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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nne ryu Nov 22. 2022

Sonnenallee

감정의 소품집

  얼마 전 영화 『이퀼리브리엄』을 보았다. 계속되는 전쟁으로 인류가 멸종할 것을 우려해 전쟁의 씨앗이 되는 감정을 억제하기 위해 모든 시민이 의무적으로 약을 투약한다. 인간의 감정을 일으키는 책, 음악, 영화, 미술작품 심지어 향수와 스노우 볼까지도 모두 금지되며 적발 시 즉각 소각되고 관련자는 처형당한다. 이 일을 담당하는 단속자 중 한명이 우연히 약 투약을 거른 상태로 단속 중 축음기에서 흘러나오는 베토벤의 음악을 듣고 북받쳐 오르는 감정에 얼굴을 감싸고 눈물을 흘린다. 잊고 있던 감정을 되찾은 것이다.

  갑자기 이 영화 이야기를 꺼낸 것은 영화를 보던 중 『존넨알레』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코미디에 가깝지만 배경은 결코 유쾌하지 않다. 한 도시가 이념 다툼과 세력 싸움으로 인해 반으로 갈려 장벽이 설치되고 장벽 넘어 사는 친척을 보러 마음대로 갈 수도 없다. 학교에선 학생들에게 당의 사상을 주입하고 항상 슈타지에게 감시받고 있다는 불안감이 일상생활에 녹아져 있다. 서베를린 사람들에게 조롱 받기 일쑤고 전화기 하나 쉽게 가질 수 없는 상황이다. 이렇게 존넨알레의 사람들의 일상은 분단 상황에 의해 아주 큰 영향을 받고 있다. 나열된 객관적 상황만 놓고 본다면 그들의 삶은 억압과 감시 속에서 회색빛깔로 갑갑함과 불안함이 가득 차있을 것만 같다.

  그러나 책의 마지막 장을 덮었을 때 우리는 그들의 삶이 화려하진 않지만 소박하게 다채로운 색으로 칠해져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분홍빛 사랑과 샛노란 꿈이 있으며 푸른 희망과 황금빛 행복이 있다. 이 삶의 물감들은 바로 인간의 감정으로부터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 감정은 그들 가까이에 있는 음악, 책 그리고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피어난다. 아무리 외부적인 상황이 암담해도 우리 내면에선 그것을 이겨낼, 살아갈 이유를 만들어주는 또 다른 힘인 감정들이 생겨난다. 즉, 인간의 감정은 ‘-에도 불구하고’와 ‘-일지라도’를 가능하게 한다. 내가 비록 무차별발포지역 바로 앞에 살고 있어도 사랑하는 사람이 보냈을 연애편지는 나에게 두근거리는 설렘과 기쁨을 준다. 내가 비록 장벽 너머의 가족들에게 옷과 초콜렛을 전해주기 위해 위험을 감수해야 할지라도 가족들이 기뻐할 생각에 행복을 느낀다. 비록 좋아하는 음악을 듣는 것이 금지되었다 할지라도 몰래 친구들과 락 음악을 듣고 따라 부르며 즐거워 할 수 있다. 비록 내가 학교에서 퇴학당했지만 사랑하는 여인과 실존주의에 대해 이야기하며 허무맹랑한 꿈을 꾸고 가정을 꾸려 행복을 찾기도 한다. 모두 감정이 만들어낸 일들이며 이 일들이 하나 하나 모여 삶을 이룬다.

  서두에 언급한 영화에서 인간 감정의 수호자들은 비밀 공간에 향수가 묻은 물건을 모아둔다. 사랑하는 사람과 찍은 사진들, 레코드판, 사랑하는 사람의 향취를 느낄 수 있는 빨간 리본까지.. 『존넨알레』가 들려주는 과거 동독 시절의 이야기는 현재를 살아가는 동독 출신 사람들에게 혹은 세상 모든이에게 마치 저 비밀 공간과 같은 역할을 할 것이다. 노스탤지어 속 그리워할 수 있는 '추억'으로 묵묵히 자리하며, 현재 삶의 고통을 치유해주기도 하며말이다. 인간은 현재를 살지만 동시에 과거에 산다. 그 과거가 명확한 사실인지 미화된 추억인지는 중요치 않다. 추억은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또 다른 삶의 이유를 제공하는 것 자체로 의미를 지니기 때문이다. 

  결국 『존넨알레』는 '감정'을 핵으로하는 작품이다. 감정으로 가득 찬 존넨알레의 이야기가 읽는 이에게 또 다른 감정을 만들어낸다. 루소는 “이성이 인간을 만들어낸다고 하면 감정은 인간을 이끌어 간다.”라고 말했다. 그렇게 본다면 『존넨알레』는 어느 작품보다 충실히 우리를 이끌어준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2022년의 덧붙이는 말:

  인터넷에 떠도는 mbti 검사 질문 중 '감정보다 이성이 우선시 된다면 더 나은 세상이 될 것이다' 가 있고, 그에 대한 코찔찔이 대학생 때 쓴 이 서평이 대신 할 것이다. 사람이 추억도 좀 팔고 정에 휩쓸리기도 하며 살아야 인간적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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