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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국 Mar 01. 2023

[36] 윤동균, KBO 최초 은퇴경기하던 날의 풍경

베팬알백 | 베어스 팬이라면 알아야 할 100가지 이야기


/ 정답던 얘기 가슴에 가득하고 / 푸르른 저 별빛도 외로워라
/ 사랑했기에 멀리 떠난 님은 / 언제나 모습 꿈속에 있네
/ 먹구름 울고 찬 서리 친다 해도 / 바람 따라 제비 돌아오는 날
/ 고운 눈망울 깊이 간직한 채 / 당신의 사랑 품으렵니다
/ 아 아 그리워라 잊지 못할 내 님이여 / 나 지금 어디 방황하고 있나
/ 어둠 뚫고 흘러내린 눈물도 / 기다림 속에 님을 그리네
/ 바람 따라 제비 돌아오는 날 / 당신의 사랑 품으렵니다.


  잠실구장에는 조영남의 노래 ‘제비’가 울려 퍼졌다. 당당히 2루타로 나간 노장은 자신의 이름을 연호하는 관중을 향해 모자를 벗고 손을 흔들었다. 그라운드에 도열한 선수단과 하이파이브를 하며 1루 덕아웃으로 돌아온 그의 눈에는 후련함과 아쉬움이 교차하는 눈물이 맺혔다.


 [베팬알백] 36편은 1989년 한여름밤에 펼쳐진 한 노장의 화려했던 은퇴식 이야기를 전하고자 한다. OB 베어스 간판스타이자 1982년 프로야구 출범 당시 6개 구단 선수들을 대표해 선서를 했던 윤동균. 1980년대가 저물고 프로야구 1세대의 상징적 인물로 통하던 그의 퇴장은 여러 가지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무엇보다 OB 베어스뿐만 아니라 KBO리그 최초 은퇴식이자 은퇴경기로 역사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은퇴 경기 대기 타석에서 스윙을 하는 윤동균 ⓒ두산베어스


1989OB, 초반 부진 딛고 한여름 반격


 1989년은 이광환 감독이 처음 OB 베어스 지휘봉을 잡은 시즌이다. [베팬알백] 35편에서 설명했듯이 이광환식 자율야구는 개막 10경기에서 1승10패의 부진에 빠지면서 출발부터 어려움을 겪었다.


 OB는 5월에 접어들면서 김진욱의 연이은 완봉승으로 반전의 기틀을 마련했다. 5월 4일 잠실 해태전에서 선동열과 선발 맞대결을 벌여 1안타 완봉승을 올린 뒤 10일 잠실 롯데전에서도 2안타 완봉승을 거뒀다. 김진욱은 6월 16일에 해태 선동열과 리턴매치를 했는데 또 4안타 완봉으로 1-0 승리를 이끌면서 ‘선동열 킬러’로서 면모를 재확인했다. 김진욱은 1989년 11승을 거뒀는데 그중 8차례 완투와 4차례 완봉승을 올리면서 에이스로 활약했다.


 꼴찌싸움을 주고받던 OB는 7~8월 한여름에 접어들면서 연승 바람을 타며 반격의 분위기를 마련했다. 8월 16일 잠실 롯데전에서 루키 선발투수 이진의 호투와 윤석환의 마무리로 4-1로 승리했다. 이로써 OB는 41승2무42패로 시즌 첫 5할 승률에 1승 차이로 다가섰다.


 8월 17일 잠실 롯데전을 앞두고 이광환 감독은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바로 아끼는 후배 윤동균의 은퇴경기가 예정돼 있었기 때문이다. KBO 역사에서 은퇴식도 최초였지만 은퇴경기를 치르는 것도 최초였다. 라인업에 몇 번 타순에 넣을지 장고를 거듭했다.


 5할 승률과 4위가 눈앞이었다. 팀의 포스트시즌 진출을 위해선 중요한 일전. 상승세의 고삐를 당겨야 했다.


