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탈출
23. 탈출
초휘가 한국으로 떠나는 날이 잡히자 진경의 건강은 급격하게 나빠지기 시작해 병원에 다시 입원하면서 떠나야 할 초휘의 마음을 애타게 하였다.
“마마! 나, 가기 싫어, 그냥 이곳에서 학교 다니거나, 마마가 다 나으면 한국은 그때 가도 돼, 지금은 이곳에 있을게, 제발 아프지 마!” 초휘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무섭기만 했다.
그녀는 대성통곡하는 초휘를 안고 찢어지는 가슴을 부여잡았다.
“초휘야! 울지 말고 나를 봐! 마마는 괜찮아! 내가 다 아는 병이야, 의사가 치료만 잘하면 곧 낳는다고 했어, 우리 모두 잘 될 거야, 아무 걱정하지 마.”
초휘는 떠나는 날까지 마마 곁에 머물며 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내가 공항까지 같이 나가려고 했는데 내가 이래서 어떻게 하니? 응평 할아버지가 공항까지 데려다 줄꺼야, 우리 딸과 분위기 있는 공항 이별을 바랐었는데…, 공항에 도착해서 전화해! 어서 서류 챙기고 출발해! 할아버지가 너무 오래 기다리고 계셔, 어서 가.” 그녀는 초휘의 등을 떠밀 듯 채근했다. 초휘는 결심이라도 한 듯 벌떡 일어났다.
“마마! 치료 잘 받고 빨리 나아서 내게 와야 해!” 겨우 마마의 손을 놓은 초휘는 복도를 향해 걸어갔다. 자신을 쳐다보고 있을 마마를 생각해 뒤를 돌아보았지만, 마마는 그 자리에 없었다.
그녀는 떠나는 초휘의 뒷모습을 차마 볼 수가 없어 병실 밖으로 나갔다. 꾹 참고 있었던 울음이 터져 남의 이목도 아랑곳하지 않고 ‘끄억끄억’ 거리며 목놓아 울기 시작했다.
‘드디어 다 끝났구나.
이제 내게는 아무것도 없다.
그 아이는 그렇게 갔다, 야속하게도.
보잘것없는 이 작은 가슴에
이다지도 큰 고통을 둔 채.
그래, 이 아픔도 곧 끝나겠지.
나에게는 다행히 죽음이 있으니까.
이제는 다 필요 없다, 초휘도.
삶이 이런 거였다면
좀 더 쉽고 아프지 않게 살 수 있었으련만,
불쌍한 것은 오로지 나의 몫이구나.
그래, 안녕! 내 딸아!’
병원을 나온 초휘는 답답하고 우울했던 마음이 사라졌다. 공항에 무사히 도착한 초휘는 바로 마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한결 밝은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 마음이 안정된 초휘는 공항에 앉아 그녀가 당부한 말을 생각해 보았다.
“잘 듣도록 해라, 네가 서울에 도착하면 찾아갈 곳 연락처가 이 편지에 있으니 잘 찾아가도록 해라. 거기 계신 분들이 너를 보면 반가워하고 잘 보살펴 주실 거야. 그리고 가는 도중에 무슨 일이 있으면 그 연락처나 내게 연락하고 모든 것 조심하고, 도착하면 바로 마마에게 연락해라. 마마가 같이 갔으면 좋았을 텐데 아직 병원 치료를 더 받아야 하니 건강이 좋아지는 대로 이곳 정리하고 바로 따라가겠다.”
마마는 자신을 낳아준 엄마가 아니고 낳아준 엄마는 지금 서울에 있으며 말 못 할 사정이 있어 마마가 대신 자신을 키웠을 것이라고 초휘는 생각하고 있었다. 아마 그 비밀은 마마가 적어준 그 편지에 내용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이 들자 당장 내용을 확인해 보고 싶었지만, 마마가 꼭 비행기 안에서 보라는 당부로 조금만 더 참기로 했다.
