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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국 Mar 01. 2023

[35] 처음 경험하는 개막전 패배…흔들리는 이광환호

베팬알백 | 베어스 팬이라면 알아야 할 100가지 이야기


잠실 라이벌 OB와 MBC는 1989년 개막전부터 격돌했다. OB 이광환 감독의 자율야구와 MBC 배성서 감독의 스파르타식 야구, 1차지명 이진과 김기범의 스토리까지 엮이면서 흥미진진한 개막전 매치업이 성사됐다.


단일시즌제의 첫출발. MBC 배성서 감독은 1989년 개막전 선발투수로 신인 김기범을 내세웠다. 김기범은 1차지명 우선권을 쥐고도 자신을 거른 OB를 상대로 데뷔전을 치르기 위해 마운드에 올랐다. OB 이광환 감독은 1년 전 개막전 역사상 최초의 노히트노런을 달성하고, 개막전이라면 한 번도 패하지 않은 ‘개막전의 사나이’ 장호연을 선발 카드로 내밀었다.


[베팬알백] 35번째 주제는 1980년대의 마지막 개막전과 이광환 감독 시대 자율야구 이야기다. 베어스 역사에서 여러 가지로 시사하는 점이 많기 때문이다. 구단 창단 이래 개막전 무패 행진이 끝나는 패배였고, 동시에 암흑기의 한가운데로 접어드는 전조였다. 야심 차게 출발했지만 이광환 감독의 자율야구는 OB 베어스에서 빛을 보지 못했고, 세대교체 과도기에서 신인 스카우트는 블랙홀에 빠져들었다.


1989년 개막전에 앞서 식전 행사로 진행된 농악놀이 ⓒ두산베어스


1989 개막전김기범-장호연 충암고 선후배선발 맞대결


1989년 4월 8일 잠실구장. 토요일 오후 2시 경기였다. 서울의 하늘은 맑았고, 기온은 19도를 가리키고 있었다. 완연한 봄기운 속에 MBC 청룡-OB 베어스의 개막전이 플레이볼 됐다.


새롭게 MBC 지휘봉을 잡은 배성서 감독은 개막전 선발투수로 과감하게 신인 김기범을 낙점했다. 김기범은 OB 베어스가 1989년 1차지명 우선권을 쥐고도 이진을 지명하기 위해 거른 국가대표 출신 좌완투수였다. 김기범이 독기를 품고 던질 것으로 기대했다.


OB 새 사령탑 이광환 감독은 산전수전 다 겪은 장호연을 선택했다. 장호연은 신인 시절이던 1983년부터 1988년까지 5차례 개막전 선발(1984년에만 김진욱)로 나서 4승무패를 기록한 ‘개막전의 사나이’. 특히 1년 전인 1988년엔 개막전 역사상 유일한 노히트노런을 달성하기도 했다. 1988년까지 개막전 4승 중 3승이 MBC에게 거둔 것이었는데 징검다리처럼 1983년, 1985년, 1987년 MBC를 상대로 승리했다. 1989년 개막전에 대한 기대도 클 수밖에 없었다.


1989년 개막전에서 애국가를 부르는 어린이들. 왼쪽 뒤로 이광환 감독이 보인다. ⓒ두산베어스


추억의 이름들을 되새겨보기 위해 1980년대의 마지막 개막전 선발 라인업을 소개한다. 양 팀 1번타자로 베테랑 김재박(1954년생)과 김광수(1959년생)가 포진한 것이 눈에 띈다.


MBC 청룡 라인업

1번 김재박(유격수)

2번 박흥식(중견수)

3번 김상훈(1루수)

4번 이광은(좌익수)

5번 김진우(포수)

6번 노찬엽(지명타자)

7번 윤덕규(우익수)

8번 김상호(3루수)

9번 김경표(2루수)


OB 베어스 라인업

1번 김광수(2루수)

2번 박종훈(중견수)

3번 송재박(지명타자)

4번 김형석(우익수)

5번 양세종(3루수)

6번 신경식(1루수)

7번 김광림(좌익수)

8번 이승희(유격수)

9번 김경문(포수)


장호연(1960년생)과 김기범(1965년생)은 다섯 살 터울의 충암고 선후배 사이. 양 팀 선발투수들의 호투 속에 5회까지 0의 행진이 펼쳐졌다.


장호연은 그렇다 쳐도, 김기범은 신인답지 않게 침착한 투구를 이어나가 모두를 놀라게 했다. 3회까지 삼자범퇴, 4회 2사 후 송재박에게 첫 안타를 내줬을 뿐 5회까지 1안타 무실점 역투를 펼쳤다.


어릴 때부터 두각을 나타내면서 많은 공을 던지는 바람에 국가대표로 활약하던 시절의 빠른 공은 잃어버렸지만 경기운영 능력이 명불허전이었다. 낙차 큰 커브와 슬라이더, 홈플레이트 좌우 보더라인을 찌르는 절묘한 제구로 OB 타선을 요리했다.


