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임을 앞두고.
여름이었다.
마당의 배나무에 푸른 열매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열 살 정약용은 그 나무 아래 서서, 고개를 들어 탐스러운 배들을 바라보았다.
"저 배는 우리 것이다."
아이는 만족스럽게 중얼거렸다. 우리 집 마당에 있으니, 당연히 우리 것이다. 가을이 되면 저 배를 따 먹을 것이다. 달콤하고 시원한 과즙이 벌써 입안에 도는 것만 같았다.
"정약용."
뒤에서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이가 돌아보았다. 아버지 정재원 공이 대청마루에 앉아 아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얼굴에는 평소와 다른, 엄숙한 기색이 서려 있었다.
"예, 아버지."
"네가 방금 무슨 말을 했느냐."
"저 배가 우리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래."
아버지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말했다.
"이 배나무는 네 것이 아니다."
아이는 당황했다. 눈을 깜빡이며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우리 집 마당에 있지 않습니까?"
"그렇다. 우리 집 마당에 있다. 하지만 네 것이 아니다."
"그럼 누구 것입니까?"
아버지는 잠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맑고 높은 여름 하늘. 흰 구름이 천천히 흘러가고 있었다.
"천 년 후 후손들의 것이다."
"천 년 후요?"
"그렇다. 천 년 후에 이 땅에서 살아갈 네 후손들이, 잠시 우리에게 이 나무를 맡긴 것이다."
아이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배나무를 다시 올려다보았다. 천 년 후라니. 그때쯤이면 자신도, 아버지도, 이 세상에 없을 텐데.
"아버지, 천 년 후면 저는 이미..."
"죽고 없겠지."
아버지가 담담하게 말했다.
"하지만 이 땅은 남아 있을 것이다. 이 나무도 남아 있을 수 있다. 그리고 네 후손들이 이 땅에서 살 것이다. 그들이 이 나무 아래 서서, 고개를 들어 배를 바라볼 것이다."
아이는 말없이 나무를 바라보았다.
"너는 지금 이 나무를 '소유'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돌보고' 있는 것이다. 천 년 후의 후손들을 위해."
"돌본다..."
"그렇다. 너는 청지기다. 주인이 아니라, 주인의 집을 돌보는 종이다. 네가 이 배를 먹을 수는 있다. 하지만 이 나무를 망가뜨려서는 안 된다. 이 땅을 해쳐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이것은 네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바람이 불었다. 배나무 잎이 살랑살랑 흔들렸다.
"어찌 감히 '내 것'이라 말하는가."
아버지의 목소리는 부드러웠지만, 단호했다.
정약용은 그날을 평생 잊지 않았다.
세월이 흘렀다.
소년은 청년이 되고, 과거에 급제하여 관리가 되었다. 손에 녹봉이 쥐어졌다. 백성을 다스릴 권한이 주어졌다.
그때마다 그는 생각했다.
'이것은 내 것이 아니다.'
이 관직. 이 녹봉. 이 권한. 이 땅. 이 백성.
모두 천 년 후 후손들이 잠시 자신에게 맡긴 것이다.
나는 청지기다.
주인이 아니다.
AI 시대.
당신은 지금 무엇을 손에 쥐고 있는가.
기술인가. 데이터인가. 알고리즘의 권한인가.
당신이 다스릴 땅과 백성, 그리고 당신의 손에 놓인 기술과 데이터 역시 천 년 후의 세대가 잠시 맡긴 공물이다.
당신은 청지기다.
조심스럽게 다루어라. 깨끗하게 보존하라. 더 나은 상태로 다음 세대에게 넘겨라.
청지기에게는 사사로운 욕심을 채울 어떤 짐도 허락되지 않는다.
[내일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