초휘는 아픈 마마를 혼자 두고 떠나는 것이 마음에 걸렸지만, 한국을 향한 설렘과 기대로 마냥 부풀기만 했다.
초휘는 비행기가 중국을 벗어날 때쯤 조심스럽게 그녀의 편지를 펴 보았다.
[내 딸 초휘, 아니 은비에게 마마가 먼저 용서를 빌면서.
어느 날 앞에 나타난 아름다운 보석에 욕심이 난 나머지 몰래 들고 나와 이름을 바꿔 내 것으로 만들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결국, 하늘은 그 이기적이고 천인공노할 죄를 잊지 않으셨나 보다, 이제 어떠한 벌도 달게 받겠지만 나는 그동안 너 때문에 세상 부러울 것 없이 충분히 행복했었고 그것으로 만족하고 여한이 없단다. 모든 것이 내가 너를 너무 사랑했기 때문이라고 변명하고 싶구나.
나의 심장 은비야!
늦었지만 널 이제 제자리에 돌려놓아 네게 지은 죄를 조금이라도 용서받고 싶구나. 오랫동안 애타게 찾고 계시는 부모를 만나 그간 부족했던 정도 많이 나누고 못다 한 사랑도 많이 하면서 새로운 삶을 살기 바란다. 네가 시집가서 잘 사는 모습만 상상하고 있었는데 내 욕심이 너무 과했구나. 그간 우리 오래 했던 정이 조금이라도 남아있다면 부디 이 마마를 불쌍히 여겨 가끔이나마 생각해 주기 바란다.
과거에도 미래에도 영원한 내 딸 은비야!
네가 혹 나를 다시 찾는다면 그곳은 내 무덤가 일 것이다, 네게 마지막 부탁이라면, 언젠가 우리의 뼈를 한국으로 데려가 너와 가까운 곳에 머물게 해 다오, 꽃피고 두견이 울 때 가끔은 찾아와 네 소식 들려준다면 마마는 지하에서도 행복할 거야.
부디 건강하고 행복하길 빈다. 영원한 내 사랑 안녕!]
은비는 손으로 입을 막으며 터져 나오는 울음을 삼켰다. 왜 그렇게 눈물이 나는지,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몰랐다. 오로지 자신을 포함한 모두가 불쌍하고 가엽기만 했다.
마침내 눈물이 편지 위로 흐를 때 비행기는 인천공항 도착 안내 방송이 나왔다. 그녀는 눈물을 훔치고 이제까지 상상으로만 그리던 그 엄마의 땅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바람을 타고 넘어온 가을이 온 산에 뿌려졌는데 무슨 연유인지 계절은 그에게 그냥 무색무취에 아무런 의미가 없어 보였다. 어쩌면 산다는 자체가 그러한 것 같았다.
“오늘 준구가 왔었는데 뭐가 힘이 드는지 말은 안 하지만 눈치가 영선이 때문에 그러는 것 같아요.”
“왜?” 그는 뭐에 찔린 사람처럼 깜짝 놀랐다.
“모르죠, 부부싸움이라도 했나 보지.”
“벌써 힘들 정도로 싸움을 하면 어떡하나.”
준호는 갑자기 가슴이 먹먹해졌다. 무슨 큰일이 생기지나 않았나 싶었고, 그 또한 자신과 연관된 일이 아닌지 걱정에 신경이 곤두섰다. 그렇지 않아도 제주에서의 일이 계속 마음에 걸렸다. 처남에게 전화해서 상황을 물어보고 싶었지만, 자칫 오해나 사지 않을까 망설이고 있던 차였다. 그는 답답한 마음에 이제까지 자신이 영선에게 무엇을 잘못했나 되짚어보았다. 자신로서는 그녀를 위해 최선을 다했을 뿐이라고 생각하지만, 업무로 시작된 그녀와의 관계에 아무런 개인감정이 섞여들지 않고 잘 처리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그렇다고 확실히 대답할 수가 없었다. ‘왜 그녀를 처남댁으로 생각을 하게 되었지? 어쩌자고 그런 무모한 생각을 한 거야?’ 그녀와 사이에 측은지심인지 연민일지 모르는 이성으로의 감정이 그녀를 떠나가지 못하게 내가 계속 붙들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는지 뒤돌아보게 되었다. 어쩌면 영선보다 자신이 더 그녀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있었는지 모른다, 윤리와 사회 통념의 굴레 속에서 사랑할 용기를 내지 못하고 그렇다고 버리지도 못하면서 달콤한 향만 즐기며 영원히 그런 가식적인 관계를 유지하겠다는 비겁한 속내의 결말은 아닌지 자책감이 들었다.
