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국(息國)과 정국(鄭國)의 전쟁
식국(息國)의 패배는 전장에서 시작되지 않았다
《좌전(左傳)》 은공(隱公) 11년의 식국(息國)과 정국(鄭國)의 전쟁은 작은 나라와 큰 나라의 충돌로만 읽기에는 아까운 기록이다. 본문은 “정국(鄭國)과 식국(息國)에 위언(違言), 곧 말의 어긋남이 생기자 식후(息侯)가 정국을 쳤고, 정백(鄭伯)이 국경(竟)에서 맞아 싸워 식군(息軍)이 크게 패해 돌아갔다”고 적는다. 그리고 바로 이어 군자(君子)는 이 사건을 보고 식국이 장차 망할 나라임을 알 수 있다고 평한다. 그러므로 이 전쟁은 단순한 패전담이 아니라, 국가가 스스로 무너지는 판단 구조를 드러낸 사례로 읽어야 한다.
그 판단의 핵심이 바로 오불위(五不韙), 곧 다섯 가지 옳지 못함이다. 첫째는 부탁덕(不度德)이다. 杜預는 이를 간단히 “정장현(鄭莊賢)”이라 풀이했다. 식후는 상대인 정장공(鄭莊公)의 정치적 위상과 정당성을 헤아리지 못했다는 뜻이다. 둘째는 부량력(不量力)이다. 주석은 “식국약(息國弱)”이라 하여 식국의 약세를 분명히 적는다. 다시 말해 식후는 명분도 계산하지 못했고, 힘의 현실도 계산하지 못했다. 이 두 조항은 전쟁에서 도덕과 현실이 따로 노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 준다. 德(덕)을 오판하고 力(력)을 오판하면, 전쟁은 시작하기 전부터 이미 기울어져 있다.
셋째는 부친친(不親親)이다. 《춘추좌전정의(春秋左傳正義)》는 《세본(世本)》을 인용해 식국이 희성(姬姓)이라고 설명하고, 따라서 정국과 식국이 같은 성(姓)의 나라였음을 밝힌다. 그러므로 부친친은 막연히 “사이좋게 지내지 않았다”는 말이 아니다. 같은 종법(宗法) 질서 안에 있는 나라끼리 먼저 지켜야 할 친연의 정치 원칙을 저버렸다는 뜻이다. 작은 말다툼 하나가 곧바로 동성(同姓) 국가 간의 무력 충돌로 번졌다는 점에서, 식후는 외교보다 감정을 앞세운 셈이다.
넷째 부징사(不徵辭)와 다섯째 부찰유죄(不察有罪)는 이 사건의 가장 날카로운 부분이다. 여기서 사(辭)는 추상적 논리보다, 분쟁을 불러온 말과 해명, 곧 외교적 언사와 그 경위를 가리키는 쪽에 가깝다. 杜預는 “말로 서로 원망하게 되었으면 마땅히 그 말을 분명히 따져 곡직(曲直)을 살폈어야 한다”고 보았다. 그러니 부징사란 상대에게 따져 묻고 해명할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는 뜻이고, 부찰유죄란 죄가 누구에게 있는지, 곧 시비의 소재를 분명히 가리지 않았다는 뜻이다. 여기에는 자기 쪽 허물까지 포함한 책임 판별이 들어 있지만, 핵심 어감은 도덕적 자기반성의 감상보다 시비곡직(是非曲直)의 판별 실패에 있다.
이렇게 보면 오불위는 패전 뒤에 붙인 공허한 도덕 설교가 아니다. 그것은 전쟁 이전과 전쟁 과정에서 국가가 반드시 점검했어야 할 다섯 단계의 판단 기준이다. 내 정당성은 충분한가, 내 역량은 감당 가능한가, 먼저 지켜야 할 친연 질서는 무엇인가, 상대의 말과 해명은 충분히 검토했는가, 책임 소재는 분명히 가려졌는가. 식후는 이 다섯 문턱을 모두 건너뛰고 곧장 군사를 일으켰다. 그래서 군자(君子)는 그 패전 속에서 단순한 일전(一戰)의 실패가 아니라 식국의 장래 멸망까지 읽어 낸 것이다. 실제로 《춘추좌씨전》 전람본과 관련 주석 전통은 이 대목을 식국 멸망의 징조로 읽는다.
결국 식국(息國)의 패배는 전장(戰場)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다. 그것은 덕(德)을 재지 않고, 힘(力)을 헤아리지 않고, 친친(親親)의 질서를 잊고, 사(辭)를 징험하지 않고, 죄(罪)의 소재를 가리지 않은 판단의 실패에서 이미 시작되었다. 그래서 오불위(五不韙)는 고대의 낡은 교훈이 아니라, 오늘 읽어도 차가울 만큼 현실적인 국가 경영의 원칙으로 남는다. 감정은 전쟁을 시작하게 만들 수 있지만, 국가는 감정만으로 전쟁을 결정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