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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동석 Sep 06. 2022

눈빛으로 말하는 남자 울버린

그가 나에게 남긴 칭찬의 말

 이제 와 생각해보니 2009년에는 해외 스타를 참 많이 만났나 보다. 인터뷰를 위해 광화문의 한 식당에서 휴 잭맨과 다니엘 헤니를 만났다. 두 사람은 영화 '엑스맨 탄생: 울버린'을 홍보하기 위해 내한했다. 인터뷰 장소에 들어는 두 사람을 보자마자 뭔가에 압도되는 느낌이었다. 하긴 누군들 그렇지 않겠는가. 영화 속 히어로가 현실 세계로 튀어나왔는데 말이다. 인터뷰를 시작하기 전 카메라와 조명 세팅을 하는 동안 가벼운 대화들이 오갔다. 휴 잭맨은 많은 말을 하진 않았지만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특히 그의 눈빛이. 나는 대화를 나눌 때 상대의 눈빛을 잘 관찰하는 편이다. 눈빛에는 많은 메시지가 담겨있다. 상대가 대화를 재밌어하는지, 지루해하는지, 나에게 친근을 가지고 있는지, 적대적인지 등. 꽤 많은 정보를 눈빛에서 포착할 수 있다. 휴 잭맨의 눈빛은 처음 보는 눈빛이었다. 그윽하고, 깊으며, 온화했다. 래서 대화 상대의 성격이 어떻든 간에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을 것만 같은 눈빛이었다. 그런 눈빛으로 그가 인터뷰 전 나에게 건넨 말들은 많지 않았지만 대부분이 칭찬이었다. 그는 나에게 슈트와 타이가 멋지다는 말로 입을 열었다. 눈빛에서 진심이 느껴졌다. '내가 멋져봤자 당신보다 멋지겠어요?'라는 생각이 그의 눈빛으로 사르르 녹아내렸다. 눈빛이 얼마나 그윽한지 잠시 생각했다. '넥타이를 풀어서 선물로 줘야 하나?', '아니야. 최동석! 주접떨지 마! 네 앞에 있는 사람은 세계적인 스타라고. 너 따위의 넥타이는 필요하지 않아.' 이어서 그의 칭찬 펀치가 또 날아들었다. "당신 시계도 정말 멋져요." 나는 다소 당황했다. 면세점에서 40만 원 정도 주고 샀던 시계였다. 그런데 그의 눈빛을 보자마자 또 생각에 빠졌다. '정말로 맘에 들어하는 눈빛인데 내 시계를 선물로 줄까?', '아니야. 최동석! 주접떨지 마! 네 앞에 있는 사람이 돈이 없어서 시계가 멋지다고 칭찬했겠어?' 정말 짧은 시간 동안 내가 이런 생각을 했다는 게 지금도 우습다. 하지만 눈빛으로 사람을 매료시키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눈으로 칭찬하는 게 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결국 커뮤니케이션은 단순히 말로만 하는 게 아니라 눈빛과 제스처 등 많은 것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과정이다.

 칭찬의 말은 의도성을 의심받기 쉽다. 특히 잘 모르는 사이에선 그렇다. 그렇기 때문에 단순히 언어적 메시지뿐만 아니라 눈빛에 진정성이 담긴다면 낯선 사람의 칭찬도 순수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는 걸 휴 잭맨을 만나서 깨닫게 되었다.

 

 사실 함께 인터뷰한 다니엘 헤니의 눈빛도 휴 잭맨과 많이 닮았다고 느꼈다. 필자는 네이티브 스피커가 아니다. 영어를 약간 할 줄 아는 정도의 수준이지만 나와 대화를 나누던 다니엘이 '영어를 잘하시네요.'라고 말해주었다. 나는 "아니에요. 외국에 나가서 영어를 배운 적도 없는 걸요."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더 놀라워하면서 휴 잭맨에게 말했다."이 분 한국에서만 공부했는데도 이 정도 영어를 한다네요."

그런데 솔직히 다니엘의 한국말이 나의 영어보다 나은 것 같았지만 그는 진심 어린 눈으로 자기가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나에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칭찬이 빈말이 아니라 진심이라고 말하는 그의 눈빛에서 진심이 느껴졌다. 도대체 이 남자들 매력의 끝은 어디인가?

 대화를 나누는 동안 발견한 상대의 장점을 진심을 담아 이야기하는 건 좋은 습관이다. 진심을 담은 눈빛이 더해진다면 이건 방어 불가능한 무기와 같다. 마치 울버린의 무기 클로처럼! 하지만 우리는 그런 훈련이 되어있지 않다. 우선 칭찬에 인색한 게 가장 큰 문제고 상대의 눈을 응시하는 건 예의가 아니라고 배워왔기 때문이다. 자신의 진심을 눈빛에 담아 표현할 줄 알아야 하지만 그런 사람을 당돌한 사람쯤으로 취급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제 달라질 때가 되었다. 사회 분위기와 문화적 배경도 변해간다. 다소곳이 눈을 내리깔고 진심을 전하는 시대는 이제 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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