“김기범은 충암고 후배인데 그해 개막전 맞대결을 하게 됐어요. 좌투수는 보통 투수판에서 1루 쪽 끝을 밟고 던지는데 김기범은 3루 쪽 플레이트를 밟고 던졌던 투수로 기억합니다. 우타자 바깥쪽이나 좌타자 몸쪽 투구는 대각선으로 들어가고, 좌타자 바깥쪽과 우타자 몸쪽 투구는 살짝 흘러 들어가는 형태였지요. 아마추어 시절에 비해 프로에서는 공은 빠르지 않았지만 손 감각이 좋고 어릴 때부터 큰 경기를 많이 던져본 투수니까 영리한 투구를 하더라고요.”


1989년 개막전 선발로 맞대결을 펼쳤던 장호연의 얘기다.


김기범의 호투가 이어질수록 1차지명 우선권을 잡고도 김기범을 외면했던 OB 프런트의 표정 속에는 난감함이 묻어날 수밖에 없었다.


1989년 개막전 선발로 나선 OB 장호연 ⓒ두산베어스


김기범에게 꺾인 베어스 개막전 무패 행진역사 


장호연이 먼저 흔들렸다. 6회초 2사 후 상대 중심타자 김상훈과 이광은을 연속 볼넷으로 내보낸 게 화근이었다. 여기서 태평양에서 방출된 뒤 그해 MBC에 입단한 김진우(작고)에게 2타점짜리 좌중월 2루타를 맞고 말았다. 이어 루키 노찬엽에게 좌전 적시타, 윤덕규에게 우월 3루타를 허용했다. 단숨에 4실점을 하고 말았다.


8번타자 김상호(1989 시즌 후 OB 최일언과 맞트레이드된다) 타석 때 MBC는 국가대표 출신 신인 좌타자 최훈재를 대타로 내세웠다. 그러자 OB는 베테랑 좌완 황태환을 투입했다. 여기서 다시 우전 적시타가 나왔다.


6회말까지 김기범에게 눌리던 OB는 7회말 상대 실책과 최동창의 1타점 좌월 2루타로 1점을 만회했다.


그러나 승부는 이것으로 끝이었다. OB 베어스의 1-5 패배. 베어스는 1983년부터 1988년까지 개막전에서 한 번도 지지 않고 6전 5승1무를 기록 중이었다. 개막전만 되면 파죽지세였던 OB 베어스 역사에서 처음으로 생채기가 난 패배였다(베어스의 개막전 전적이 1983년부터 집계되는 것은 [베팬알백] <11편>에서 설명한 바 있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1982년 원년 개막전은 삼성 라이온즈-MBC 청룡전으로만 펼쳐졌기 때문이다).


결국 OB는 이 패배로 인해 개막전 무패 행진의 역사가 중단됐고, 개막전 최초 패전을 기록하게 됐다. ‘개막전의 사나이’ 장호연도 처음으로 개막전 패배의 아픔을 맛봤다.


OB로선 무엇보다 주사위 던지기에서 이겨 신인지명 우선권을 쥐고도 거른 김기범에게 당한 것이어서 뼈아팠다. 김기범은 비자책점으로 1실점했을 뿐 9회까지 108개의 공을 던지며 4안타 3볼넷만 내준 채 4탈삼진 완투승을 올렸다. 아울러 KBO 역사상 신인 좌완투수로는 최초로 개막전 완투승을 기록하게 됐다. 참고로, 최초 개막전 완투승을 거둔 우완 신인투수는 1983년 완봉승을 기록한 장호연이었다.


반면 MBC는 1982년 원년 개막전에서 이종도의 끝내기 만루홈런으로 승리한 뒤 개막전에서만 6연패를 당하다 청룡 이름을 달고 뛴 마지막 개막전에서 마침내 승리하게 됐다. 이 모든 것이 김기범의 호투로 인해 발생한 것이었다.


MBC는 투수 김기범 외에 루키로 입단한 노찬엽 최훈재가 개막전부터 펄펄 날았다. 이는 신인지명에서 번번이 LG에 패하면서 세대교체에 실패한, 그래서 암흑기에 빠져들었던 OB의 미래를 역으로 비춰주는 상징적 장면 같았다.


 ◆1980년대 OB 베어스 개막전 전적


이광환 감독 ⓒ두산베어스


1989 개막  19 출발이광환 감독 자율야구의 시련


개막전 패배 다음날인 9일, OB는 2차지명으로 영입한 좌완 구동우(천안북일고-동아대)를 비밀병기처럼 선발로 내세웠다. 구동우는 5회까지 무안타 무실점으로 호투하며 전날 김기범 부럽지 않은 피칭을 펼쳤다. OB가 5회말 선취점도 뽑아내면서 1-0으로 앞서 나갔다.


그러나 6회에 실책이 겹쳐 한꺼번에 3점을 내줬다. 구동우를 내리고 천안북일고-동아대 직속 선배 김진욱을 6회에 구원등판시켰지만 결국 1-3 패배로 끝나고 말았다. 개막 2연패 또한 OB 베어스 역사상 최초의 일이었다.


OB는 대구로 내려갔다. 그러나 11일 삼성 신인 유명선에게 완투승을 헌납하며 1-2로 패했고, 12일 삼성전에는 신인 1차지명 3명 중 김동현과 이진을 연달아 등판시킨 뒤 2차지명 신인 김진규까지 내보냈지만 3-8로 패했다. 4연패였다.