 그런데 상대팀 롯데 선발투수는 김시진이었다. 삼성 간판투수로 활약하던 김시진은 1988시즌 후 롯데 간판 최동원과 트레이드됐다. 그 충격의 여파로 그해 부진에 빠졌다. 그렇다고 해도 만만한 상대는 아니었다. 최동원과 KBO 최초 100승 선착 싸움에서 앞섰고, 이 경기 전까지 114승을 기록해 KBO 개인통산 최다승 부분 1위를 달리는 대투수였다.


●이광환 감독 윤동균 은퇴, 이왕이면 4번타자로

은퇴 경기에서 팬들에게 공을 던져주는 윤동균 ⓒ두산베어스


 윤동균의 은퇴경기는 OB 베어스 창단부터 단장을 맡았던 박용민 사장의 아이디어에서 비롯됐다. 그 이전까지 KBO 어떤 구단도 선수 은퇴식을 한 적이 없었기에 참고할 만한 자료조차 빈약했던 시절이지만, 일본과 미국 야구를 경험한 이광환 감독을 비롯해 구단 직원들의 아이디어까지 총동원해 은퇴식 시나리오를 짰다.


 “윤동균은 원년 우승에 큰 기여를 했어요. 초창기 OB 팬들에게 인기가 있었던 구단 간판스타였기 때문에 은퇴식을 기획하게 된 거죠. 그런데 은퇴식만 하는 것보다 타석에서 팬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는 것이 좋겠다 싶더라고요. 그래서 은퇴경기를 치르기로 했죠.”


 박용민 당시 사장의 회고다.


 박용민 사장은 박용곤 구단주의 전적인 신뢰 아래 창단 초기부터 메이저리그와 일본프로야구 구단을 제집 드나들 듯했다. 거기서 선진 구단 시스템과 마케팅 기법을 직접 배워와 구단 운영에 접목했다. 그러면서 원년부터 갖가지 KBO 1호들을 만들어 나갔다.


 [베팬알백]에서도 몇 차례 언급했지만 1982년 1월 15일 KBO 역사상 최초로 구단 창단식을 열었고, 어린이 회원 모집도 OB가 처음 도입했다. 최초 우승팀은 물론 최초 MVP(박철순)와 최초 신인왕(박종훈)을 배출했고, 이천에 전용연습장을 마련하고 2군을 만든 것도 OB가 처음이었다. 메이저리그 팀(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과 자매결연을 한 것도 최초였다. 여기에 은퇴식 및 은퇴경기 역시 KBO 출범 후 처음 있는 일이니 이 또한 베어스의 ‘최초’ 목록에 추가될 만하다.


 이광환 감독도 의미가 큰 만큼 화려한 은퇴식을 해주고 싶었다.


 “당시 은퇴경기를 해주는 게 쉽지 않은 일이었죠. 그런데 OB 구단이 나서서 해주기로 했어요. 그래서 제가 이왕 해주는 거 제대로 하자고 했어요. 그냥 한 타석 정도 내보내는 것보다 선발로 내보내자고. (은퇴경기) 해주기 싫은데 억지로 하는 것도 아니고, OB 간판스타 아니었습니까. 당시엔 은퇴식조차 하는 구단이 없었어요. 구단들이 스타들을 써먹을 땐 잘 써먹고 나중엔 그냥 버리지 않았습니까. 선례를 잘 남기고 싶었어요.”


 1989년 8월 17일 목요일 야간경기로 펼쳐진 잠실 롯데전. 이광환 감독은 선발 라인업을 다음과 같이 적었다.


 OB 베어스 라인업

1번 김광림(좌익수)

2번 안대환(중견수)

3번 김형석(우익수)

4번 윤동균(지명타자)

5번 신경식(1루수)

6번 이명수(유격수)

7번 양세종(3루수)

8번 조범현(포수)

9번 구천서(2루수)

선발투수 최일언


■롯데 자이언츠 라인업

1번 최계영(중견수)

2번 장효조(우익수)

3번 한영준(3루수)

4번 김민호(1루수)

5번 정구선(2루수)

6번 박상국(지명타자)

7번 조성옥(좌익수)

8번 김용운(포수)

9번 이재성(유격수)

선발투수 김시진


 경기 초반은 OB가 흐름을 잡았다. 1회말 2사 후 3번타자 김형석이 좌월 솔로홈런을 터뜨려 선취점을 뽑았다. 이어 2회말 4사구 2개와 야수선택, 2번타자 안대환의 2타점 2루타 등으로 3점을 추가해 4-0으로 앞서나갔다.


