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가까운 사람이 가장 무서운 적이 될 때

장이(張耳)와 진여(陳餘)

by 김희곤

가장 무서운 적은 대개 멀리 있지 않다. 한때 내 속을 가장 잘 알던 사람, 그래서 더 이상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고 믿었던 사람, 바로 그 사람이 어느 날 가장 날카로운 칼이 된다.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 「장이진여열전(張耳陳餘列傳)」은 그 오래된 진실을, 장이(張耳)와 진여(陳餘)라는 두 인물을 통해 서늘하게 보여 준다. 두 사람은 처음부터 남남이 아니었다. 가난하고 낮은 처지에서 서로를 알아보고, 죽음으로도 믿음을 저버리지 않을 사이라 불렸던 문경지교(刎頸之交)였다. 사마천이 마지막에까지 이들의 이름을 특별히 남긴 이유는, 우정(友情)의 아름다움보다 그 붕괴(崩壞)의 구조가 더 인간적이기 때문이다.


균열(龜裂)은 거록성(鉅鹿城)에서 시작되었다. 조왕 헐(趙王 歇)과 장이는 성안에 갇혔고, 바깥에는 진(秦)의 왕리(王離)와 장한(章邯)의 군대가 포위를 좁혀 왔다. 성안의 식량은 떨어지고 병력은 줄어들었다. 성 밖의 진여는 수만 병사를 거느리고 있었지만, 정면으로 부딪치기에는 전력(戰力) 차가 컸다. 그는 움직이지 못했다. 그러나 포위된 사람에게 계산(計算)은 쉽게 배신(背信)으로 읽힌다. 장이는 여러 차례 사람을 보내 진여를 꾸짖었다(張耳大怒,怨陳餘,使張黶、陳澤往讓陳餘). 진여는 끝내 오천 명을 먼저 보내 싸우게 했으나 모두 전사했다. 이것은 냉정한 군사(軍事) 판단이었을 수 있지만, 장이에게는 끝내 자기 곁으로 오지 않은 친구의 변명처럼 보였을 것이다.


항우(項羽)가 거록의 포위를 깨자 두 사람은 다시 만난다. 그런데 재회(再會)는 화해가 아니라 심문(審問)이 되었다. 장이는 “왜 구하지 않았느냐”고 몰아세웠고, 전사한 장염(張黶)과 진택(陳澤)의 행방까지 따졌다. 그러자 진여는 분노하여 말한다. “그대가 나를 이렇게까지 의심할 줄은 몰랐다”(不意君之望臣深也). 그리고 인수(印綬)를 풀어 장이에게 내던진다(乃脫解印綬,推予張耳). 이 장면이 곧바로 진영(陣營) 분리로 이어진 것은 아니었다. 장이는 처음엔 놀라 받지 않았고, 측근의 권유 끝에야 인장(印章)을 거두었다. 진여는 실망한 채 수백 명의 심복만 데리고 황하 부근 늪지로 물러나 고기 잡고 사냥하며 지냈다. 우정은 이미 금이 갔지만, 아직 정치적 파탄(破綻)으로 완결된 것은 아니었다.


결정타는 감정이 아니라 분배(分配)였다. 항우가 천하를 나누어 봉했을 때, 장이는 상산왕(常山王)에 올랐고 진여는 남피(南皮) 부근 세 현만 받은 제후(諸侯)에 머물렀다. 사마천은 진여가 “장이와 나는 공이 같은데, 지금 장이는 왕이 되고 나는 홀로 후에 그쳤으니 이것은 불공평하다”(張耳與餘功等也,今張耳王,餘獨侯,此項羽不平)고 분개했다고 적는다. 두 사람의 결별(訣別)은 단순한 감정의 문제로 끝나지 않았다. 직위(職位)와 영토(領土), 곧 권력(權力)의 배분이 상처 입은 자존심(自尊心)과 결합하면서 비로소 무력 충돌로 번졌다. 진여는 제왕 전영(田榮)의 지원을 끌어와 장이를 공격했고, 패한 장이는 그제야 한왕 유방(劉邦)에게 몸을 의탁한다. 앞선 불신(不信)이 불씨였다면, 분봉(分封)의 불균형은 거기에 기름을 부은 셈이다.


