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을 읽으면 삶이 즐겁다

왜 나는 이 불친절한 책을 계속 읽게 될까.

by 이제

나는 『주역』 읽기를 좋아한다.

『주역』은 세상만물을 상징으로 담아내고 있지만, 읽는 이를 배려하는 친절한 설명은 거의 없다.

괘와 효의 말은 짧고, 많은 것이 생략되어 있다.

해설서를 펼치면 서로 다른 이론으로 겹쳐 있어 읽는 일이 한층 복잡해진다.

어떤 책은 “이 정도는 알겠지”라는 전제를 깐 채 훌쩍 다음 이야기로 넘어간다.

『주역』에는 본래 쉽고 간단하다는 의미가 있는데 실제로 마주하는 독서는 전혀 그렇지 않다.

어쩌면 이것이 바로 삶과 맞닿아 있는『주역』의 모습인지도 모르겠다.


『주역』의 이런 점 때문에, 나는 괘를 읽을 때마다 자연스럽게 상황을 그려보게 된다.

이 괘는 어떤 장면일까, 이 효는 어떤 국면에서 나왔을까를 상상한다.

그 과정에서 하나의 답을 찾기보다,

여러 가능성을 열어두게 된다.

그러다 보니 주역을 읽으면서

상황을 유추하는 힘, 맥락을 연결하는 힘이 함께 길러진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의적 해석을 하지 말라”는 말 앞에서는 종종 멈칫하게 된다.

내가 느낀 것, 내가 떠올린 장면, 내 삶과 연결해 이해한 생각들이

혹시 너무 쉽게 끌어다 쓴 것은 아닐까 의심하게 된다.

주역을 좋아한다고 말하면서도, 혹시 잘못 읽고 있는 건 아닐지를 늘 경계하고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자의성’에 대한 경고만큼이나 다양한 학설과 해석이 공존한다.

같은 괘와 같은 효를 두고도 시대와 사람에 따라 전혀 다른 해석이 제시되어 왔다.

이 사실은 주역이 하나의 고정된 정답을 요구하는 책이 아니라,

폭넓은 해석과 적용의 여지를 품고 있다는 증거처럼 느껴진다.

효사 앞에서

“이게 무슨 말일까”를 곰곰이 생각하고, 내 해석이 과하지는 않은지 되짚어보는 읽기.

주역은 어떤 ‘정답 해석’을 제시하는 책이 아니다.

선택의 갈림길에서 묻고, 답이라고 얻어진 점사에 기대어 살아본 뒤,

다시 돌아와 성찰한 흔적들이 상징의 언어로 남은 책이라고 나는 이해한다.

그래서 『주역』을 읽는 일은 해석을 외우는 일이 아니라 삶을 대입해 보는 일에 가깝다.

삶이 변화 속에서 이어지듯, 주역 또한 고정된 의미로 머물지 않는다.

『주역』을 읽는 각자의 삶이 그 해석 속에 스며들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주역을 읽다 보면 세상사의 면면을 바라보는 안목이 생기는 기분이 든다.

『주역』이

읽을 때마다 새롭게 읽히듯, 삶 또한 살아낼수록

판단은 줄고 태도는 신중하게 된다.

내가 보고 있는 면이 전부가 아닐 수 있다는 겸허함,

지금은 이렇게 읽히지만 다음에는 다르게 읽힐 수 있다는 여지가 있다.

그래서 『주역』은 나와 세상의 관계를 헤아리게 해주는 변화의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