 롯데의 반격이 시작됐다. 3회초 2사 1·2루에서 정구선의 중전 적시타, 6회초 1사 만루서 이재성의 유격수 땅볼로 1점씩을 뽑았다.



●굿바이 윤동균! 김시진 상대 고별 2루타

김시진을 상대로 2루타를 터뜨린 뒤 팬들에게 인사하는 윤동균


 OB는 4-2, 2점차로 바짝 추격을 당한 처지라 추가점이 필요했던 상황. 6회말 선두타자 김형석이 상대 유격수 실책으로 출루하며 찬스를 열었다.


 무사 1루. OB 4번타자 윤동균이 타석에 들어섰다. 그는 1회말 3루수 땅볼, 3회말 3구 삼진으로 물러나 2타수 무안타를 기록 중이었다. 중요한 경기에서 4번타자로 나섰지만 은퇴경기 이벤트로만 끝난다면 팀에 민폐를 끼칠 수도 있었다.


 윤동균은 양 발로 타석의 흙을 판 뒤 커다란 엉덩이를 좌우로 씰룩씰룩 흔들며 특유의 타격 준비 자세를 취했다.


 초구는 볼, 2구는 스트라이크, 3구는 볼…. 2B-1S로 유리한 볼카운트로 몰고 갔다.


 여기서 김시진의 4구째 바깥쪽 공이 날아들자 윤동균의 방망이는 호쾌하게 돌았다. 타구는 축포처럼 잠실 밤하늘에 하얀 무지개를 그리며 좌중간으로 날아갔다. 펜스를 원바운드로 때렸다. 그 사이 1루주자 김형석은 2루와 3루를 돌아 홈까지 파고들었다. 스코어를 5-2로 만드는 1타점 2루타!


 “윤동균! 윤동균!”


 윤동균이 2루에 안착한 뒤 주먹을 불끈 쥐자 은퇴경기를 보기 위해 잠실구장을 찾은 팬들은 기립박수를 치며 그의 이름을 연호했다. 윤동균은 왼손으로 헬멧을 벗고는 환호하는 관중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경기는 중단됐다. OB는 윤동균의 안타가 나오는 순간 은퇴식을 진행하기 위해 원정팀 롯데에 미리 양해를 구해놓은 터였다.


 OB 선수들은 덕아웃부터 2루까지 그라운드에 일렬로 늘어섰다. 잠실구장 전광판에는 그의 별명에 빗대 ‘장하다 백곰’이라는 문구가 새겨졌고, 장내에는 윤동균의 애창곡인 조영남의 ‘제비’ 노래가 애잔하게 울려 퍼졌다.


 윤동균은 OB 선수 한 명, 한 명과 하이파이브를 하며 덕아웃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OB 선수단은 물론 롯데 선수단도 그라운드에 도열해 꽃다발을 전하며 프로야구 맏형의 퇴장을 축복했다.


 KBO리그 최초의 은퇴식을 위해 경기는 10여 분간 중단됐다. 윤동균은 은퇴사를 밝히며 눈시울을 붉혔다. 팬들에 대한 감사 인사로 자동차 프라이드를 경품으로 내놓았다. 자동차가 귀하던 시절, 통 큰 선물이었다.


 KBO리그 최초의 은퇴식이 된 이 장면은 아직도 올드팬들의 기억 속에 생생하게 남아 있다. 현재 일흔의 나이를 넘긴 윤동균 전 일구회장도 그 순간의 감동을 잊지 못한다.



선수로서 마지막으로 OB 베어스 동료들과 하이파이브를 하는 윤동균 ⓒ두산베어스


 “박용민 사장님이 신경을 정말 많이 써주셨어요. 이광환 감독님도 연습도 제대로 못한 나를 4번타자로 기용하면서 배려를 해주셨죠. 김시진이라면 당대 최고 투수 아닙니까. 은퇴식이지만 중요한 경기였기 때문에 4번타자로서 혹시나 팀에 민폐만 끼칠까 봐 걱정했어요. 앞선 두 타석에서도 안타를 치지 못했거든요. 거기서 2루타를 쳐서 다행이었습니다.”


