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추적 3
22. 추적 3
“안색이 너무 안 좋아 보이는데 오늘은 일찍 들어가 쉬도록 하세요.” 추 씨가 뒤쫓아 다니며 걱정을 하였지만, 초휘의 하교 시간까지 버티며 기다렸다. 이제까지 그 흔한 감기 한번 걸리지 않고 건강하던 그녀였지만 요즘은 몸 상태가 예전 같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긴장이 풀어져서 그런가? 이제 나도 나이가 들었구나.’
“마마! 많이 아파?” 초휘는 겁먹은 얼굴로 그녀의 이마를 짚어 본다.
“이상 해! 열은 안 나는데, 진짜 아픈 거야?”
“아니야, 하하하.” 그녀는 그런 초휘의 표정을 보고 웃음이 나왔다.
“어구! 우리 딸, 마마 아픈 것도 챙기고 이제 다 컸네, 마마는 절대 아프지 않아, 우리 초휘 때문에 아플 수가 없어.”
그러나 어느 날부터 조금만 무리했다 싶으면 허리가 저리는 것이 단순히 관절 문제라고 생각했으나 점점 정도가 심해지는 것이 걱정되어 결국 병원을 찾았다.
“큰 문제는 아니겠지만 아무래도 췌장에 문제가 생긴 것 같으니까 큰 병원에 가서 정밀 진찰을 받아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의사의 권유로 그녀는 곧 시작되는 초휘의 방학 때를 기다려 근처 종합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병실에 누워 집에 혼자 있을 초휘를 걱정하면서도 자신의 앞날에 대한 생각으로 잠을 못 이루고 있었다.
‘어쩌면 이대로 죽을지도 몰라!’ 의사들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는 느낌에 그녀는 계속 불안해하고 있었다.
마음 졸이며 의사의 표정을 살피는 그녀 앞에서 의사는 한참을 벽에 걸린 X-ray 사진만 들여다보다가 입을 열었다.
“당장, 보호자가 없다고 하니 직접 말씀을 드릴 수밖에 없네요, 결과적으로 상태가 안 좋습니다. 병원에 너무 늦게 왔어요, 암세포가 이웃 장기에 퍼져 손을 쓸 수가 없습니다.” 그녀는 ‘쿵’ 하고 내려앉는 심장 소리는 들렸지만, 아직 정확히 그것이 무엇인지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럼, 제가 죽는다는 것인가요? 얼마 못 산다는 것인가요?”
“예, 치료에 따라 다르겠지만 많이는 일 년 빠르면 삼 개월입니다. 이제 천천히 주변 정리를 하도록 하세요.” 그녀는 하늘이 무너지는 절망감에 어지러워 눈을 감았다.
눈물이 앞을 가려 어떻게 집에 왔는지도 몰랐다. ‘어찌 내 복이 이것밖에 안 된단 말이냐, 불쌍한 내 인생, 그럼 우리 초휘는 어떻게 하라고!’ 시간이 지나자 차츰 마음이 가라앉으며 집안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모든 것이 생소하게 보였다. ‘이곳이 내가 살던 집이고, 이 아이가 내 딸 초휘구나.’
“초휘야! 초휘야! 마마 차 한잔 타줄래!.” 초휘에게 내색하지 않으려고 그녀는 차 한잔을 들고 정원으로 나왔다. 이제까지 지나온 과거가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아이도 낳지 못해 남의 아이를 훔쳐서 고향에 살지도 못하고 쫓기며 사는 기구한 자신이 너무 애처로워졌다. 어린것 외에 아무도 없는 이 먼 곳에서 어쩌면 흔적도 없이 사라질 처지를 생각하니 왜 이토록 모질게 살아야 했는지 부질없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모든 것을 내려놔야 할 시간이 가까워진 것 같구나.’ 밤새 흐르는 눈물은 멈출 줄을 몰랐다. ‘다 내가 초휘에게 저지른 죄에 대한 값을 치르고 있는 거야, 결국 초휘는 내 것이 될 수도 없었는데, 어떻게 저런 귀한 것을 아무 값 없이 내 것으로 만들 생각을 했을까! 이제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그녀는 밤새 생각을 마치고 부스스한 얼굴로 초휘와 아침 식탁에 앉았다. 평소와 다른 그녀의 모습에 초휘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물었다.
“어제 많이 아팠어?”
“아니야! 마마는 곧 다 나을 테니 걱정하지 말고, 어떻게 이번에는 우리 초휘 성적이 좀 좋아지려나?”
“응! 이번에는 기대해도 돼요, 학년말 시험을 너무나도 잘 봤거든.”
“아 우리 초휘는 항상 마마를 기쁘게 하는구나, 너무 예쁜 내 새끼!” 환하게 웃는 초휘의 얼굴을 보니 모든 병이 다 사라지고 곧 나을 것만 같았다.
“초휘야! 마마가 생각해 봤는데 대학은 파파의 고국인 서울로 가는 것도 좋을 것 같은데?”
“왜? 지난번에는 안된다고 했잖아?” 초휘는 기쁜 나머지 소리를 지를 뻔했다.
“그야 너를 멀리 보내기 싫어서 그랬는데 아무래도 예능계통은 한국이 앞서있고 너는 한국어가 능하니까 조건이 좋잖아!”
“그래도 돼?, 마마는 어떻게 해, 나 없이는 못 산다고 하면서.”
“네 장례를 생각하면 무슨 일리라도 해야지, 나중에 네가 영 보고 싶으면 마마도 서울로 이사 가면 되잖아, 그러니까 아무 걱정하지 말고 이제부터 우리 준비하자. 서울에서 학교 다닐 것 같으면 일 년 전에 미리 가서 학교도 알아보고 학원도 다니면서 준비해야 해.” 그녀는 목이 메어 말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그럼 마마 건강도 빨리 나아야지.” 아픈 자신 앞에서 서울로 간다는 기쁨을 숨기지 않는 초휘를 보면서 벌써 그리움에 가슴이 아파 왔다.
