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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 고관절 Dec 28. 2020

집으로 찾아왔어, 바이러스가.

(5)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감염증의 3차 유행이 연일 화제다. 사회적 거리두기의 수준을 3단계로 올리느냐 마느냐를 두고 정부는 여전히 고민 중이다. 이런 가운데 서울과 수도권에 거주하는 누군가는 오늘도, 생활치료센터 혹은 음압병실로 이동하게 될 것이다. 코로나19 확진자로서.


브런치가 아니라, 네이버 블로그에 쓴다면 더 많은 분들이 읽고

격리에 대비할 수 있으려나?하는 생각을 잠시 했지만. 브런치를 열심히 읽는 분들 사이에서라도

도움이 되는 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적어본다.



케바케는 이럴 때 쓰는 말이겠지


"선생님, 코로나19 양성입니다. 병상이나 치료센터가 배정될 때까지 가족과 떨어져 지내십시오."


보건소에서 어떤 식으로 전화를 하든, 내용은 비슷할 것이다. 코로나19 확진자이니 방역 수칙에 협조해 달라는 말. 그리고 어디론가 가야 한다는 것. 호흡에 문제가 없고 나이가 30~40대라면, 보통은 생활치료센터로 간다. 이것도 타이밍이 좌우하는 일인데 11월초에 확진을 받은 지인은 병상에 여유가 있을 시점이라 확진 즉시 병상에 입원했다고 한다. 지금은? 서울과 수도권에 계신 분들이라면 생활치료센터에 머물 가능성이 아주 높다.


생활치료센터는 지자체 별로 다르게 운영되는 것 같다. 그래서 케바케다.

어떤 곳은 대기업에서 제공한 연수원이고, 어떤 곳은 구에서 잠시 빌린 원룸이다. 창문 밖에 숲이 펼쳐질 수도 있고(?) 모텔과 pc방 후문이 보일 수도 있다는 말이다. 가족들도 함께 배정될 수도, 아닐 수도 있다. 내가 생활치료센터에서 처음 배정받은 방에서 만난 또 다른 확진자는, 자신의 부모가 각각 서울시 a구와 경기도 b시의 생활치료센터로 배정받았다고 말했다. 시의 경계를 넘어 어디론가 갈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다만 영유아를 보살펴야 하는 나의 경우는 '특수'한 케이스로 가족과 함께 생활치료센터에 머물 수 있도록 배려받았다. 네살배기 아이를 혼자 둘 수는 없으니....당연한 이야기긴 하다.



생활치료센터의 방 구조나 크기, 안의 시설은 제각각인거 같다. 어떤 곳은 침대가 있고 어떤 곳은 바닥에 까는 요나 이불이 있고 그런 식이다. 내가 배정받은 곳은 매트리스가 있는, 복층형 원룸이다. 평수로 치면 7평? 정도 되는 것 같다. 전기레인지와 냉장고가 있고 화장실은 아주 뜨뜻한 물이 잘 나온다. 만족스럽다. 다만 문자(6번)에 적힌대로 책상이 있지는 않다. (그래서 노트북을 쓸 때 아주 힘들다. 배가 기합을 뽝 주고 적어야 함)


혹시라도, 코로나19 바이러스와 조우하여 생활치료센터에 오게 된다면 버려도 상관없는 것들만 챙겨오시길 바란다. 들고 온 옷이나 물품은 모두 폐기 후 소각하는 것이 원칙이다. 엄청난 폐기물을 만들어내서 또 다른 죄책감이 들긴 하는데 격리의료폐기물로 취급되어야 한다니, 어쩔 수 없다. 되도록 많이 버리지 않아도 되게끔 적게 가져오는 수밖에.





