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고’는 사라지고 ‘시간’은 짧아졌다.
참 빠르게 달라지고 있는 세상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지는 새로운 기술에 뒤처지지 않으려고 바쁘다. 그중에서도 특히 인공지능 기술은 현대인의 삶 전반에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나의 여가시간 대부분은 인공지능이 추천한 오락 프로그램, 영화 등으로 채워지고 있고 이제는 업무시간에 chatGPT와 함께 일하는 것이 익숙해졌다. 아직 사회적인 제도 형성이 미비하여 몇몇 부정적인 결과가 예견되는 상황에 이렇게까지 기술이 발달되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정말로 새로운 세상을 그리기 위함일까? 모두에게 이로울 수 있는 것일까? 기술이 사회를 잡아먹기 딱 좋은 정도의 혼란스러움이다. 어디에 어떻게 적용되어 무엇이 달라지고 있는지 잘 보이지 않지만 일단 마구잡이로 사용하는 중인 시대.
“예술가들이 새로운 시대를 열고 철학자들이 한 시대를 마무리한다.”라는 의미의 문장을 알게 되었는데, 곱씹어보면 정말 맞는 말이라고 동의하게 된다. 다른 사람들은 놓치게 되는 무언가를 예술적 감각이 뛰어난 사람이 캐치하여 새로운 시대의 미적 가치를 전파하는 것이다. 예술 작품으로 승화된 ‘아름다운 것’은 여러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힘이 있고 그들이 함께 공유하는 생각과 말은 ‘새로운 것’을 규정해 나가는 행위로 작용할 것이다. 그러한 면에서 현시대의 예술가들은 기술에 그 주도권을 빼앗겨 새로운 시대를 열기에 참 어려운 환경을 견뎌야 하는 것 같다. 다음은 2023년 9월 19일 인공지능 기술을 접목하여 시각 분야에서 활동 중인 민세희 작가님을 만나 얘기를 나눈 일부 기록이다.
온고) 인공지능 기술을 잘 모르는 일반 사람들에게 한 문장으로 간단하게 표현해서 설명해 준다면 뭐라고 하실 것 같은가요?
민작가님) “기술로만 보면 사용하기는 쉬운데, 그 원리를 깨닫고 배우는 것은 어렵다.”라고 하고 싶어요. 혹은 대다수가 사용하지만 만들어 내는 자, 보유하는 자는 극 소수이기 때문에 “갖기에는 비싸다.”라는 표현도 생각나네요.
온고) 시각 분야에서 활동을 하셨지만, 복합적으로 다른 분야에 대한 인공지능의 기술 발전 정도를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해요. 예를 들어 텍스트나 음악 쪽이요.
민작가님) 물론 시각적인 분야에서 인공지능 기술이 유입되고 발전되는 속도가 빠르지만, 다른 분야들도 차츰차츰 정복되고 더 좋아질 것이라고 생각해요.
온고) 현재의 기술 시대를 견뎌야 하는 젊은 예술가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으신가요?
민작가님) 삶 자체는 절대로 ‘그러데이션’이 아니에요. 발전되지 않고 정체된 느낌으로 고통받는 인고의 시간을 견뎌내야만 폭발적인 발전 가능성을 맛볼 수 있을 것인데, 인공지능이라는 기술이 이제는 그 개념을 바꾸고 있어요. 시간 대비 결과가 나오는 시대가 아니기 때문에 새로운 것을 창작하는 것에 있어 더 어렵거나 혹은 더 쉬워진 아이러니한 상황이에요. 양가적이지만, 둘 다 존재하죠. 정말 예술가의 길로 접어드는 젊은 창작자들은 이러한 복합적인 상황을 인고해야겠죠. 시간이던, 자본이던, 정신이건.
‘시간’은 모든 사람에게 평등하게 작용하는 유일무이한 개념이었는데, 인공지능 기술은 그 개념을 무너뜨리고 있다. 안데르스 에릭손 미국 플로리다주립대 교수가 1993년 발표한 논문에서 처음 등장한 개념으로, 1만 시간의 법칙이라는 것이 있다. 어떤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최소한 1만 시간의 훈련이 필요하다는 의미이다. 하루에 3시간씩 훈련한다면 10년, 하루에 10시간씩 훈련한다면 3년의 세월이다. 그러나 인공지능은 단 몇 분만에 그럴듯한 글/그림/음악들을 쏟아내고 있으며, 일정 수준의 아웃풋을 낼 수 있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인고의 시간에서 ‘인고’는 사라지고 ‘시간’은 짧아지게 된 것이다.
이제 예술가들에게 ‘인고의 시간’은 달라졌다. 자신의 생각과 의미를 전파하기 위해 인공지능과 협업을 하더라도 자신만의 스타일을 찾기 위한 ‘인고’가 필요하고 그것을 하기 위한 ‘시간’이 많이 들 것이다. 단순히 스킬을 업그레이드하기 위해 똑같은 그림을 100장씩 연습하던 시대는 끝났다. 새로운 시대는 예술가가 연다고 하는데, 인공지능과 함께하는 세상 속에서 어떠한 미적 가치를 전파해 나갈 수 있는지, 대중은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