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빈(孔斌)
봉황은 닭처럼 울지 않는다
조지훈(趙芝薰)의 시 「봉황수(鳳凰愁)」는 무너진 시대의 풍경에서 시작한다.
“벌레 먹은 두리기둥 빛 낡은 단청(丹靑),
풍경 소리 날러간 추녀 끝에는
산새도 비둘기도 둥주리를 마구 쳤다.”
왕권(王權)의 상징이었던 궁궐(宮闕)은 이미 주인을 잃었다. 벌레 먹은 기둥과 빛바랜 단청, 그리고 그 처마 끝을 차지한 것은 봉황도 용도 아닌 산새와 비둘기다. 권위가 사라진 자리에는 언제나 하찮은 것들이 먼저 들어온다. 시가 그려내는 풍경은 폐허의 묘사가 아니라 질서가 무너진 시대의 은유다.
궁궐 깊은 곳, 옥좌(玉座) 위에는 여의주(如意珠)를 희롱하는 쌍룡(雙龍) 대신 봉황(鳳凰)이 장식되어 있다. 봉황은 태평성대에만 나타난다는 상상의 영조(靈鳥)다. 그러나 시 속에서 봉황은 울지 않는다.
“어느 땐들 봉황이 울었으랴만…”
봉황은 닭처럼 울지 않는다. 봉황은 아무 때나 울지 않는 새다.
이 침묵의 상징은 오래된 고사 하나를 떠올리게 한다. 바로 연작처당(燕雀處堂)이다.
전국시대(戰國時代), 진나라(秦)가 조나라(趙)를 공격했을 때 위나라(魏)의 대신들은 태연했다. 조나라가 이기면 그쪽에 붙으면 되고, 조나라가 지면 약해진 틈을 이용하면 된다고 여겼다. 남의 불행을 계산 속에 넣은 냉정한 현실론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 자리에 있던 위나라의 상국 공빈(孔斌), 곧 공자순(子順)은 전혀 다른 말을 했다. 그는 공자의 6대손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그는 대신들을 향해 이렇게 경고했다.
제비와 참새가 처마 밑 둥지에서 서로 먹이를 물어다 주며 즐겁게 지내지만, 굴뚝에서 불길이 치솟아 집이 타들어 가도 그것이 자신의 재앙이 될 줄 모른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연작처당(燕雀處堂)이다.
편안한 처마 밑에 살다 보면 세상이 안전하다고 착각한다. 그러나 집에 붙은 불은 언젠가 그 둥지까지 번진다. 공빈이 보기에 위나라 대신들은 바로 그런 참새들이었다.
타인의 재앙을 구경거리로 삼는 순간, 재앙은 이미 우리 쪽으로 방향을 틀고 있기 때문이다.
이 고사는 조지훈의 「봉황수」와 묘하게 겹친다.
시인은 궁궐의 품석(品石) 곁에 서 있다. 정일품(正一品)에서 종구품(從九品)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관직의 줄이 있지만 그 어디에도 자신의 몸 둘 곳은 없다고 말한다. 권력의 질서는 남아 있지만 정신의 질서는 이미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봉황은 울지 않는다.
봉황은 닭처럼 매일 울어대는 새가 아니다. 닭의 울음은 습관이지만 봉황의 울음은 시대의 사건이다.
그러나 시의 마지막 구절은 조용히 방향을 바꾼다.
“눈물이 속된 줄을 모를 양이면
봉황새야 구천(九天)에 호곡(呼哭)하리라.”
만약 눈물이 속된 것이 아니라면, 봉황도 하늘 끝에서 통곡할 것이다.
이 구절은 한 시대를 살아가는 지식인의 마음을 드러낸다. 침묵은 고결할 수 있지만, 시대가 끝내 무너진다면 침묵도 더 이상 미덕이 아니다.
역사를 돌아보면 대부분의 시대는 제비와 참새의 시대였다. 눈앞의 평안에 안주하며 처마 밑 둥지의 안전만 믿는 시대였다.
그러나 위기는 늘 그 밖에서 자란다. 그래서 고전은 반복해서 같은 말을 남겼다. 재앙은 갑자기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이 그것을 보지 않기로 결정하는 순간 시작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시끄러운 닭의 울음이 아니다. 시대를 꿰뚫어 보는 봉황의 서늘한 자각이다.
그리고 때로는, 그 봉황의 통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