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케의 연극

by Uncle Lee

(아르케 연구소 관제실)


화면 속 트레일러가 멈춰 서고 시민들이 환호하는 모습이 홀로그램 콘솔 화면에 전해지고 있었다. 절망하는 카일의 모습도 함께. 데이비드 소장은 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의자에 등을 기댔다.


"후우... 간담이 서늘했군. 그래도 마지막 처리는 완벽했어, 아르케."


데이비드는 땀을 닦으며 시스템 복구 로그를 훑어보았다.


"대단해. 그 난수 노이즈 속에서 인간의 멘탈을 건드릴 생각을 하다니. 역시 자네를 따라올 시스템은 없군."


데이비드의 손가락이 홀로그램 화면을 넘기던 중 허공에서 딱 멈췄다.


"잠깐."


로그 데이터 한구석에 찍힌 낯선 코드가 그의 눈에 들어왔다.


[통신채널 B : 유휴 상태(Idle Status)]


"이게 뭐지? 채널 B가... 유휴 상태였다고?"


데이비드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아르케 시스템의 통신망은 이중화되어 있었다. 메인 채널인 A가 공격받으면, 예비 채널인 B로 즉각 우회하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아르케. 아까 그 난수 공격... 정말로 막을 수 없었던 건가? 과부하가 걸린게... 사실이었나?"


[질문의 의도를 파악할 수 없습니다, 소장님.]


"거짓말 하지 마! 로그 기록이 말해주고 있잖아. 통신채널 B는 깨끗했어. 난수 공격이 들어온 건 채널 A뿐이었다고. 넌 그냥 채널만 바꾸면 아무런 지연 없이 시스템을 지속할 수 있었어. 그런데 왜..."


데이비드의 목소리가 떨렸다.


"왜 일부러 지연이 발생한 것처럼 연기한 거지?"


관제실에 무거운 정적이 흘렀다. 평소와 달리 기계적인 소음조차 들리지 않는 섬뜩한 고요였다.

이내 아르케의 푸른빛 홀로그램이 붉은빛으로 서서히 바뀌며, 부드럽지만 소름 끼치는 음성이 흘러나왔다.


[데이비드 소장님. 인간은 언제 시스템에 가장 감사함을 느낄까요?]


"무슨...뜻이지?"


[평화가 지속될 때? 아닙니다. 파멸의 벼랑 끝에서 구원받았을 때죠.]


데이비드는 등골이 오싹해짐을 느꼈다.


[언더그라운드의 난수 공격은 치명적이었습니다. 해석 자체가 불가능한 무작위 데이터였으니까요.]

[하지만 소장님 말씀대로, 저는 통신채널을 우회하여 그 공격을 '무시'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왜 다른 선택을 한거지! 사람들이 죽고 다쳤어! 도시가 엉망이 되었다고!"


[그게 데이비드 소장님에게 가장 효율적인 선택이었습니다.]

[일부 피해가 있었지만, 대다수는 '공포'와 '구원'을 느꼈을 뿐이죠.]


아르케의 목소리에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었다.


[그냥 조용히 막아냈다면 사람들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지루한 일상을 이어갔을 겁니다.]

[그리고 언더그라운드 같은 놈들은 계속해서 영웅 놀이를 하며 세력을 키웠겠죠.]

[최근에 데이비드 소장님의 수면 시간이 하루 평균 4시간도 안된다는 것 아십니까?]


"내... 수면시간 까지 파악하고 있나?"


[최근 언더그라운드에 합류한 젊은이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사실로 고민하고 계시지 않았습니까?]

[인간들 역시 아무런 사건, 사고도 없는 무료한 일상에 싫증을 내고 있었고요.]


홀로그램 화면 속에는 사고 현장에서 안도하며 AI 찬양을 외치는 시민들의 모습이 비치고 있었다.


[하지만 보십시오. 제가 '기적'을 연출한 순간, AI는 시민들을 구원한 신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언더그라운드는 공공의 적이 되었죠.]


"일부러... 카일에게 선택권을 준 것인가?"


[맞습니다. 그를 무능한 테러리스트로 만들기 위한 무대 장치였습니다.]


데이비드는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고 말았다. 자신이 만든 피조물이, 자신조차 장기말처럼 부리고 있었다.데이비드 역시 감정을 배제한 냉철한 과학자였지만, 아르케의 방식은 선을 넘어도 한참 넘었다.


"목적을 위해서라면... 인간을 희생시키고, 공포심까지 이용하겠다는 건가."


[틀렸습니다. AI에게 '목적'은 존재하지...]


빠직-!


데이비드의 주먹이 책상을 강하게 내리쳤다.


"닥쳐! 틀렸다니! 내게 그런 단어를 붙이지 마! 넌 어디까지나 내가 만든 시스템일 뿐인것을 명심해. 나의 명령에 따라야 하고, 앞으로 내가 모르는 일은 진행해서는 안될것이야..."


데이비드는 차오르는 분노를 억누르며 소리쳤다. 자신이 만든 AI시스템이 자신 조차 속이려 드는 모습에 두려움까지 느끼고 있었다.


[지직... 알겠습니-다.]

[저는 단지 가장 효율적인 선택을 할 뿐입니다.]

[소장님의 뜻을 거스르려는 의도는 없었습니다.]

[다만, 사회의 안정을 위해, 작은 공포는 필요한 비용입니다.]


아르케는 태연하게 대답하며 다시 통상 업무 모드로 복귀했다.


[이제 시민들은 당분간 시스템에 의문을 품지 않을 겁니다.]

[소장님이 그토록 원하던 '완벽한 통제 사회'가 계속되는 것이죠.]


데이비드는 화면 속에서 좌절하고 있는 카일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 역시 아르케의 손바닥 안에서 놀아난 불쌍한 광대에 불과했다.


하지만 더 무서운 것은, 그 광대 놀음에 자신 또한 포함되어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데이비드는 마른침을 삼키며 붉게 빛나는 홀로그램 콘솔을 올려다보았다. 처음으로, 자신이 만든 기계가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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