13일 부산에서 장호연의 1실점 완투 속에 롯데를 6-1로 꺾고 시즌 첫 승리를 거뒀다. 혹독한 신고식을 치른 이광환 감독의 프로 사령탑 데뷔 통산 첫 승이기도 했다.


그러나 시련은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OB는 다음날 롯데전 패배를 시작으로 21일 빙그레전까지 5연패에 빠졌다. 4연패 후 1승 그리고 다시 5연패. 개막 후 10경기에서 1승9패로 주저앉았다.


미국 연수를 마치고 돌아온 이광환 감독은 ‘자율야구(스스로 칭한 것이 아니라 언론에서 만든 용어)’라는 기치 아래 훈련부터 방식을 바꿨다. 선수들이 감독과 코치의 일방적 지시가 아닌 스스로 깨닫고 느끼고 훈련하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당시로선 국내에 생소한 선발 로테이션과 선발 예고제도 확립하고자 했다. 구단 창단 후 김영덕 감독과 김성근 감독이 만들어온 투수 중심의 야구, 작전과 수비를 바탕으로 한 야구에서 탈피해 호방한 공격 야구를 지향했다. 5회 이전에는 희생번트를 대지 않겠다는 선언도 함께 했다. ‘천동설’을 믿고 있던 시기에 ‘지동설’을 들고 나온 것만큼이나 국내에서는 생소한 이야기였다. ‘이광환식 야구’는 당시 한국야구의 풍토에서 이단아처럼 비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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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팀 성적이 초반부터 극도의 부진에 빠진 것이 문제였다. 여기저기(언론, 야구인, 팬 등등)에서 ‘자율야구’ 자체에 대해 비아냥거렸고, 상대팀은 새로운 야구를 시도하는 OB를 만나면 ‘본때를 보여주겠다’는 듯 기를 쓰고 투수력을 집중시켰다.


이광환 감독 ⓒ두산베어스



구단 내부에서도 ‘뭔가 잘못 돌아가고 있는 게 아니냐’며 자율야구에 대해 고개를 갸웃거리기 시작했다. 선수들이 동요하는 것도 당연했다.


팀이 무너지고 있는 상황에서 이광환 감독도 원칙만을 고집할 수 없었다. 선발은 선발, 구원은 구원으로 보직과 역할 분담의 경계선을 분명하게 그어놨지만, 결국 4월 22일 MBC전에 구원 전문투수 윤석환을 선발로 투입하기에 이르렀다. 윤석환은 6이닝 2실점으로 역투했고, 침체에 빠져 있던 타선도 모처럼 활기를 찾으며 8-3 승리를 낚았다. 일단은 연패를 끊어냈다는 것이 중요했다.


그러나 부진한 성적은 상대에게 공격의 빌미를 제공했다. 사방에서 자율야구를 흔들어댔다. 이광환식 야구는 나무 꼭대기에 홀로 매달린 마지막 잎새처럼 위태로웠다. 특히나 1988년을 끝으로 OB를 떠난 김성근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태평양은 시즌 초반부터 돌풍을 일으켰다. 개막 10경기에서 6승1무3패를 기록하며 선두권 싸움을 벌였다. 호사가들의 입이 가만있지 않았다.


개막 첫 달 5승13패. 스타트 총성이 울리자마자 엎어진 꼴이었다. 7개 구단 중 7위로 처진 OB는 5월 6일에야 탈꼴찌에 성공했다. 롯데와 꼴찌 자리를 주고받다 5월말 5연승의 상승세를 타며 꼴찌 싸움에서 벗어났다.


시즌 초반 최일언 윤석환 계형철 등 베테랑 투수들의 부진 속에 계산이 어긋났던 선발 로테이션도 이때부터 조금씩 자리를 잡아나갔고, 부상과 부진으로 신음했던 타선도 갖춰지기 시작했다. 6월 15일 6위 탈출에 성공했고, 7월과 8월 한여름 복더위에 상승세를 탔다.


8월 17일 윤동균의 은퇴식 경기에서 롯데를 8-3으로 꺾고 마침내 승률 5할에 오르며 태평양과 공동 4위에 자리 잡았다(윤동균의 KBO 사상 최초 은퇴식 이야기는 다음 편에서 자세히 다룰 예정이다).


1989년부터 단일시즌제가 시행되면서 4위까지 가을야구 티켓을 획득할 수 있는데, 포스트시즌 진출은 이광환의 자율야구가 인정을 받기 위한 필수적 요소처럼 보였다.


그러나 더 이상 치고 나가지 못했다. 다시 3연패를 당했고, 연승과 연패를 반복했다. 8월말부터 9월초까지 6연패, 9월말부터 10월초까지 7연패에 빠지면서 끝내 5할 승률과 4위를 사수하지 못했다.


1989년 시즌 최종 성적은 54승3무63패(승률 0.463)로 5위였다. 4위 삼성에 4게임차로 뒤졌다. 시즌 초반의 부진한 출발이 끝내 1989년의 멍에로 작용한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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