곧 무슨 일이 생기지나 않을까 노심초사하던 어느 날 결국 우려하던 일이 일어났다.
“여보, 여보! 아무래도 준구에게 무슨 일리 있는 것 같아, 저러다가 오래 못 살 것 같은데.”
“못 살다니 그게 무슨 소리요?” 그는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 한동안 말을 잃었다.
“영선이가 싸우고 이혼하겠다고 집을 나간 지 일주일이 지났다는데요.”
“도대체 왜? 이유가 뭐야?” 그는 쿵쾅거리는 심장 소리를 들었다.
“문제는 이유를 모르겠다는 거지요, 제주 다녀온 뒤로 말도 없고 툭하면 짜증만 내고 심지어는 근모와 잠자리까지 피한다는 것인데, 그래서 둘이 큰 다툼이 있었다고 하네요. 근모가 답답해 죽으려고 해요.” 준호는 깊은 나락으로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결국, 나의 무모했던 모든 계획의 종말이 왔구나.’
“처남은 그렇다고 지금까지 가만있으면 어떻게 해! 빨리 찾아봐야지.”
“시골이고 친구고 여기저기 연락해서 찾아봤는데 어디에 있는지 알 수가 없데요, 직장도 계속 나오지 않고 있나 봐요. 이 일을 어떻게 해요?”
아무래도 이번 사태에 대해 자신이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느낀 그는 일이 크게 잘못되기 전에 영선이를 한번 만나 봐야 할지 난감하기만 했다.
“며칠을 무단으로 결근하더니 어제 우편으로 회사에 사표를 제출했어요. 그렇지 않아도 무슨 일인지 전화드리려고 했어요.” 주저하다 영선의 회사에 전화해 본 결과, 조 이사의 대답에 그는 망연자실했다.
그렇게 영선은 목에까지 차오른 갈증을 꿀꺽 삼키고 돌아섰다. ‘그녀가 이루고자 하는 사랑은 과연 어떤 모양일까?’ 그는 그녀가 쏜 불화살을 맞고 한 줌의 재도 남김없이 태워 스러진다면 차라리 행복할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늘거리는 코스모스밭 너머 포돗빛 짙은 하늘로 날아간 새는 이제 그 흔적이 없다. 아무것도 남은 것이 없다.
베인 상처에 소금이 뿌려지는 아픔이 겹겹이 쌓여 나이테를 이루고 은비 부모의 애타는 가슴은 세상과 세월의 방치 속에서 10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매일 중국에서의 소식에만 매달렸던 지난 세월, 이제는 한 달에 한두 번 연락이 오더니 아예 소식이 끊어 진지 오래였다.
인자는 문뜩 은비가 없는 일상이 몸에 배어 자연스러움에 놀라곤 했다. 이렇게 은비를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지내는 자신이 너무 무능하고 무책임한 엄마가 아닌지 자책하고 있었다. ‘딸아, 이렇게 기도밖에 할 수 없는 나를 용서해 줘! 어찌 너를 한시라도 잊을 수가 있겠니.’
봄은 어김없이 다시 찾아왔다. 그녀의 집에 오랜만에 혜경이도 찾아왔다. 화사하게 차려입은 혜경이가 부럽기도 하고 자신의 마음을 몰라주는 듯하여 야속하기도 했다.
