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한 모금

62. 어느 날부터

by 조유상

빙하가 서서히 녹기 시작하자

식물들이 자박자박 제각각 가고

싶은 곳으로 걷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이때부터 입을 못 열고

얼어붙은 입 굳은 혀로 살게 되었다

동물들이 도구를 쓰는 걸 멀거니

바라보기만 했다


조금 더 넘실대며 물이 산을 넘자

붙박이인 줄 알고 있던 사람들은

부표 없이 차츰 둥둥 떠다니게 되었다


그때부터 말을 잃은 사람들은

슬픔도 기쁨도 표현할 아무

언어를 갖지 못했다


이리저리 쿵쿵 부딪혀도

무표정한 머리칼 긴 짐승 같은

사람들은 더 이상 아프다 말하지 못했다

동물들이 노래하고 싸우는 소리도

식물들이 걸어 다니는 것도

미생물이 아우성치는 음성은

다만 모스 부호가 되어 허공에 흩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