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끝내 붙들고 싶은 것

AI와 동양고전

by 김희곤

요즘 내가 가장 자주 들여다보는 것은 AI이기도 하고, 동양 고전이기도 하다. 겉으로 보면 새로운 기술에 관심이 많은 사람처럼 보일 수도 있고, 반대로 오래된 책의 문장을 붙들고 사는 사람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면, 내가 진짜로 궁금해하는 것은 AI도 아니고 고전도 아니다. 내가 끝내 알고 싶은 것은, 기술이 인간을 앞질러 가는 시대에 인간은 무엇으로 중심을 지킬 수 있는가 하는 문제다.


나는 점점 더 분명하게 느낀다. 앞으로의 시대에는 아는 것이 많다는 사실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빨리 찾고, 빨리 요약하고, 빨리 만들어 내는 일은 이제 인간만의 능력이 아니게 되었다. 이미 많은 영역에서 기계는 인간보다 더 넓게 읽고 더 빠르게 정리한다. 그렇다면 남는 질문은 하나다. 그렇게 빠르고 강한 도구 앞에서 인간은 어떤 존재로 남을 것인가. 나는 바로 그 질문 앞에 오래 서 있다.


그래서 내가 고전을 읽는 이유도 단순하지 않다. 고전은 내게 옛사람의 교훈을 들려주는 책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오랜 시간에 걸쳐 무엇을 두려워했고, 무엇을 귀하게 여겼으며, 어떤 순간에 무너지고 어떤 기준으로 다시 일어서려 했는지를 보여 주는 기록이다. 공자와 맹자, 주자와 왕양명을 읽는 일은 과거의 권위를 숭배하는 일이 아니라, 인간이 인간답게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다시 묻는 일이다. 나는 그 물음을 오늘의 언어로 다시 살려 보고 싶다.


AI에 대한 관심도 결국 같은 자리에 닿아 있다. 나는 AI를 단순히 편리한 도구로만 보지 않는다. 그것은 인간의 사고와 판단, 창작과 노동, 권위와 교육의 질서를 바꾸는 거대한 환경이다. 그래서 AI를 잘 쓰는 법보다 먼저, AI를 어떤 기준으로 써야 하는가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더 정확히 말하면, 무엇을 위해 이 기술을 써야 하는가가 중요하다. 효율만 앞세우면 인간은 금세 수단으로 밀려난다. 속도만 숭배하면 성찰은 사라진다. 편의만 좇으면 책임은 흐려진다. 나는 바로 그 지점이 불안하다. 그리고 그 불안 때문에 더 집요하게 고전을 찾는다.


내가 붙들고 싶은 것은 결국 수양과 책임이다. 유가의 말로 하면 수기(修己)와 치인(治人)의 문제다. 먼저 나 자신이 어떤 기준으로 생각하고 판단하며 살아갈 것인가가 있어야 한다. 그다음에야 내 글도, 내 연구도, 내 말도 다른 사람에게 의미를 가질 수 있다. 나는 좋은 문장을 쓰는 사람이고 싶기 전에, 함부로 판단하지 않는 사람이고 싶다. 많이 아는 사람이고 싶기 전에, 무엇이 더 중요한지 분별할 줄 아는 사람이고 싶다. 기술을 잘 다루는 사람이고 싶기 전에, 기술에 휘둘리지 않는 사람이고 싶다.


내가 논문을 쓰고, 글을 쓰고, 고전을 읽고, AI를 묻는 일은 모두 여기서 하나로 만난다. 나는 단지 과거를 정리하고 싶어서 연구하는 것이 아니다. 오늘의 사회가 왜 기준을 잃는지, 오늘의 인간이 왜 이렇게 쉽게 흔들리는지를 알고 싶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그 혼란 속에서 작은 기준 하나라도 세우고 싶다. 누군가에게 정답을 주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너무 빨리 변하는 시대 속에서도 끝내 버리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는 사실을, 내 공부와 글쓰기로 증명해 보고 싶다.


결국 나의 근본 관심은 한 문장으로 정리된다. 인간은 무엇으로 자기 중심을 지킬 수 있는가.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대신할 수 없는 것은 판단의 품격이고, 삶의 방향이며, 책임지는 마음이라고 나는 믿는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AI를 배우면서 동시에 고전을 읽는다. 하나는 시대를 이해하기 위해서이고, 다른 하나는 시대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서다. 내게 미래는 기술만으로 오지 않는다. 미래는 언제나 인간의 기준과 함께 온다. 내가 끝내 붙들고 싶은 것도 바로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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