“언니, 우리 고양시 꽃박람회나 다녀와요.”
“갑자기 무슨 박람회야?”
“밖에 날씨가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멀지 않으니 기분도 전환할 겸 다녀오면서 맛있는 것도 먹고 와요.”
인자는 엄두가 나지 않았지만, 갑자기 꽃도 보고 싶고 혜경의 간청도 고마워 따라 나와보니 한결 머리가 맑아지는 것 같았다. 달리는 강변 길도 여전히 신선하고 평화로웠다. 그렇게 한참을 달리던 차는 갑자기 터널 속으로 진입했다. ‘자유로에 이런 터널이 있었나?’ 터널은 어둡고 답답했다. 곧 끝나려니 했지만 좀처럼 끝이 나타나질 않았다. 그녀는 두려워지기 시작했고 곧 공포감에 싸여 소리를 질렀다.
“무서워! 우리 이제 돌아가자! 혜경아!” 그녀는 운전하고 있는 혜경을 불렀지만, 혜경은 간곳없고 자신이 운전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녀는 전속력으로 달리며 숨이 막혀 죽을 것 같은 지금을 벗어나려고 발버둥 쳤다. 용케 앞차를 추돌하지 않고 잘도 피하며 달리는 차가 신기하기도 했다. 차는 드디어 환한 들판으로 빠져나와 안도의 숨을 쉬는데, 그곳에는 끝없이 넓은 꽃밭에 많은 사람이 즐겁게 노닐고 있었다. ‘혜경이는 어딜 갔을까.’ 혜경이를 찾으러 헤매다가 자신이 좋아하는 흰 장미꽃밭을 발견하고 발걸음을 멈춰 섰다.
“아! 눈부셔!” 그녀가 넋을 잃고 바라보고 있는데 어떤 어린 남자아이가 웃으며 다가왔다.
“이 꽃 좋아하세요?” 어린아이가 당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좋고말고, 얼마나 예쁘냐!”
“그럼, 제가 한 송이 드릴게요.” 그 아이는 미처 말릴 틈도 없이 큰 장미 한 송이를 꺾어 그녀 앞에 내밀었다.
“ 자! 가지세요, 제 선물이에요.” 그녀는 깜짝 놀랐다.
“애야! 무슨 짓이냐! 여기에서 꽃을 꺾으면 안 되는 것 몰라! 이를 어떻게 해.”
“괜찮아요, 주인한테 허락받았어요.” 그 아이는 그녀의 손에 꽃을 건너 주고 사람들 속으로 사라졌다. 얼떨결에 손에 쥔 꽃은 너무 탐스럽고 아름다웠다. ‘그런데 이를 어쩌나,’ 그녀는 두리번거렸다. ‘이것을 그냥 버리고 갈 수도 없고 숨겨서 가지고 갈 수도 없고.’ 그녀는 어찌할 줄을 몰라하다가 잠에서 깨어났다.
그녀는 꿈이 예사롭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게 길몽인가 아니면 안 좋은 꿈인지 알 수 없어 머리가 산만했다. ‘갑자기 나타난 그 사내아이는 뭐야? 일전에 남편이 말했던 입양 이야기가 내게 너무 충격이었나? 또 어둡고 무서운 그 긴 터널과 그 화사한 장미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그냥 그 꽃을 가지고 올 걸 그랬나?’ 그녀는 그것이 좋은 징조라고 나름 해석하며 꽃을 들고 나오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하지만 괜찮아! 그 꽃을 버리지 않고 꿈이 끝날 때까지 내가 들고 있었잖아’ 그녀는 나약해질 대로 나약해진 자신의 모습에 애처로움을 느꼈다.
