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淸) 말의 명장 좌종당(左宗棠)
사람은 늙을수록 조심스러워진다.
젊을 때는 칼을 믿고 나아가지만, 나이가 들면 칼보다 더 무서운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적의 군대보다 조정의 시선이 더 무섭고, 전장의 총탄보다 황제의 은혜가 더 위험할 때가 있다.
청(淸) 말의 명장 좌종당(左宗棠)에게도 그런 순간이 있었다고 한다.
당시는 나라가 안팎으로 흔들리던 때였다. 서쪽 신강(新疆)에서는 반란이 일어나고, 러시아는 틈을 노리고, 조정 안에서는 “저 먼 변방쯤은 버려도 된다”는 말까지 나왔다. 바다를 지켜야 한다는 해방(海防)의 논리가 있었고, 변방을 지켜야 수도가 산다는 새방(塞防)의 논리도 있었다. 많은 이들이 계산기를 두드릴 때, 좌종당은 더 단순하고도 더 무서운 판단을 내렸다. 변방은 멀리 있는 땅이 아니다. 한번 내주면 나라의 심장이 떨리기 시작하는 자리다.
그래서 그는 늙은 몸을 이끌고 서쪽으로 갔다. 전해지는 말로는, 자기 관(棺)까지 앞세우고 출정했다고 한다. 살아 돌아오지 못해도 좋다는 뜻이었을 것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살아 돌아오는 것보다 나라가 무너지지 않는 것이 먼저라는 결심이었을 것이다. 사람들은 흔히 이런 장면에서 장수의 기개를 본다. 그러나 나는 다른 것을 본다. 좌종당은 그때 이미 알고 있었을 것이다. 전쟁은 총칼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조정의 의심, 권력의 셈법, 공을 세운 자에게 반드시 따라붙는 견제가 더 길고 더 질긴 싸움이라는 것을.
서역(西域)을 평정해 간다는 승전보가 북경에 닿자, 궁중도 가만있지 않았다. 그리고 그 무렵부터 한 가지 흥미로운 일화가 따라다닌다. 서태후(西太后)가 좌종당에게 어린 궁녀 하나를 하사했다는 이야기다. 겨우 열일곱. 꽃처럼 어린 나이였다고 한다. 표면적으로는 노고를 치하하는 상이었다. 하지만 궁중의 선물은 늘 두 겹이다. 겉은 은혜이고, 속은 시험이다. 총애인 듯 보이나, 실은 감시일 수 있다. 위로인 듯 보이나, 실은 충성심을 떠보는 덫일 수 있다.
노장군은 그 뜻을 모를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그 소녀를 거절할 수도 없었다. 하사받은 사람을 물리치는 것은 은혜를 거스르는 일이고, 곧 불충의 그림자를 뒤집어쓰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가까이 두기도 어려웠다. 가까이 두면 색에 빠졌다는 말이 돌 것이고, 멀리하면 하사품을 업신여겼다는 말이 돌 것이다. 권력은 늘 이런 식으로 사람을 몰아넣는다. 칼을 쥐여주고 싸우라 한 뒤, 이겨도 죄가 되고 져도 죄가 되게 만든다.
그래서 좌종당은 칼이 아니라 거리로 답했다고 한다.
그는 그녀를 첩처럼 거느리지 않고, 손녀처럼 대했다는 것이다. 군막 안 가장 가까운 자리에 두지 않고, 밖의 조용한 처소에 머물게 하며 예를 갖춰 대했다. 함부로 손대지 않았고, 공연히 냉대하지도 않았다. 내치지 않되 품지 않고, 받아들이되 빠져들지 않았다. 이것이야말로 난세의 처세였다. 사람을 밀어내는 것도 기술이지만, 더 어려운 것은 품 안에 들이지 않고도 모욕하지 않는 일이다.
전쟁 이야기에서 흔히 사람들은 대포 소리만 듣는다. 그러나 진짜 흥미로운 것은 승전 이후다. 적을 이긴 장수가 어떻게 황실의 의심을 이겨내는가. 무력으로 국경을 지킨 사람이 어떻게 침묵과 절제로 자신의 목을 지키는가. 큰 인물은 전장에서만 드러나지 않는다. 오히려 승리한 다음, 자신에게 쏟아지는 은혜와 유혹과 감시를 어떻게 처리하는가에서 본모습이 드러난다.
생각해 보면 인생도 다르지 않다.
우리 앞에 오는 많은 선물은 정말 선물만은 아니다. 좋은 자리, 과한 칭찬, 뜻밖의 호의, 지나치게 달콤한 제안. 그것들은 대개 포장지에 싸여 오지만, 안에는 저마다의 계산이 들어 있다. 어리석은 사람은 그것을 덥석 받고 취한다. 조금 영리한 사람은 아예 거절해 버린다. 그러나 가장 노련한 사람은 받되 휘둘리지 않는다. 가까이 두되 경계를 잃지 않는다. 좌종당의 일화가 오래 남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그는 총으로 서역을 되찾았을지 모르지만, 자신을 무너뜨릴 수 있는 것은 총알이 아니라 인간의 욕망과 권력의 눈빛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단순히 늙은 장수와 어린 궁녀의 야사가 아니다.
나라가 흔들리는 시대에 무엇이 사람을 살리고, 또 무엇이 사람을 망치는가를 보여주는 비유에 가깝다. 멀리 있는 적보다 가까이 있는 유혹이 더 무섭고, 노골적인 칼날보다 은혜의 얼굴을 한 덫이 더 치명적이라는 것. 좌종당(左宗棠)은 아마 그것을 알았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서역에서는 강했고, 궁중의 그림자 앞에서는 더 조심스러웠다.
무력으로 변방을 지키는 사람은 많다. 그러나 유혹 앞에서 자기 선을 지키는 사람은 드물다.
어쩌면 좌종당의 가장 큰 승리는 서쪽 변경이 아니라, 자기 마음속에서 이루어진 것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