고전이 거듭 일러 주는 것은 하나다. 조급함은 길을 짧게 만들고, 지속은 마침내 길을 연다. 그러니 오늘도 너무 많은 것을 한꺼번에 바꾸려 하지 말고, 다만 한 걸음을 더 보태면 된다. 그 한 걸음이 쌓여 언젠가 뒤돌아보는 날, 나는 어느새 예전의 내가 아니게 되어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