 이에 대해 이광환 전 감독은 “4번타자로 선발출장시켰는데 만약 그 타석에서 안타 못 쳤으면 마지막 타석까지 내보내려고 했다”며 웃었다.


 1948년생 이광환과 1949년생 윤동균은 원년부터 코치와 선수 관계를 맺었지만 실상은 한 살 차이밖에 나지 않는 형과 아우 사이였다.


 그러나 은퇴식으로 인해 10여 분 동안 경기가 중단되면서 사실 상대팀 투수 김시진은 컨디션 조절이 힘든 상황이었다.


 경기가 재개됐고, OB는 윤동균 대주자로 김용희(롯데 간판스타 김용희와는 동명이인)를 투입했다. 5번타자 신경식이 중견수 플라이로 물러났지만 6번타자 이명수 대신 타석에 나선 이복근이 좌익선상으로 1타점 2루타를 날렸다. 스코어는 6-2.


 결국 김시진은 마운드를 내려갔고, 전년도 말에 트레이드 때 삼성에서 롯데로 이적한 좌완 장태수가 등판했다. OB는 여기서 양세종의 중전안타, 조범현의 좌전안타, 구천서의 중월 2루타가 연이어 터지면서 7-2로 달아났다.


 7-3으로 승리한 이날, 선발투수 최일언은 5.2이닝 2실점으로 승리투수가 됐고 구동우는 나머지 3.1이닝을 1실점으로 막아 세이브를 올렸다.


 42승2무42패. OB는 마침내 시즌 처음 5할 승률을 달성하면서 김성근 감독이 이끄는 태평양(40승4무40패)과 공동 4위로 뛰어올랐다.


 윤동균에게 마지막 안타를 허용한 김시진 현 KBO 경기운영위원은 당시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혹시 선배 은퇴경기라 좋은 공 하나 준 것 아니냐”는 농담에 그는 웃음을 지었다.


 “윤동균 선배님은 저를 참 많이 예뻐하셨어요. 1977년 니콰라과 슈퍼월드컵에서 우리나라가 사상 최초로 세계대회 우승을 했는데 당시 윤동균 선배님과 처음 만났어요. 선배님은 대표팀에서도 고참급이었고 저는 한양대 1학년이었거든요. 그때부터 저를 많이 챙겨주셨어요. 그렇지만 아무리 친하다고 해도 프로에서 상대팀 타자한테 어떻게 좋은 공을 줍니까.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죠. 초창기에 OB를 상대할 때는 윤동균 김우열 선배님 만나면 신경을 써야 했어요. 장타력 없는 선수는 맞아봤자 안타니까 크게 부담이 없는데 윤동균 선배는 일발 장타력이 있었거든요. 스윙도 부드럽고 정말 잘 쳤어요. 은퇴경기 때도 선배님이 잘 치신 겁니다.”



 ●베아제 광고 모델, 곰군단 대표하는 인기 스타

곰 이미지와 가장 흡사했던 캐릭터의 윤동균 ⓒ두산베어스


 윤동균은 강원도 삼척에서 태어났지만 부친이 직업 군인이어서 이사를 많이 다녔다. 초등학교 1학년을 마치고 대전으로 내려가 문창초등학교로 전학했다. 육상과 씨름 선수를 하다 야구부가 창단되면서 야구선수의 길로 접어들었다. 충남중을 거쳐 고등학교는 서울 동대문상고(현 청원고)로 진학했다.


 동대문상고 시절 좌완투수로서 발군의 실력을 발휘하며 3학년 때인 1968년 배명고전에서 노히트노런을 달성하기도 했다. 고교 3학년 때 야수로 전향해 1968년 기업은행에 입단했고, 각종 대회에서 화려한 수상 경력을 자랑했다. 국제대회에서도 두 차례나 타격왕에 올랐다. 체격에 비해 빠른 발을 보유한 호타준족형 선수였다.


 1978년 포항제철에 입단한 윤동균은 프로야구 출범 전인 1980년 플레잉코치를 맡아 은퇴를 준비하고 있었다. 당시엔 서른 살이면 이미 은퇴를 하던 시절. 그런데 프로야구가 출범한다는 소식을 듣고 1982년 33세의 나이에 현역 연장에 도전했다.