그리고 어린 아이를 데려와야 하는, 막막한 상황에 마주한 양육자라면. 이곳에서 제공하는 모든 식사는 기본적으로 성인을 기준으로 짜인 도시락 식단이기 때문에. 아기용 먹거리를 챙겨오시기 바란다. 진심으로, 아이가 먹기에는 너무 짜고 맵고 자극적이다. 아이용 김자반이나 집에서 아이가 잘 먹었던 멸치볶음, 오징어채, 같은 마른 반찬류를 꼭 챙겨오시길 당부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이가....먹을 것이....하나도 없다.......................심지어 우유조차 없다. 멸균우유 또는 멸균두유를 꼭 챙기십시오!!!! 우유는 일주일간 받아봤지만 안나오네요...


생활치료센터에 나와 함께 입소한 아이가 입이 짧은 아이가 아니어서 천만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루에도 몇번씩 한다. 뭘 줘도 입 쫙 벌려주는 새끼 새 같은 녀석이라, 나는 마음의 짐을 그나마 좀 덜었다. 잘 먹어야, 잘 낫는 병이라는데 만약 못 먹고 힘들어했다면 어미의 마음은 아마 갈가리 찢어졌을지 모른다. 흑흑. 아. 아이용 비타민과 유산균도 챙기면 좋다. 나는 내 걸 챙겨 오면서 함께 넣었다. 너무 많이 챙겨서 입소 전까지 무조건 다 먹어야 하는데........그래서 하루에 2포씩 먹고 막. 버리지 않겠다는 몸부림을 하고 있다. 센터에서는 아이 먹을 거라고 하면 예외적으로 쓱배송을 허용해주시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만 이곳에 머물고 있는 것 아니기에 조심스럽다. 되도록 아이 것이든 뭐든 시키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다.


성인 확진자라면 노트북을 챙겨오면 좋다. 다행히, 노트북을 소각하라는 소리는 하지 않는 듯 하다(안돼 이거 회사 노트북이라고) 방에서 나갈 일이 없기 때문에 옷은 잠옷 같은 류로 챙겨오면 된다. 빨래비누와 세제는 여기서 준다. 대신 고무장갑이 없다. 빨래를 좀 열심히 하는 스타일이다, 싶으면 꼭 고무장갑을 챙겨오십셔. 책도 가져오면 좋다. 버릴 각오로. 나는 <바이러스 폭풍의 시대>를 챙겨왔다! 중간 정도 읽던 책인데 이때 아니면 절대 끝내지 못할 것 같아 가져왔고 이틀차 되던 날 완독했다. 껄껄껄. (네이선 울프를 만났을 때 내가 코로나19에 확진될거란 상상조차 하지 못했는데 말이다. 인생은 참 알 수가 없다.)


그리고 저 안내문에도 적혀있듯 집에서 먹던 상비약은 챙겨오는 것이 좋다. 특히 아이를 위한 약은 따로 처방이 어려운 듯 하다. 아이와 함께 격리되는 분이라면, 박트로반이나 비판텐 류의 육아 상비약은 필수품이다.  액상용 타이레놀도 챙겼지만 다행히 쓸일은 없었다. 다음 분을 위해 센터에 남겨두고 갈 작정이다. 밀봉된 채로 남겨뒀으니 소각까진 필요없겠지, 하는 생각.



식사와 폐기물 처리를 돕는 '그분들'께 감사



이곳의 생활이 돌아가는 건, 결국 센터 운영에 힘을 쏟고 있는 공무원과 의료진이 있어서다. 아침 전화 문진을 해주는 의사 선생님(어느 과인지는 모르겠다. 통상 해당 자치구의 상급병원에서 담당하는 듯하다), 오전에 바이탈을 체크해주시는 간호사 선생님, 그리고 매 끼니를 문 앞에 가져다주시는 방호복 입은 공무원 분, 센터 입소/퇴소 등을 관리하는 보건소 행정 공무원 분들 등등등... 수많은 사람들이 격리된 이들의 삶을 위해 힘을 쏟고 계신다. 내가 내는 세금이 이렇게 활용되는 구나, 싶어서 새삼 공무의 대단함을 느낀다. 연일 이어지는 격무에 번아웃 오는 분들이 많다고 들었다. 제발 이번 3차 유행이 확 기세가 꺾여 병상이나 센터입소를 집에서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생기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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