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사박물관] 회고록

10화. 완결

by 구현

2012년 무더운 여름, 서울 내부순환로에서 방수 포장공사가 한창이었습니다. 평일에는 차량 통행이 워낙 많아 금요일 밤부터 월요일 아침까지 이어지는 고된 작업이었죠. 방수 공사는 바닥을 세밀하게 걷어내야 했기에, 엄청난 먼지와 소음 그리고 견디기 힘든 더위가 혹독했습니다. 방송국에서 '극한 직업'이란 프로그램을 촬영하러 왔던 날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밤낮으로 이어지는 공사에 정신이 혼미해질 무렵, 제 눈에 한 건물의 글자가 들어왔습니다.


서대문 자연사 박물관


당시 초등학교에 다니던 두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컸습니다. 마침 휴가철이었지만 밀려있는 공사로 어디를 갈 엄두를 내지 못했거든요. 그 박물관이 어떤 곳인지도 잘 모른 채, 아이들을 데리고 시원한 박물관에 가고 싶다는 생각으로 힘든 공사를 버텨냈습니다.


그다음 주말, 억수 같은 비가 쏟아져 공사가 취소되었습니다. 일요일 이른 아침, 아이들을 깨워 폭우를 뚫고 서대문 자연사 박물관으로 향했습니다. 그때 경기도 화성시에 살았으니, 만만찮은 여정이었죠. 박물관에 도착해 보니 제가 일했던 내부순환로가 한눈에 내려다보였습니다.


서대문 자연사 박물관은 구에서 운영하는 곳인데도 시설이 아주 잘 갖춰져 있었습니다. 초등학생 두 아들은 신나게 박물관을 즐겼습니다. 마치 제가 만든 박물관인 양 어깨가 절로 으쓱해졌죠. 아내와 아이들 모두 만족스러워하는 얼굴이었습니다. 아직도 그곳이 선명하게 기억날 만큼 인상적인 전시물이 많은 박물관이었습니다.


그곳에 다녀온 이야기는 그해 겨울 단편소설이 되었고, 아내는 제 글이 마음에 들었는지 근로자 문학제에 보냈더군요. 바쁜 시절이라 저와 상의할 틈도 없었나 봅니다. 뜻밖에도 제 글이 입선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십여 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흐르는 강물처럼 찬찬히 때론 벅차게 지나갔습니다. 그 시간만큼의 공백이 아쉬워, 에필로그 3편을 올렸습니다.


자료를 찾아 헤매며 몸은 갈 수 없지만 마음은 닿을 수 있는 곳들을 써내려갔습니다. 글을 쓰는 동안은 마치 꿈을 기록하는 순간들이었습니다. 그래서 행복했습니다. 꿈이란 게 이루어질 때도 그렇겠지만, 꿈을 꾸는 순간 자체도 행복하니까요. 글을 쓰며 몰입하는 순간은 제게 큰 즐거움을 줍니다.


그럼에도, 제 글을 다른 누군가가 본다는 사실은 쑥스러움을 넘어 불안감으로 다가왔습니다.


'이 표현이 맞나, 이 결말이 맞나' 하는 걱정이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정식으로 문학을 공부한 사람이 아니기에 그런 마음이 더 컸습니다. 결국, 그런 쑥스러움 때문에 제 글들은 구석진 곳에 쌓여만 갔습니다.


이제, 제가 평평하게 고르고 다진 길을 세상에 내놓습니다. 이 길은 구석지고 외진 곳이라 아무도 걷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저는 상관없습니다. 길은 그곳에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으니까요. 누군가 길을 잘못 들어선다 해도 괜찮습니다. 그 길이 막다른 골목이 아니듯, 그저 지나쳐도 되는 또 하나의 길일 테니까요.


보도블록을 놓을 때마다 손이 많이 가는 공정이 바로 시각장애인 안내 블록을 설치하는 것입니다. 노란색 점자 블록은 일반 블록과 크기가 달라 마감 작업이 까다로운 경우가 많습니다. 시마다 규정도 조금씩 달라서, 일하는 사람들은 늘 신경을 곤두세우게 되죠. 그 길로 단 한 명의 시각장애인이 지나가지 않는다고 해도, 그 공정은 우리 사회의 약속인 것입니다.


그 약속처럼, 저의 소설은 바로 그 마음이 낸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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