그 뒤의 전개는 더 냉혹하다. 유방이 조나라의 협력을 구하자 진여는 한마디 조건을 내건다. “한나라가 장이를 죽인다면 따르겠다”(漢殺張耳乃從). 여기에는 이미 옛 우정의 체온이 남아 있지 않다. 유방은 장이와 비슷한 사람을 죽여 그 머리를 보내 진여를 끌어들였고, 진여는 군사를 보냈다. 그러나 한군(漢軍)이 팽성(彭城)에서 패한 뒤 장이가 죽지 않았음이 드러나자 그는 곧 한(漢)을 등진다. 이후 한신(韓信)과 장이는 정형(井陘)에서 조군(趙軍)을 무너뜨렸고, 진여는 지수(泜水) 가에서 죽었다. 문경지교는 이렇게 철천지원수(徹天之怨讐)의 역사로 끝난다.


사마천의 총평(總評)은 짧고도 잔인하다. “처음 곤궁하던 시절에는 죽음으로써 서로를 믿었으나, 나라를 차지하고 권리를 다투게 되자 마침내 서로를 멸망시켰다”(始居約時,相然信以死;及據國爭權,卒相滅亡). 이 문장은 두 사람의 도덕성(道德性)을 판정하는 말이라기보다, 인간관계(人間關係)가 어디에서 변질되는지를 해부하는 말에 가깝다. 함께 가난할 때는 의리(義理)가 사람을 묶지만, 함께 성공한 뒤에는 공로(功勞)의 계산과 몫의 배분이 사람을 갈라놓는다. 배신(背信)은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나는 사건이 아니라, 같은 일을 서로 다른 뜻으로 읽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자란다.


그래서 장이와 진여의 이야기는 고대의 피비린내 나는 정변사(政變史)가 아니라, 오늘의 삶에도 묘하게 가까운 이야기다. 사람들은 흔히 감정보다 해석(解釋) 때문에 멀어진다. 나는 신중했다고 생각한 일이 상대에게는 외면으로 보이고, 나는 잠시 물러섰다고 여긴 선택이 상대에게는 배신으로 읽힌다. 여기에 자리와 몫의 문제가 얹히면, 오래된 신뢰(信賴)도 순식간에 다른 이름을 갖게 된다. 가까웠던 사람이 가장 멀어지는 이유는 처음부터 미워서가 아니라, 한때 너무 잘 알았기 때문에 서로의 상처를 더 정확히 건드리기 때문일지 모른다.


결정적 장면은 거록(鉅鹿)이다. 무신(武臣)이 죽은 뒤 새로 세워진 조왕 헐(歇)과 장이는 성안에 갇혔고, 진여는 성 밖에서 병력을 거느리고 있었다. 성안은 식량이 다해 가고 병력도 버티기 어려웠다. 장이는 여러 차례 사람을 보내 진여에게 구원을 요청했지만, 진여는 전력(戰力) 차이를 따져 섣불리 움직이지 못했다. 합리적으로 보면 무모한 돌격은 전멸(全滅)에 가까웠다. 그러나 성안에서 굶주리며 죽음을 기다리는 사람에게 계산(計算)은 쉽게 배신(背信)처럼 보인다. 장이가 크게 노하여 진여를 원망하고 여러 번 사람을 보내 책망했다는 대목은 그래서 더 아프다(張耳大怒,怨陳餘,數使人讓陳餘). 생존(生存)의 공포는 신의(信義)를 가장 먼저 흔든다.

이후 항우(項羽)가 거록의 포위를 깨면서 조왕과 장이는 가까스로 살아난다. 문제는 전쟁이 끝난 뒤에 벌어진다. 살아남은 사람은 늘 누가 자신을 버렸는지 계산한다. 장이는 진여를 만나 “왜 조(趙)를 구하지 않았느냐”고 몰아붙였고, 함께 보냈던 장염(張黶)과 진택(陳澤)의 행방까지 캐묻는다. 진여는 그들이 이미 전사했다고 말했지만 장이는 믿지 않았다. 여기서 두 사람은 전장(戰場)에서 한 번, 마음속에서 또 한 번 갈라진다. 포위망보다 더 치명적인 것은 사실(事實)의 부족이 아니라 해석(解釋)의 어긋남이다. 같은 사건도 한 사람에게는 신중함이고, 다른 사람에게는 배신이 된다.


