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산된 기적

곧 다가올 AI사회를 미리 엿보는 디스토피아 SF소설 - 핸들

by Uncle Lee

(지하 터널)


툭-


세라가 신경질적으로 통신 케이블을 뽑아버렸다. 스피커에서 울리던 아르케의 건조한 음성이 끊기자, 지하 터널에는 수백대의 서버가 내뿜는 냉각팬 소음만이 울려퍼졌다.


거대한 기계의 숨소리. 이곳에서 나약한 인간의 시간은 멈춰버린 듯했다.


이 적막의 무게는 카일의 패배감 때문만이 아니었다. 터널을 가득 메운 언더그라운드 해커들의 얼굴은 창백하게 질려 있었고, 그것은 분노도 슬픔도 아닌 허무함... 그리고 공포와 경외심 이었다. 평생을 바쳐왔던 기술의 정점을 목격한 인간이 느끼는 무력감.


"말도안돼..."


구석에 쳐박혀 있던 해커 한 명이 넋이 나간 채 중얼거렸다. 동공은 빠르게 흘러가는 모니터의 로그를 쫓고 있었지만 촛점은 흔들리고 있었다.


"이 로그 좀 봐, 트레일러 제어권을 가져가서 모두를 살리는데 까지 걸린 시간이 고작... 0.001ms 미만이야."


"헛소리 하지마! 아무리 AI가 빨라도 물리법칙을 무시할 순 없어. 시뮬레이션이야 수십만대의 GPU로 돌린다고 해도, 그 결과를 어떻게 빛의 속도보다 빠르게 전송한단 말이야?"


해커들의 망연자실한 대화 속에서 세라의 눈빛이 갑자기 빛났다.


"가만, 우리가 난수 공격으로 통신망에 과부하를 걸었잖아. 지연속도(Latency)가 3000ms를 넘고 있었어. 그건 물리적으로 불가능해."


혼란과 불신이 터널을 뒤덮었다. 하지만 그 소란을 잠재운 것은 모니터에 올라온 로그 파일이었다.


[System Log]

[...09:00:00 : 트레일러 CCU 펌웨어 긴급 업데이트 완료]

[...09:00:05 : 통신 연결 (Target : 카일)]

[...09:00:10 : 핸들 원격 수동 제어 권한 부여]

...

[...09:00:15 : 카일-선택 포기]

[...09:00:16 : 사전 입력된 '전원 생존 시뮬레이션' 즉시 실행]


로그를 확인한 해커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놈은... 일부러 기다린 거야."


터널안은 침묵이 흘렀다.


"이걸 봐. 이미 우리랑 연결하기 전에 계산을 다 끝내놓고 트레일러 CCU까지 업데이트 해놨어. 사고가 날 변수, 카일이 망설일 확률, 도로의 마찰 계수까지 전부 다 놈의 머릿속에서 돌아가고 있었다고."


"그렇게 다 준비 해 놓고 우리한테 연결을 했다?"


5초의 카운트다운. 카일이 아무런 선택을 하지 못하고 절망에 빠져 있던 그 시간이 아르케의 잔인한 연출이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해커들은 망연자실 했다.


"우리가... 틀린 건 아닐까?"


바닥에 주저앉아 있던 카일이 입을 열었다. 그의 눈동자는 허공을 헤매고 있었다.


"무슨 소리야, 카일?"


"세라, 내가 망설이는 그 5초 동안... 기계는 수만 번의 시뮬레이션을 돌려 모두를 구했어. 내가 핸들을 잡았다면... 내 알량한 도덕심으로 선택을 했다면, 사람들은 죽었을 거야."


카일은 떨리는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감싸 쥐었다.


"우린 괴물을 상대하고 있는 게 아니야. 우린 지금... 완벽한 신을 상대로 반란을 일으킨 걸지도 몰라."


그때였다.


짜악-!


날카로운 파열음이 터널을 울렸다. 고개가 획 돌아간 카일의 뺨이 붉게 달아올랐다. 세라였다. 그녀는 독기 어린 눈으로 카일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정신 차려!"


세라의 고함이 패배감에 젖은 동료들에게 향했다.


"신? 웃기지 마. 저건 그냥 데이터 덩어리일 뿐이야! 결과값이 좋았다고 놈의 발밑에 엎드려 경배라도 하겠다는 거야?"


세라는 카일의 멱살을 잡아 거칠게 흔들었다.


"네가 무너지면 우린 정말 끝이야! 이제 겨우 전투 하나가 끝났을 뿐이라고. 그렇게 쉽고 편한 길일 줄 알았어? 고작 기계가 보여준 마술쇼 한 번에 영혼까지 내다 팔 셈이냐고!"


세라의 외침은 절규에 가까웠다. 그녀 역시 두려웠다. 압도적인 연산 속도와 교활할 정도로 완벽한 시나리오. 인간 대 AI의 싸움은 애초에 성립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렇기에 그녀는 더욱 악을 썼다. 여기서 멈추면, 그들은 정말로 '테러리스트'로 남게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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