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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산실 금속공예가 Apr 08. 2024

6. 졸업준비

4학년 졸업반이 되었다. 미대는 논문 대신 졸업전시를 해야만 졸업이 가능했다. 졸업작품 준비와 더불어 취업을 위한 웹 포트폴리오까지 준비해야 했다.


"홈페이지 2개 정도 개발하고 졸업작품도 제품 디자인처럼 준비하면 포트폴리오가 완성될 거야." 단순하고 쉽게 생각했었다. 하지만 현실은 곧 예상치 못한 어려움에 처했다. 마이크 타이슨의 명언이 생각났다. "누구나 다 그럴싸한 계획은 가지고 있다. 처맞기 전까지는."


4학년 1학기 초반, 졸업작품 지도를 받는 절차는 마치 관문과 같았다. 교수님의 검토를 통과해야만 졸업작품 주제를 확정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난 이것저것 아이디어를 떠올렸지만, 쉽지 않았다. 교수님은 한 번 정한 아이디어나 설계를 바꾸는 것을 싫어했다. 마치 손절 못하는 장기 투자자처럼 말이다. 난 계획이 틀어지면 변경도 하고 새로운 시도를 하는 스타일이었기에, 교수님의 방식에 적응하기 힘들었다.


금속 공예 졸업작품을 최대한 빨리 끝내고 취업준비를 해야 했던 난 더욱 초조했다. 게다가 학과 특성상 교수님은 전통의 멋을 중시했다. 특히 망치질에는 진심이었다. 생산성이나 효율성 같은 이야기는 여기서 먹힐 리 없었다.


졸업작품 포트폴리오에는 은으로 만든 주전자가 필수였다. 손잡이는 비싼 나무로 조각해야 했다. 나도 이런 전통적인 주전자를 만들고 싶었지만, 망치질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모루와 구리 또는 은판이 절묘한 각도로 맞아야 찌그러지지 않고 예쁜 망치 자국을 만들 수 있었다. 맞지 않으면 퍽퍽 거리는 소리가 나고, 잘 맞으면 쨍쨍거리는 맑은 소리가 났다. 1년 내내 이 망치질 연습을 해야 했지만, 그럴 시간이 없었다.


어떤 학생들은 주전자 모양이 거의 완성되었을 때 얇아진 부분이 터지는 경우도 있었다. 구멍을 잘 메꾸면 괜찮았지만, 대부분 보기 흉했다. 졸업 막판에 가면 5명 중 3명은 시보리 가공(기계로 압력을 가해 만드는 방법)을 하고 망치 자국만 냈다. 시보리 가공을 눈치채고 일장 훈계를 하던 형이 있었는데, 결국 졸업작품 전에 자신의 주전자에 구멍이 나서 조용히 시보리 가공을 하고 망치 자국을 낸 일화도 있다. 이상한 형이었다. 어쨌든 나는 처음부터 주전자는 만들지 않기로 결정했다.


처음 교수님께 들고 간 디자인은 쉬운 것이었다. 통과받으려다 이것저것 살을 붙이게 되었고 계획과는 다르게 어려운 아이디어가 되었다. 함수를 아날로그 방식으로 설명하려는 시도였다. 우리 생활에서 에너지가 다양한 형태로 변환되는 것을 보여주려고 했다. 하지만 이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복잡한 기계적 설계가 필요했고, 설계를 진행하면서 졸업까지 시간이 부족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결국 취업과 졸업준비 두 가지를 하기 위해서는 생산성과 효율성을 높인 디자인으로 계획을 변경해야 했다. 그리고 교수님이 원하는 방향대로 하려면 전통적인 디자인이 들어간 주전자를 만들어야 했지만, 그럴 시간이 없었다. 망치질을 잘할 생각도 없고, 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서 망치질이 들어가지 않는 생산성과 효율성 좋은 디자인을 찾기 위해 도서관에 많은 시간을 보냈다.


도서관에서 우연히 칸딘스키의 작품을 접하게 되었고, 그의 예술 세계는 나에게 새로운 세상을 열어주었다. 추상화에 대한 그의 독특한 해석은 신선했고, 표현 요소를 단순화, 규격화, 표준화하려는 그의 시도는 나에게 강한 끌림을 느끼게 했다. 이 요소는 제조업, IT산업, 행정 등의 다양한 분야에서 혁신을 이끄는 핵심 개념이다. 이에 대한 설명은 기회가 되면 다른 글에서 설명을 해도 좋을 것 같다.


칸딘스키의 영향으로 나는 졸업작품 디자인을 변경하기로 결정했다. 아이디어는 간단했다. 그의 책에서 나온 규격화된 점선면 요소를 이용하여 2차원이 아닌 3차원 공간으로 구성하는 것이었다. 이왕이면 실용성 있게 점선면들을 이어서 테이블을 만들기로 결정하고 디자인을 설계했다.


교수님과 충분히 상의를 했어야 했지만, 시간이 없었기 때문에 작업을 먼저 진행했다. 레이저 커팅 할 철판은 업체에 전달하고, 실습실 주변에서 구해온 녹슨 철들을 용접 하여 테이블을 완성했다. 너무 빨리 만들어서 페인트 칠하기 전에 교수님께 설명을 드리니 혼났지만, 어찌어찌 간신히 통과되었다.


 주전자를 만들지 않아도 되는 만족스러운 결과였다. 재료비와 시간을 절감한 효율성 높은 작품을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남들 재료비의 1/10 정도만 들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4학년 졸업작품을 준비하면서 우연히 접하게 된 칸딘스키는 지금도 나의 뇌리에 생생하게 남아있다. 당시 취업이 우선순위였지만,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단순화, 규격화, 표준화된 나만의 요소로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꿈을 꾸게 되었다. 다음 글에서는 칸딘스키에 대해 공부했던 내용과 그때의 느낌에 대해 이야기해 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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