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 물의 정원, 산책이야기.
북한강로를 따라 차를 몰았다. 다산생태공원과 두물머리를 지나치니 물의 정원 주차장이 금세 나타났다. 집에서 30분 남짓 달려오는 길은 고요하고 평화로웠고, 이곳으로 향하는 운전자들 모두 이미 마음의 속도를 늦춘 듯했다.
어디를 가도 시원하게 펼쳐진 강변은 팔당댐이 선사한 고요함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아픈 사연을 품고 있었다.
한때 거센 강물이 모든 것을 집어삼키고 황폐한 흉터만 남긴 채 잊혔던 땅이 있었다. 상처 입은 채 오랜 시간 버려져 있던 그곳이 물의 정원으로 탄생했다.
치유의 과정이 고스란히 담긴, 다양한 재질의 길이 걷는 걸음마다 즐거움을 주었다. 넓적하고 네모난 돌이 가지런히 놓인 길, 흙길, 야자매트가 깔린 길, 마사토 길. 콘크리트길로 이어지는 다채로운 길들이 걸음을 상쾌하게 인도한다. 강 건너 양평의 도로를 지나는 차들마저 한 폭의 그림 속 배경처럼 잘 어울렸다.
아내와 같이 여러 번 찾았던 물의 정원은 계절마다 다양한 꽃들의 잔치로 변모하곤 했다. 봄에는 붉은 양귀비가, 가을에는 노란 코스모스가 하늘과 강물의 푸르름을 압도하듯 화려한 빛깔의 물결을 이루었고, 그때마다 우리는 이곳의 산책로를 거닐었다.
그늘진 흔들의자에 앉게 되면, 흐르는 물결을 한참 동안 바라보며 고요함에 잠기곤 했다.
덜컹거리는 전철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보니 북한강을 가로지르는 철교가 보였다. 경춘선 운길산역이 지척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전철을 타고도 이곳을 찾을 수 있다니, 또 다른 기분이 들었다. 언젠가 나이가 들어 운전면허를 반납할 나이가 되어도 전철을 타고 이 산책로를 찾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가를 따라 이어지는 다채로운 길을 걷다가, 자전거 도로 옆 쭉 뻗은 산책로로 접어들었다. 아직 그늘을 충분히 만들지 못하는 벚나무 길을 걸으며, 아내가 말했다.
"언젠가 전철을 타고 여기 올 때쯤이면, 이 길에 그늘이 가득하겠지."
한참을 걸었지만 무릎은 시큰거림 하나 없이 가벼웠고, 무더위에 텅 비었던 마음 한구석이 맑은 물로 채워지는 듯한 산책이었다. 변함없이 아름답고 평안한 강변 풍경 앞에서, 화려한 꽃 잔치보다 깊고 잔잔한 위로를 느꼈다.
집으로 돌아가는 한강변 도로에서, 유난히 힘겨웠던 올여름을 뒤돌아본다. 한때 상처였던 자리가 이토록 아름다운 쉼터가 될 수 있다면, 우리 삶의 아픈 순간들도 언젠가는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는 이야기로 변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희망을 품고 돌아가는 길은 가을로 다가가는 순간처럼 부드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