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를 넘는 다는 것은

by 온고

온고(나)는 클래식 작곡과 출신으로 인생 자체가 ‘아날로그’였다. 현 제도는 어떠한지 모르겠으나, 2010 학번임에도 불구하고 ‘라떼는’ 학부 2학년 때까지 손 사보(악보를 손으로 그리는 것)가 필수였다. 심지어 사보를 이쁘게 하기 위한 연필 심으로 다듬기 위해, 연필깎이라는 현대 문물을 거부하고 직접 칼로 깎아서 필통에 장전하고 다녔다. 나는 꽤 디지털화된 세상에 피투되었는데 클래식 작곡 학도로서 아날로그로 강제 기투되어야 하는 삶을 살게 된 것이다. 대학교 졸업 후, 컴퓨터 음악을 배우고자 디지털 세계에 입문했고 과거에 멈춰 있던 시간이 흐르기 시작한다. 또한 다양한 매체들을 연동해보는 실험을 통해 여러 차원으로 확장되어가는 느낌을 받게 된다.

‘순수 음악’의 한계를 지워 나갔지만 내가 넣은 컴퓨터 코드가 어떠한 방식으로든 작동은 되는데, 왜 작동하는지 그 원리를 모르고 무작정 따라했던 것 같다. 원리를 깨닫지 못하는 순간 ‘자기 복제’가 이어지게 되며 그저 비슷한 느낌의 사운드/영상/혹은 그러한 움직임만 출력될 뿐이었다. 디지털 아트 혹은 미디어 아트라고 하는 세계를 알아가면서 분야 간 ‘경계를 넘는 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장인정신 아니고 서야 힘든 일이구나를 깨닫는다. 다음은 2023년 6월 24일 권병준 작가님을 만나 얘기를 나눈 일부 기록이다.



온고) 작가님의 요즘 활동에서, 로보틱스를 빼놓을 수 없는 것 같아요. 앞으로 선보이시게 될 작품들도 주로 ‘로보틱 아트’의 방향을 갖고 있으신 것 같고요. 작가님의 예술적 뿌리가 사운드라면,사운드와 로보틱스는 서로 굉장히 다른 타입의 매체라고 생각되는데, 작가님이 다루실 때는 어떠한 느낌인가요?


권작가님) 물리적인 차원에서 ‘실체’가 있고 없음은 많이 다릅니다. 소리는 실체가 없고, 로봇은 실체가 있는 것으로 볼 수 있죠. 제가 기계, 장치들을 다루기 시작한 것은 ‘나만의 악기’ 혹은 ‘새로운 악기’를 만들고 싶어서 늦은 나이에 유학가서 연구한 배경이 큽니다. 결국은 소리를 발생시키는 장치들을 고안하면서 이러한 기계, 장치들 류를 다루기 시작했죠. 제가 요즘 만들고 있는 로봇들에 대한 기본적인 소양을 다지는 배경이 되었습니다.


온고) 음악 활동을 하시다가 공학 쪽 분야의 경계를 넘어야 하는, 힘듦은 없으셨는지요?


권작가님) 힘들었죠. 저는 이미 존재하는 악기에 제 음악을 맞추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마도, 그 힘듦을 극복해낸 계기는 ‘나만의 소리를 만드는 중’이라는 가장 원초적인 목표가 있었기 때문인 것 같아요. 그때는 악기를 만드는 것 자체가 내 음악을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지금 로봇을 만드는 것도 그렇게 악기를 만드는 마음이랑 똑 같은 것 같아요. 결국 전혀 다르게 보이는 두 매체를 다루는 것은 저한테 느낌이 다르지 않아요. 저는 똑같은 마음으로 두 매체를 대하며 작업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감동을 전달할 수 있을까?’와 같은 그런 목표로요.



어쩌면 우리가 사는 세계 안에서 ‘물리적 차원’을 벗어나는 것을 찾는 것이 더 어려울 수도 있겠다. 그만큼 당연한 답변일수도 있지만, 오랫동안 융합된 예술의 형태와 색다른 퍼포먼스를 활동해 오신 작가님은 머리로 그 세계를 이해하는 것이 아닌 것이 아니라, ‘진짜로 다르지 않다’라고 감각하고 계셨다. 납땜해 가면서 ‘로봇’을 만드는 일이나, 소리가 가진 여러 요소들을 변형해가면서 ‘나만의 소리’를 찾아가는 일이나 같은 것이었다. 생각과 고민이 많고 시간이 많이 들 수도 있는 일. 하고싶으니까 하는 일. 나의 생각을 표현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어떠한 감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일. 아무것도 모르는 학생 시절, 권병준 작가님을 알게 되었을 때는 사운드 기반의 예술활동가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작가님을 직접 만나 뵈었을 때는 작가님이 하시는 예술 활동의 기반이 무엇인지 분별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영역을 소화하고 계시는 중인 융합 예술의 장인으로서 계셨다.

마치 여러 외국어를 능수능란하게 다루는 사람들을 보면 부러운 것처럼, 어떠한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것은 엄청난 힘이다. AI가 판치는 기술 사회에 살아남으려면 그러한 힘을 기르고, 인간이 AI보다 유일하게 뛰어날 수 있는 ‘자의에 따라 무언가를 하고싶은 마음’을 지켜내야 한다. 어쩌면 경계를 넘는 다는 것은 나의 마음에 집중하며 분화되어 있던 영역 간 경계를 흐리게 하는 것이다. ‘로보틱스와 사운드는 전혀 다른 것이 아니다.’라고 하셨던 작가님의 말씀을 기억하자. 그리고 왜 그러한 말을 하셨는지 근원적인 의도를 파악한다면, 무엇을 하고 싶은지 나의 마음에 집중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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