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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이 맛이야

3. 우진제비오름에 올라

by 조유상

조천친구가 부산으로 볼 일이 있어 가면서 에어비앤비 숙소 보일러를 올려달라 부탁했다. 가기 전 문득 우진제비오름을 오르자 생각했다.

지난주는 제법 바람으로 추웠다가 21일부터 갑자기 봄이 되어버렸다. 아니, 차라리 여름 느낌. 반팔도 거뜬했다.


친구랑 한 달 살기 때며 제주 올 때마다 주변 산책을 했던 터라 그곳 주택가 아기자기함은 익히 알고 있었다. 내가 묵는 숙소 사장님과 점심을 숙소에서 같이 먹고 얼른 설거지를 같이 후다닥 해치웠다. 이날은 넷째 주 토요일이라 근처 일하시는 분들이 점심 먹으러 오는 날이 아니었는데 지난달에 이어 이번 달에도 깜빡한 사장님은 또 거하게 밥을 준비해 버렸다. 우리 점심밥상 동지이자 식구인 앞방 언니와 오라버니 달랑 넷이서 아점을 먹었으니 설거지거리는 다행히 적었다.

거문오름을 걷고 난 뒤 다리가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언니 부부는 차를 타고 물영아리로 가시고 우리 두 사람은 우진제비오름을 걷기로 했다.


친구집 독채 숙소로 가 간단히 둘러보고 미션 완료 후 쥔 없어 할딱거리는 식물들 물을 흠씬 주었다. 썬룸 온도는 문을 열어두었는데도 38도! 와우.

기억을 되짚어 친구랑 한 번 올랐던 우진제비오름 산책길에도 봄은 열려 있었다. 요 입석을 보고 오른 편으로 꺽어 들어가면 된다.
입구부터 오름 중간중간 제비꽃들이 반겨준다.


이 뭐꼬? 꼬물꼬물~~

둠벙 같은 우진샘이 있어 거기로 자연스레 발걸음이 향했다. 둠벙이 보이기 조금 전 고바위진 언덕길이 있었지만 둠벙부터 가 보기로.

올챙이들이 어찌나 바글대는지 한참 눈을 뗄 수가 없다. 머지않아 한여름까지 개구리합창을 들을 수 있겠다.

희끗희끗 희고 푸른 도넛처럼 보이는 건

도롱뇽알이었다. 이렇게 올챙이와 도롱뇽알이 떼거지로 있는 걸 보게 되다니!

발길이 떨어지질 않아 잠시 머무르기로 한다.

낮은 의자에 앉아 발을 둥개둥개 흔들며

뭇 생명을 하염없이 바라본다.

얼마나 많은 생명을 잉태한 둠벙인지.


한 가족을 여기서 만났다. 우리 보다 한참 전에 온듯하다. 우리가 여기 머문 삼십 여분 동안 아이들은 계속 둠벙을 들여다 보고 또 본다. 거기 놓인 목이 긴 플라스틱 바가지로 올챙이를 듬뿍 떠서 한참 들여다보다 놔주고 또 퍼올리곤 한다.


초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누나와 남동생은 한도 끝도 없이 올챙이와 둠벙 삼매경에 빠져 있다. 그들과 함께 온 엄마 아빠는 그런 아이들을 바라봤다가 둠벙과 숲을 바라보기도 한다. '얘들아, 이제 고만 보고 가자'라고 재촉할 만도 할 텐데 단 한 번을 내색 않고 유유하다. 아이들 시간을 마냥 기다려주고 기다려준다는 생색 없이 함께 있다. 온전하다, 머무른다. 아이들 시간 곁을 지키고 있구나.


아이들은 부모가 그럴 줄 미리 알았다는 듯 아무 걱정과 싫증 없이 맘껏 둠벙에 홀려 내내 그 언저리를 맴돌며 논다.


이 풍경 자체가 느리다. 마치 내일 세상이 무너져내려도 둠벙이 최고로 소중하다는 듯 거니는 그 가족을 바라보며 는 농사지으며 애들에게 재촉도 하고 저렇게 널널한 시간 속에 너끈히 놀아주지 못한 시간이 찌르르 아파 온다.

아이들은 보고 듣고 만지고 맛보고 냄새 맡고 분위기로 느끼며 자라난다. 천천히 깊숙이 체험할수록 제 속살 찌우고 든든히 자라는 건데... 저런 충만한 시간 속에 노니는 아이들은 어느새 마음결 단단해지고 몰캉한 감성으로 자라나겠지 싶었다. 학원을 적어도 1.2개에서 7,8개도 뺑뺑이 돌린다는 도시 아이들이 떠올라 안쓰러워진다.


다행히 애 둘 키우며 번도 그런 뺑뺑이 돌려본 적 없으니 그나마 작은 위안이 된다.


이 아이들과 부모는 우리가 느린 산책 중 정상에서 잠시 낮잠을 잘 때 지나가더니 다시 애들과 둠벙에 머물고 있다. 처음인양 그렇게.

뭉클했다. 저 기다림에. 마치 도인 같은 그 부모의 모습은 오래 기억에 남을 장면이리라.


요 둠벙에서 놀고 있자니 윗길에서 두 사람이 내려온다. 그쪽에도 길이 있냐니까 있단다. 둠벙에 못 가서 나 있던 길은 전에 친구랑 걷던 깔딱 고개 같은 계단길이었는데 이 길은 좀 더 수월하단다. 우린 그 길을 택하기로 했다.

이 길로 들어서길 백번 잘했다.

단박에 복수초가 나타나 반가웠는데 한 둘이 아니라 작 뗄 때마다 노랑 노랑하다. 무려 군락지! 전에 친구랑 왔을 때는 가을초입이라 만날 수 없었던 게다.


구비구비마다 너르게 퍼져 있는 복수초 나폴거림은 둠벙예서 멈추었던 걸 잊게 만들 만큼 황홀했다.

숲길 양편 노랑으로 점점이 가득하다.

누가 붓으로 톡톡 노랑물감 흩뿌려 놓은 듯.


봄으로 미처 깨어나지 못한 숲

색으로 흔들어 깨우는 복수초 무리

봄 요정들 노란 날개옷으로 파닥인다.


이어서 한둘 나타나더니 그윽이 피어나는

노루귀 군락지.

골골 틈틈이 스며 있다.


콩짜개는 심심찮게 아름드리 나무 밑동에 초록옷을 입히고

아니, 산자고 군락지까지.


혼자서 빠꼼

둘이서 어깨동무하고

골골마다 누가 이리 이쁜 녀석들을 날아왔던가

제비가 물어다 주었나?


우진제비오름


봄바람에 아롱지게

야생화 품어

뿜어

봄이다

후여~~

입김불어

피워내는 시간

색으로 번지는 시간


미치도록 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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