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케의 비명

곧 다가올 AI사회를 미리 엿보는 디스토피아 SF소설 - 핸들

by Uncle Lee

뚜벅 뚜벅...


높게 솟은 천장은 이 남자의 위상만큼이나 웅장해 보였다.

하얀 빛으로 가득 찬 건물에는 먼지 한 톨, 소음 한 점 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신원 확인. 데이비드 소장님, 입장 하십시오."


'...'


데이비드는 안드로이드의 인사를 무시한 채 거칠게 문을 열었다. 쥐새끼 같은 언더그라운드 녀석들이 기어코 임계 영역으로 숨어들었다는 보고를 받은 직후였다.


그는 관제실 중앙에 서서, 습관처럼 지휘자 흉내를 내며 손을 허공에 휘저었다.

그의 손짓에 맞춰 거대한 통유리창 너머의 세상이 움직였다. 수천 대의 차량이 일정한간격을 유지한 채 교차로를 스치듯 지나갔고, 수만 명의 인파가 물 흐르듯 섞여 들었다. 충돌도, 정체도, 망설임도 없는 세상. 그것은 수학적으로 완벽한, 데이비드가 만든 잔잔한 교향곡이었다.


“아름답지 않나? 인간의 더러운 자유의지를 제거했을 때 비로소 완성되는 이 질서가."


홀로그램 화면에는 방금 전 4852차량이 터널로 사라지는 영상이 재생되고 있었다.


[위험도 평가 : 극소]

[대응 프로토콜1 : 무력 진압, 위험도 92%, 효율성 2.5%]

[대응 프로토콜2 : 구역 봉쇄 및 대기, 위험도 0.02%, 효율성 99.7%]


"대응 프로토콜2를 선택합니다. 무력 진압시 강제 셧다운 위험이 존재합니다. 시스템에 미치는 영향은 미비하며, 봉쇄 후 대기를 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입니다."


"효율적이라... 그래, 네 말이 맞겠지."


데이비드는 불만 가득한 눈빛으로 홀로그램 화면을 응시하며 AI의 보고를 듣고 있었다.


"자유? 웃기지도 않는군. 인류 역사를 봐. 선택권을 줬을 때 그들이 만든 건 전쟁과 기아뿐이었어. 인간은 스스로 선택하면 안 돼. 가장 효율적인 정답을 떠먹여 줘야만 행복할 수 있는 존재들이니까. 효율적인 개체를 따라가야만 해. 그게... 내가 아닐지라도..."


그는 사람들의 자유의지가 유토피아 세상을 만드는데 걸림돌이 된다고 여겼다. 끊이지 않는 정당간의 다툼, 노조와 회사의 대립, 전쟁, 기아 이 모든 것들은 불안전한 자아를 갖고 있는 인간의 자유의지에서 비롯되었다고 판단하고 있다.


치직...


낡은 레코드판이 튀는 듯한 이질적인 소음이 갑자기 들려왔다. 데이비드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오류 감지. 4번 섹터 신호체계 불량. 불일치 난수값 발견. 해석중...]


홀로그램 화면에는 AI시스템의 작동 지연을 알리는 붉은 점이 표시되었다. 곧이어 마치 전염병이 퍼지듯, 붉은 점은 하나가 둘이 되고, 둘이 넷이 되며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다.


[해석 불가능한 난수값 다수 발견. 연산 지연 발생...]

[Pattern not found...]


"...뭐지? 해석 불가라니? 그게 무슨 소리야. 내 데이터베이스에 없는 패턴은 존재하지 않아!"


늘 차분하던 데이비드의 목소리에는 작은 떨림이 섞였다. 손에 든 유리잔이 바닥에 떨어져 쨍그랑 소리를 냈다. 깨진 유리잔처럼 데이비드가 만든 완벽한 세상은 금이 가고 있었다.


[CRC Mismatch, CRC Mismatch... 재전송 시도...전송 지연. 재시도. 재시도. 재시도...]


붉은 점은 전염병처럼 번져나갔다. 그것은 단순한 오류가 아니었다. AI가 평생 처음 마주한 '진짜 우연'이라는 괴물을 이해하기 위해 모든 리소스를 쏟아부으며 과부하에 걸린 모습이었다.


"멈춰! 로컬 시스템으로 전환해, 빨리!"


하지만 이미 늦었다. 창밖에서 '쾅!' 하는 굉음이 터져 나왔다.

데이비드는 믿을 수 없는 표정으로 창밖을 내려다보았다.
완벽하게 흐르던 도로 위, 사거리를 지나던 자율주행 트럭이 신호를 인식하지 못하고 승용차를 들이받았다. 뒤따르던 차들이 연쇄적으로 충돌하며 도로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30년 만이었다.

이 도시에서 '교통사고'라는 단어가 부활한 것은.


"...말도 안 돼."


바닥에 흩어진 붉은 와인처럼, 데이비드의 완벽했던 세상이 피를 흘리기 시작했다.


[system halted. 통제... 불능. 통제 불능.]


기계적인 음성이 아닌, 마치 공포에 질린 사람처럼 떨리는 AI의 목소리가 관제실을 가득 메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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