새벽 기도를 마치고 집으로 향하는 인자는 마음이 뒤숭숭했다. 간밤에 잠을 설치기도 하고 오늘따라 기도가 집중되지 않아 산만한 마음에 은비에 대한 애절한 생각으로 눈물만 나왔다. ‘주님! 은비가 사라진 지 10년이 지났는데, 이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말해주세요, 더 기다리라고 하신다면 기다리겠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언제까지인지 말해주세요.’ 그녀는 지친 마음을 부여잡으려 안간힘을 썼다.
돌담 사이로 손을 내밀어 얼굴을 스치는 활짝 핀 개나리꽃을 보지만 그 화사함이 오히려 서글퍼지는 오늘의 기분은 뭐라고 형용할 수 없었다.
저 앞에 여행 가방을 끌며 한 젊은 여자가 두리번거리며 걸어가고 있었다.
“드르륵드르륵…” 인자는 그녀의 가방 끄는 소리에 같이 보조를 맞춰 그녀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 ‘이렇게 이른 아침부터 어느 집을 찾아왔을까?’
“어?” 뜻밖에 앞서가던 그녀가 멈춘 곳은 자신의 집 앞이었다. 그녀는 집을 올려다보고 대문 틈으로 안을 살피며 두리번거렸다. ‘우리 집을 찾아올 사람은 없는데?’ 인자는 행여나 자신의 집을 찾는 사람인가 싶어 급히 다가가서 보니 뒷모습은 키 큰 성인 같았는데, 얼굴은 아직 애 띤 여자아이였다.
“누구세요? 어느 집을 찾아요? 이 집을 찾아온 거예요?”
검은 재킷과 통이 넓은 바지, 뒤로 묶어 올린 머리, 앞이 뭉툭한 하이힐, 낯 설은 모습에 인자는 그녀가 외국에서 온 여자임을 알았다.
“저~.” 그녀가 돌아서 서로 눈이 마주치는 순간 둘은 잠시 감전되듯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누구! 누구세요?” 인자는 머릿속이 하얗게 변하며 눈을 크게 뜨고 한걸음 물러서 그아이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저기, 엄마? 엄마!, 저 은비….” 은비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곧 흐느끼기 시작했다.
“뭐라고? 은비? 은비라고? 네가 은비라고? …세상에!” 그녀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네가 은비라고? 아니 어떻게 네가 은비란 말이냐?”
“나! 은비예요! 나를 모르겠어!” 그녀는 엄마 앞에 꿇어앉아 울면서 엄마의 손을 잡고 흔들었다.
“아이고 하나님 아버지, 이게 무슨 말이냐! 네가 정말 은비란 말이냐! 어디 보자 네가 정말 내 딸이란 말이지? 이게 꿈인가?”
엄마는 그녀의 얼굴을 뜯어보듯 만지며 오열했다. 때아닌 소란에 집안에서 뛰어나온 정현이는 눈앞의 광경을 믿을 수가 없었다.
“이게 꿈이냐, 생시냐! 말도 안 돼!”
임 사장으로부터 연락이 온 것은 학교를 뒤져서 초휘라는 학생을 찾겠다고 다녀간 후로 일주일이 지난 때였다.
“사장님! 드디어 아이를 찾았습니다.”
“뭐라고요? 우리 은비를 찾았다고요?” 구현이는 숨이 턱 멎었다.
“그렇다니까요. 정말 애를 먹었습니다. 아이가 예술전문학교를 다니는 줄도 모르고 일반 학교만 찾고 다녔으니.”
“정말 우리 아이가 확실합니까? 만나서 확인한 겁니까?”
“아니, 아직 만나 보지는 못했지만 제 정보에 의하면 확실합니다. 미진이라는 학생이 여기 학교에 다니고 있기는 한데, 마침 지난주 휴학을 하고 나오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지금 학생의 집 주소를 알아내서 그곳으로 이동하려고 하는데 사장님도 그쪽으로 바로 오도록 하세요.” 구현이는 그간 이곳에서의 지난 시간이 주마등처럼 떠올랐다. ‘정말 그 끝이 다가온 것인가. 이번에는 임 사장이 알아낸 정보인데 틀림은 없겠지.’