그러는 중에 갑자기 임 사장이 사무실에 들어섰다.
“황 사장님 오랜만입니다. 하하하!” 호기롭게 웃는 임 사장과 비해 황 사장은 잔뜩 경계하는 빛이었다.
“나 나쁜 사람 아닙니다, 나 건전한 대한민국 사람 맞습니다. 여기 사람들에게 다 물어보십시오, 그간 좀 섭섭했지만 다 잊어버렸지요. 오늘은 믿을만한 소식이 있어 들렸습니다. 듣기를 원하시면 말씀드리고 필요 없다면 그냥 돌아가겠습니다.” 임 사장 정보라면 신빙성이 있으리라 생각되어 내용이 궁금하였다.
“예! 임 사장 그것은 미안하게 됐소, 좋은 소식이 있다면 듣고 싶습니다.”
“그런데요, 황 사장님이 찾던 그 권수길 사장 있지요? 그 사람 이미 죽었습니다.”
“예?”
“그 사람 죽은 지 오래됐어요, 아마 중국에 들어온 지 2년 만에 교통사고로 죽어 신장에 묻혀 있는 것 확인했습니다.” 구현이는 허망한 기분이 들었다. ‘권수길만 생각하고 다녔는데 그동안 유령을 잡으러 다녔다는 것인가.’
“그럼 우리 은비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 아내와 아기는 타이허에 살고 있다는 믿을 만한 정보가 있는데 우리도 아직 찾아보지는 못했어요. 소문이 나면 그들이 다른 곳으로 또 숨어버릴 가능성이 있으니 우선 그곳의 아이 학교를 중심으로 찾아보는 것이 빠를 것 같습니다.”
“그럼, 나는 어떻게 도와드려야 합니까? 차가 필요하면 우리 차를 이용하시지요.”
“아닙니다. 그 차는 오히려 방해만 될 뿐 우리 차가 더 안전합니다.”
“그럼, 여러 가지 경비도 필요하실 텐데 우선 이것으로 쓰도록 하세요.” 구현이는 사양하는 그의 주머니에 봉투를 쑤셔 넣었다.
“아무튼, 감사합니다, 일이 잘만 되면 별도 사례는 잊지 않겠습니다.”
“됐습니다, 일단 그들을 찾은 다음에 이야기하시지요.”
그들은 곧바로 모든 것을 싣고 임 사장을 따라 타이허로 사무실을 옮겨갔다.
임 사장을 만나겠다고 아침 일찍 나갔던 이 씨가 저녁 늦게 돌아왔다.
“자 잘 보세요, 사장님! 이것이 임 사장이 알아본 그들의 호적 내용입니다.” 이 씨는 흥분하여 오늘 임 사장과 같이 은비의 행적을 조사한 결과를 설명하기 시작하였다.
“여기를 보면 그들이 중국에 들어왔던 2002년에 소주에서 호적을 위조하여 각각 호민, 주희, 미진이라는 이름으로 천진으로 왔다가 2년 만에 남자가 죽은 후 그의 아내가 2005년 10월에 아이와 함께 연천으로 간 것으로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내가 난창에 다녀오는 길입니다.”
“난창요?”
“예! 그녀가 이곳으로 오기 전에 오랜 기간 머물렀던 곳으로 그들의 거주지를 찾아다니며 모든 것을 알아보았죠, 잘 생각해 보세요. 그때 우리가 난창의 문방구에 다녀왔던 것 기억하세요?”
“문방구? 그 남해 갈 때 잠깐 들렀던 곳 아닌가? 그곳이 난창이었나?”
“맞습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사실이 있습니다. 그때 그 여자가 살던 집이 그 문구점 근처였다는 것과 그 여자가 아이와 함께 그 앞을 매일 다녔다는 사실, 그리고 우리가 그곳을 다녀온 뒤 그녀가 바로 그 마을에서 감쪽같이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그 말은 그곳으로 우리가 은비를 찾으러 온 것을 알고 그 여자가 다른 곳으로 피해 달아난 것으로 볼 수 있지요.”
“그런데, 그때 문방구에서 본 아이가 은비였다고? 분명히 아니었는데…?” 그는 혼란스러웠다.
“사장님! 생각해 보세요. 그때가 사장님이 조카를 마지막으로 본 뒤로 적어도 5~6년이 흐른 뒤였으니 아이들이 요즘 얼마나 빨리 자라고 변하는지 아세요? 사장님은 아이의 옛날 모습에만 사로잡혀 변한 은비를 알아보지 못한 것입니다.” 구현이는 어안이 벙벙해 그때를 애써 돌이켜 생각해 보았다. ‘아니 그때 눈앞에 있었던 아이가 오매불망 찾아다니던 우리 은비였다니 말도 안 돼.’ 그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 은비가 가까이 있다는 사실이 더 중요하여 지난 일의 가부를 생각할 때가 아니었다.
“그러면 그들이 지금 이곳 어디에 있는지에 대한 정보는 아직 없나요?”
“예 임 사장이 확인한 바로는 그 여자가 이곳 바사로 근처에서 가끔 목격되었다는 정보가 있어 그 근처를 중심으로 탐문하는 중이고, 시내 고등학교에 초휘라는 이름의 학생을 찾고 있으니 머지않아 그들의 소재를 파악할 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 그러나 그들이 우리의 추적을 눈치챈다면 또다시 깊이 숨어버릴 가능성이 있어 조심스럽다고는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