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역은 나의 안내자
단 한 권의 책만을 선택해 읽어야 한다면, 나는 『주역』이라고 말할 만큼 이 책을 좋아한다.
주역은 점서(占書)라는 역사적 전제를 가지고 있지만, 내게는 오히려 시집이나 모험집, 자기 계발서와 같다.
본래 점사(占辭)였던 괘사와 효사는 한 구절의 시가 되어 내 마음을 적시기도 하고,
올바른 처세를 하도록 나를 추동시키기도 한다.
마치 시를 읽으면서 그 언어와 이미지가 내 기억과 경험 속으로 들어와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내듯,
주역의 괘사와 효사를 읽다 보면 삶의 영감이 샘솟는 경험을 한다.
때로는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장면이나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서 머리를 쥐어짜기도 한다.
그렇게 상상하고 유추하는 말미 속에서 생각과 마음의 폭이 넓어지는 것을 느끼고 있다.
12월 들어 몹시 바쁘게 지냈다.
내년부터 본격적인 인생 2막의 커튼을 열겠다는 계획을 가지고, 현실적인 준비를 해왔다.
아이돌보미 교육을 이수하고, 노인역량활용사업의 하나인 지역문화기록가에 지원해서 면접도 보았다.
바쁜 와중에도 블로그에, 주역에 관한 공부를 하고 정리한 글을 매일 발행하는 규칙을 지켜오고 있다.
또 한편으로 브런치 작가 신청을 해서 승인을 받았다.
하지만 문제는, 브런치에 올릴 만한 글이 좀처럼 써지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머릿속에는 수많은 주제가 떠오르는데 글로는 풀려나오지 않는 것이다.
이렇게 저렇게 끄적거리기를 멈추고 그동안 필사해 두었던 『주역』 경전을 음미하면서 마음을 정돈했다.
그러면서 지금의 내 상황을 말하는 괘가 무엇일까를 생각해 보았다.
나는 서죽(筮竹)으로 괘를 뽑지는 않는다.
단지 조언자를 찾는 마음으로 주역 64괘를 그려본다.
오늘의 묵상을 통해서 연상된 괘는 9번째 괘, 풍천소축이다.
풍천소축괘는 발산하려는 양의 기운을,
수렴시키는 음의 기운으로 그치게 하여 쌓게 한다는 의미를 가진 괘이다.
여기에는 기르고 성장시킨다는 의미도 있다.
그동안, 부지런히 내 지향의 족적을 기록해 왔다.
비록 거친 형식이지만, 내용에는 성실했다.
그럼에도 어디다 내놓기는 좀 망설여지는 것이 사실이다.
그동안 블로그에 64괘와 계사전 상편의 연재를 마쳤다.
이어서 읽고 있는 『역주 주역사전』의 【독역요지】를 발행하고 있는데 솔직히 힘에 부친다.
풍천소축괘의 육사효는 이런 나에게 해결책을 제시한다.
“내 마음의 울혈을 풀어낼 수 있다는 믿음으로 두려움을 떨쳐내면 허물이 없다.”
이제 나는, 그동안 보낸 성실한 시간이 곧 비가 되어 내릴 구름처럼 빽빽해 있다는 것을 믿어야겠다.
쌓기만 해서는 안 되고, 그것을 풀고 덜어내야 할 때라는 것도 알겠다.
그동안 고된 학습의 과정에서 주역의 깊이를 실감했다.
이제는 작은 웅덩이 하나를 채우고 벗어난 물줄기가 되어, 졸졸 흐르는 즐거움을 누리겠다.
『주역』을 완미하고 탐미하는 과정에서 때로는 그 깊이에 갇히기도 하지만,
그곳 또한 내가 성장하는 자리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