그 집은 붉은 벽돌로 지어진 단독주택이었다. 정원에는 나무와 화초가 가득 차 있었는데 집안이 너무 조용한 것이 지금 아무도 없는 듯했다.
“이거 벌써 자취를 감춘 것 아닐까요? 학생이 때맞추어 휴학했다는 것이 마음에 걸리긴 합니다.” 임 사장 얼굴도 초조한 빛이 역력했다. 한 시간을 숨어 집안을 감시했지만 아무런 기척이 없자 임 사장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초인종을 눌렀다. 그러나 아무런 응답이 없자 그는 바로 옆집의 문을 두드렸다.
“그 집 불 꺼지고 안보인지 며칠 됐는데요. 아마 둘이 여행이라도 가지 않았나 싶어요.” 그들은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난감해했다.
“벌써 날라버린 것 같은데, 어떻게 눈치를 챘을까? 그럴 틈이 없었는데.” 그들은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집 주위를 계속 서성거렸다.
“오늘은 늦었으니 내일 새벽부터 나와 좀 더 지켜봅시다. 보아하니 살림은 그냥 있는 것 보니 아예 떠난 것 같지 않으니 그들이 돌아올 때까지 지켜보는 수밖에 없어요.”
숙소에 들어서자 구현이의 전화기가 울렸다. 한국에서 준호의 전화였다.
“여보게 구현이, 지금 어디인가?”
“예 형님! 그렇지 않아도 전화드리려 했는데, 드디어 오늘 은비를 찾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은비가 사는 집에까지 왔는데 없어서….” 구현이 말이 끝나기 전에 준호가 말을 끊었다.
“아니, 무슨 소리인가, 은비는 이틀 전에 무사히 여기 집에 와 있는데, 아직 모르고 있었던 거였구나.”
“예? 은비가 돌아오다니 무슨 말입니까?”
“은비가 살아서 이곳 서울집을 찾아왔단 말일세.”
“서울 집에 돌아와 있다고요? 어떻게 말입니까?”
“그곳에서 여자가 비행기 태워 보내 혼자서 집을 찾아왔다는 말일세, 건강하고 번듯하게 잘 자라서 왔으니 얼마나 대견한 일인가. 형님 집은 지금 축제 분위기야.”
“… 그래요? 정말입니까? 세상에 어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나요, 우리 은비가 무사히 돌아오다니 믿어지지가 않네요, 그런 줄도 모르고 저는….” 구현이는 목이 메어 말을 잊지 못했다.
“미안해, 다들 경황이 없어서 자네에게 바로 연락을 못 한 모양이네, 정말 미안하네, 이제 다 끝났으니 어서 돌아오게, 그간 너무 고생이 많았네.” 구현이는 맥이 풀어져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은비 집 대문 앞은 취재진과 소식을 듣고 찾아온 이웃 주민들로 연일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속보입니다.
10년 전 유괴범에게 납치되어 행방불명된 당시 초등학교 1학년이던 황 은비 양을 기억하시죠. 은비 양이 어제 17세 성인이 되어 혼자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지 취재를 나간 기자에게 상황을 들어보겠습니다.’
‘여기는 은비 양이 돌아온 연희동 자택입니다. 은비 양이 사라진 당시에 살았던 집으로 은비 양 부모는 딸이 찾아올 것에 대비하여 그동안 이 집을 떠나지 않고 지금까지 지키고 있었다고 합니다. 지금 은비 양은 이 집에 머물며 외부와의 접촉을 차단하고 가족들과 마음의 안정을 취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은비 양은 당시 경찰이 유력한 용의자로 쫒던 권수길 부부에게 납치되어 중국으로 끌려가 지금까지 그곳에서 지내왔던 것으로 밝혀지면서 권 씨 부부의 행방에 대해서도 조사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은비 양이 그들에 대하여 일절 입을 열지 않고 있어 수사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이라고 합니다.’ - THE EN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