 1982년 3월 27일 동대문구장에서 삼성-MBC의 원년 개막전이 열렸을 때 6개 구단 선수단 전원이 개막 행사에 참가했다. 당시 선수단 대표로 선서를 한 인물이 바로 윤동균이다. 김우열은 학창 시절 1년 선배. 그러나 호적상으로 윤동균은 1949년 7월 2일생이었고, 김우열은 1949년 9월 9일생이어서 최연장자로서 선서를 하게 된 것이었다.


 윤동균은 OB 원년 우승의 주역으로 기억된다. 첫해 주로 1번타자와 3번타자를 오가면서 0.342의 고타율을 기록했다. 원년 MBC 백인천(0.412)에 이어 타격 2위였다. 백인천은 일본프로야구에서도 타격왕에 올랐던 해외파 출신. 가정법이지만, 만약 백인천이 한국프로야구에 오지 않고 일본에서 은퇴했다면 윤동균이 KBO 초대 타격왕이 됐을 것이다.


 원년 한국시리즈 MVP는 최종전 만루홈런을 친 김유동에게 돌아갔지만, 윤동균은 6경기에 모두 출장해 타율 0.407(27타수 11안타), 2루타 3개, 9득점을 기록하며 OB 베어스가 초대 챔피언 자리에 오르는 데 큰 공을 세웠다.


 윤동균은 야구선수로서 기량뿐만 아니라 남자다운 풍모와 허스키한 목소리. 이웃집 아저씨 같은 푸근한 이미지로 초창기 팬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광고 모델로도 주가를 높였다. 자사 OB맥주 모델로 시작해 음료수, 드링크류 등 각종 CF 모델로 나서기도 했다. <영화 내일은 야구왕: 홈런이다 홈런>과 어린이드라마 <우리 아빠 홈런> 등에도 출연한 바 있다.


 하지만 그를 떠올릴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CF는 따로 있다. “소화엔 베어, 곰, 베아제”라고 외치던 대웅제약 소화제 ‘베아제’였다. 같은 제약회사의 간 영양제 모델로는 배우 백일섭이 나서 윤동균과 함께 곰 이미지를 강조했다. 그만큼 ‘윤동균’ 하면 ‘곰’을 상징하는 인물이었고, ‘곰’ 하면 ‘윤동균’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그는 1980년대 OB 베어스를 대표하는 스타였다.


윤동균 은퇴식 당시 경품으로 준비된 프라이드 자동차 ⓒ두산베어스


 윤동균은 결국 1980년대의 마지막 해에 30년간 현역 선수 생활을 마무리했다. 당시 나이 만 40세였다. 후배들에게 40대에도 선수생활을 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1982년부터 1989년까지 통산 594경기에 출장해 타율 0.285(1963타수 560안타), 38홈런, 277타점의 성적을 남겼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KBO리그에서는 간판스타의 은퇴식에 대해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해태 김봉연이나 롯데 김용희 등 각 구단을 상징하던 스타들도 은퇴식 없이 유니폼을 벗었다.


 그러나 윤동균의 은퇴식을 계기로 KBO리그에서도 은퇴 문화가 자리 잡기 시작했다. 1980년대까지는 윤동균이 유일하지만, 1990년대 들어서는 각 구단마다 스타들의 은퇴식을 기획하게 된다. LG는 1990년 9월 29일 백인천 감독의 은퇴식을 뒤늦게 열어줬고, 해태는 1995년 9월 24일 김성한의 은퇴경기를 겸한 은퇴식을 성대하게 치렀다. 윤동균의 은퇴경기에 이어 6년이 지난 시점에 KBO 2호 은퇴경기가 탄생하게 된 것이었다.


 OB는 1997년 박철순의 은퇴식 때 다시 한번 ‘명품 은퇴식’을 선보였다. 지금까지 회자되는 멋진 은퇴식이었다. 베어스는 2018년 정재훈(현 투수코치)까지 총 6명이 은퇴식을 치렀다.


OB-두산 베어스 역대 은퇴식 및 은퇴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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