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슬로우럭 May 10. 2022

4.5춘기, 어른의 성장통

나를 온전히 받아들일 때, 방황은 시작된다.

"너는 대체 어떤 사람이 되고 싶었던 건데?"

가고 싶었던 회사에 어렵게 들어가 놓고, 정작 인턴 기간이 끝나자마자 그만둔 나에게 누군가 물었다.

"그러게..." 

분명 오래 고민해서 정한 진로였고, 그만큼 확신과 자신도 있었는데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알 수 없었다.

물론 전공과 전혀 다른 분야였기에 준비하면서 애먹긴 했지만, 그래도 극복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의 벽은 생각보다 높았다.


얼떨결에 다시 취준생이 됐다.

하지만 다시 달릴 힘과 의지는 모두 고갈된 상태였다.

번아웃에 시달리며 허우적대기 시작할 때,  마침(?) 코로나19에 확진되었다.

쳇바퀴를 멈추고 조용히 쉴 수 있는 시간과 핑계가 생겼다. 

증상이 그리 심하진 않았지만, 며칠 동안 침대에 누워 잠들고 깨기만을 반복했다.

그 기간 동안 머릿속을 채운 생각은 한 가지였다.

"나는 뭐가 되고 싶었던 거지?"



하고 싶은 일, 미래에 대한 기대, 자신감 등등 지금껏 나를 지탱하고 있던 기둥들이 모두 무너져 내렸다.

그 폐허 속에서 나는 그저 누워있었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늘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갈망과 조급함으로 폭풍우 치던 마음이 처음으로 평온해졌다.

불안의 파도에 이리저리 휩쓸려 다니던 진짜 내 모습이 잔잔한 수면 위로 떠올랐다. 

비로소 나를 감싸고 있던 아집과 객기가 제대로 보이기 시작했다. 


우습게도 내가 되고 싶었던 것은 다름 아닌 '주인공'이었다.

어릴 적 꿈꿨던 무언가 특별한 존재가 되고 싶다는 열망에서 여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진로를 정할 때도 사회적 인정이나 영향력을 중심으로 고려했던 것 같다.

세상에 인정받고 싶은 욕심을 '하고 싶은 일'을 찾아가는 여정으로 포장하며 여기까지 온 것이다. 

목표로 향하는데 방해되는 성격은 모두 외면하고 부정하며 꽁꽁 숨겨두었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걸 결국 인정해서 인지, 오랜만에 원 없이 자서인지는 모르겠으나

며칠 동안 안개가 낀 듯 뿌옇던 머릿속이 맑아졌다.


나는 주인공이 아니라 사회의 한 평범한 성인이고,

존재하기 위해 딱히 누군가의 인정을 받을 필요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자

꼭 성공해서 해피엔딩을 이뤄내야 한다는 압박감이 사라졌다.

여태 아등바등했던 시간이 허탈할 지경이었다.


생각해보면 늘 무언가를 해내야 한다는 막연함에 진짜 바라는 삶에 대해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평범함을 인정할 때, 나를 가두고 있던 벽이 무너지고 진짜 사춘기가 시작된다.


사춘기라기엔 늦었고, 오춘기보단 이르니

4.5춘기 정도 되지 않을까.

작가의 이전글 '일하지 않는 것'은 죄가 아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