파국(破局)의 상징은 인장(印章) 하나였다. 격분한 진여는 “그대가 나를 이렇게까지 의심할 줄은 몰랐다”고 쏘아붙이며 장군의 인수(印綬)를 풀어 장이에게 내던진다(乃脫解印綬,推予張耳。張耳亦愕不受). 이 장면은 흔히 사직(辭職)의 연극처럼 읽힌다. 붙잡아 주기를 바라며 던졌는데, 상대는 그 말의 숨은 뜻보다 눈앞의 권한을 먼저 본다. 장이는 잠시 머뭇거렸으나 측근의 권유를 듣고 결국 그 인장을 받아 군대까지 거두어들인다. 그때 우정은 완전히 끝난다. 진여가 기대한 것은 해명(解明)이었지만, 장이가 택한 것은 정리(整理)였다. 감정적 대응과 권력의 현실 감각이 정면으로 충돌한 순간이다.


그다음 전개는 더 냉혹하다. 두 사람은 각자의 진영(陣營)으로 흩어진다. 장이는 훗날 유방(劉邦)에게 의탁하고, 진여는 조왕을 받들며 항우 체제와 손을 잡는다. 세력 재편 속에서 둘의 갈등은 사적(私的)인 앙금을 넘어 정치적 적대(敵對)가 된다. 유방이 조와 손을 잡으려 하자 진여는 한마디를 내건다. “한나라가 장이를 죽인다면 따르겠다”(漢殺張耳乃從). 이 한 문장에는 이미 옛 우정의 그림자조차 남아 있지 않다. 유방은 장이를 닮은 자를 죽여 그 머리를 보내는 속임수로 진여를 끌어들였고, 뒤늦게 진실을 안 진여는 다시 등을 돌린다. 그러나 끝내 전세(戰勢)를 바꾼 것은 한신(韓信)과 장이의 연합군이었다. 진여는 저수(氐水) 가에서 죽임을 당한다. 목을 내놓던 사이가, 마침내 서로의 목을 노리는 사이가 된 것이다.


사마천의 총평(總評)은 차갑고도 정확하다. 처음 곤궁하던 때에는 죽음으로써 서로를 믿었으나, 나라를 차지하고 권력을 다투게 되자 끝내 서로를 멸망시켰다(然張耳、陳餘始居約時,相然信以死;及據國爭權,卒相滅亡). 그리고 그는 묻는다. 어찌 이것이 세력(勢力)과 이익(利益)으로 맺은 관계가 아니겠느냐고. 이 결론은 단순히 두 사람의 품성(品性)을 꾸짖는 말이 아니다. 인간관계(人間關係)가 언제 가장 쉽게 변질되는가를 묻는 질문에 가깝다. 결핍(缺乏)의 시절에는 서로의 사람됨이 보이지만, 자리를 나누고 몫을 나누는 국면에서는 서로의 욕망(欲望)이 드러난다. 친밀함은 오래된 기억으로 유지되지만, 불신(不信)은 단 한 번의 사건으로도 폭발한다.


이 이야기가 지금도 낯설지 않은 것은, 우리 역시 전쟁터는 아니어도 늘 작은 거록성(鉅鹿城)을 지나며 살기 때문이다. 조직의 위기, 사업의 실패, 병실의 침묵, 상속(相續)과 인사(人事)와 평판(評判) 같은 문제 앞에서 사람은 상대의 행동보다 먼저 마음을 해석한다. 그는 왜 오지 않았는가, 왜 내 편을 들지 않았는가, 왜 저 말의 속뜻을 설명하지 않았는가. 관계는 대개 큰 악의(惡意)보다 늦은 구조, 어긋난 해석, 상처 입은 자존심(自尊心) 속에서 먼저 무너진다. 그래서 장이와 진여의 이야기는 고전 속 비극이라기보다, 가까웠기에 더 멀어질 수 있는 인간관계의 구조를 보여 주는 오래된 보고서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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