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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리발라드 Nov 11. 2021

파리 발라드 7. 셰익스피어 앤 컴패니

종이의 매력

2021년 10월 23일 토요일 셰익스피어 앤 컴패니 서점

 어렸서부터 일기를 써온 습관 때문인지 화가 나거나 머릿속이 복잡할 때 그때그때 떠오르는 감정이나 단어를 종이 위에 끄적인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마음도 차분해지고 다시 긍정적인 에너지가 생기면서 괜히 기분이 좋아진다. 책이나 문서를 볼 때에도 태블릿이나 모바일로 보내는 것보다 실물을 손에 두고 보는 것이 더 눈에 잘 들어오고 말이다. 사각사각, 살랑살랑, 파직 파직... 종이가 가지고 있는 소리마저도 나에게는 백색 소음 같다. 물론 손이 베이면 그 따가움은 생각보다 찌릿하지만.  

 

 이렇게 종이를 좋아하는 나에게 서점은 놀이공원만큼 신나는 공간이다. 그중에서도 파리 최초의 영문 전문 서점, 셰익스피어 앤 컴패니는 또 다른 스토리로 사람을 매혹시킨다.

이곳은 1차 세계 대전 이후 미국에서 추방당한 출판업자 실비아 비치가 1919년 오픈한 서점이다. 헤밍웨이, 제임스 조이스, T.S. 엘리엇, 거투르드 스타인이 당시 단골이었으며 고국을 떠나 낯선 파리로 모여들었던 작가들의 사랑방 같은 장소였다.


 서점 안으로 들어가면 소설, 시, 수필 등의 책으로 가득 찬 진열대가 우리를 맞이한다. 사람 한 명이 겨우 지나갈만한 작은 통로로 이루어져 있지만 손님들은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서로에게 눈빛으로 양해를 구하며 지나간다. 대신 사고 싶은 책을 마음 편하게 확인하기 어렵지만 천장 문턱에 쓰인 문구가 마법처럼 눈에 들어온다.


"Be not inhospitable to strangers, lest they be angels in disguise."
낯선 사람에게 함부로 하지 말라, 어쩌면 그들은 지금 변장하고 있는 천사일지도

  

그리고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는 영어 과외 구인 글이나 클럽 모집글이 붙어있다. 2층에는 가난한 문인들에게 잘 곳을 제공했던 장소였던 것을 알려주듯이 작은 세면대, 침대, 타자기가 놓인 책상을 그대로 확인할 수 있는데 특히 낡은 풍금을 보면 괜히 건반을 눌러보고 싶은 충동이 일어난다. 그리고 가득 찬 책장 사이 작은 창문 너머에는 당시 작가들의 기도가 들렸을지 모를 노트르담 성당이 보인다.


책장에는 낡고 오래된 책들이 사람들의 흔적을 그대로 간직한 채 서점을 지키고 있다. 작가의 치열한 고민과 그가 쏟아부은 에너지 그리고 그 책을 읽었던 사람들의 추억 등등 한없이 연약해 보이는 종이지만 그 속은 셀 수 없이 많은 것을 담고 있는 강인한 존재인 것이다. 


서점을 나오며 문득 나도 내면이 강한 존재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들의 시선, 목소리는 표지로 덮고 오롯이 내실을 채우는데 집중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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