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졸업사진 찍기 전날 날 두들겨 팼잖아."

그랬을 리가...

by 계영배

사진 Ann Hamilton, Untitled (body object series, 1984–1993



"엄마가 졸업사진 찍기 전날 날 두들겨 팼잖아."





중학교 아들이 수학 문제를 푸는 데 도와 달라고 해서 책상에서 공부하고 있는 아들에게 갔는데 책상 한쪽에 세워져 있던 아들의 유치원 졸업사진이 넘어져 있어 일으키다 문득 유독 부어 있던 사진 속 아들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어머 저 때 왜 저렇게 눈이 부었니?"





하고 내가 물으니 아들이 답한다.





"엄마가 졸업사진 찍기 전날 날 두들겨 팼잖아."





설마...





"진짜? 엄마가 널 두들겨 팼다고? 뭔 소리야..."





"엄마 생각 안 나? 내가 막 발 구르고 악쓰면서 운다고 방에 끌고 들어가서 맞았잖아."





"에이... 설마..."






나는 수학 문제를 알려주는 둥 마는 둥 하고 아들 방을 나왔다.





내가 설마 7살짜리 아들을 아들 말처럼 '두들겨 팼었'을까...

하나도 생각 안나는 내 굳은 머리가 원망스러웠다. 우리 아들같이 천사 같은 아이가 절대 없는 말을 할리가 없는데...

머릿속이 너무 혼란스러웠다.





'미운 7살'이라고도 하고 또 누군가는 '미운 4살. 미친 7살' 이라고도 하던데 뭐가 되었든 지금은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이'인 우리 아들과 나지만(이건 순전히 엄마 입장에서 본 '우리 관계 상태에 관한 진단' 임을 밝혀둔다) 사실 7살 때는 좀 힘들었었다.






한글은 떼어야 학교를 가서 바보가 안될 텐데... 영어유치원에서 영어만 쏼라쏼라 했지 게다가 만다린까지 배워서 "이얼싼쓰우류 찌빠..."뭐라고 뭐라고 중국어 노래는 불러댔지만 한글 떼기는 아직 까마득한 아들 덕에 가뜩이나 불안이 디폴트 값으로 탑재된 엄마에게 급 자아가 성장한 데다 어쩐 일인지 힘도 마구 세진 7살 아들은 매일매일 레슬링 그레꼬로망형의 대상이었다.






나에겐 아들뿐이었는데.... '팩트 폭격기' 남편과의 결혼 생활에 언제나 한줄기 빛 같던 아들이 갑자기 예민해지고 반항적이 된 7살이 내게는 참 힘들었다.






그런데다 나도 이제 슬슬 아들 유치원 엄마들과 '유치원 끝나고 놀러 댕기기' 라이프가 슬슬 지겨워지며 나의 자아를 찾고 싶은 마음이 막 불끈불끈하던 시기였다.






게다가 얼마 전 아이와 밀라노에서 유학하는 남동생을 동반한 유럽 여행은 출산과 동시에 일을 그만두고 7여 년을 집에서 애만 키우던 내 맘속을 마구 휘저어 놓았던 터였다.






사실 동생 유학 갈 때는 크게 별생각 없었는데 이번에 가서 보니 그의 아직도 열쇠로 열고 들어가는 밀라노의 천창이 있는 작은 집부터 차도 없이 걸어 다니는 모든 생활이 다 왠지 신기하게 간지 나고 멋져 보였다.






나도 일 좀 하던 사람이었는데...






지금은 그냥 매일 밥하고 청소하고 그저 집에서 솥뚜껑 운전이나 하고 또 출산 전 일하면서 돈 좀 썼던 가닥이 있어 눈은 높은데 '팩트 폭격기'이신 남편 돈 받아 쓰면서 저축에는 영 소질이 없어 남편이 벌어다 주는 족족 다 써재껴 결국 "돈도 못 버는 게 눈만 높다."라고 욕을 바가지로 먹고사는 삶에 어느 순간 마구 숨이 막히는 것처럼 느껴졌던 나는 '나', '진정한 트루 나'를 찾고 싶어서 대학원에 진학해서 공부를 더 해야 하나 아니면 일을 시작해야 하나 내가 지금 이 상황에서 좀 더 나은 내가 되려면 당최 무얼 시작해야 하나 무튼 좌우지간 오만 생각으로 머릿속이 너무도 복잡하던 시기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주변에선 나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은 전혀 없었고 또 실컷 같이 잘 신나게 놀러 댕기며 살다가 혼자 갑자기 무슨 깨달음이라도 얻은 사람 모냥 공부를 시작하겠다는 둥 그러는 내게 지인들은 조금은 의아한 불편의 감정을 감추지 않았다.





나는 점차 집에 있는 시간이 늘었고 나의 인생의 '챕터 2'를 마구 구상하며 현실과 끊임없는 협상, 분쟁. 싸움 중이었던 때였다.





그때 우리 아드님은 7살이셨고 우린 좌우지간 무지하게 싸웠다.






누군가 아이가 초등 일 학년이면 엄마도 딱 초등 일 학년의 정신연령을 가진다더니 그 말이 딱 맞았었는지...






나는 아들과 레슬링을 하던 그때 정말 진지했고 때리는 것보다는 나을 것 같아 반항하는 아들의 팔을 잡았었는데 정말 신기한 건 처음엔 엄마로서 아들의 팔을 잡았는데 이게 시간이 지나면서 지기 싫은 거다.






지금 생각해도 정말 어처구니가 없는 일인데 정말 아들이 힘이 너무 세져서 놀람과 동시 나는 그때 누구 말마따나 딱 7살이었다. 지기 싫었다.





'엄마가 다 너 위해서 하라고 한 일을 안 하겠다며 그렇게 악을 쓰고 우는 너를 '사랑의 매'라는 미명 아래 때릴 수도 있지만 그러고 싶진 않아서 처음 대화 시작 때부터 정말 감정을 숨기고 누르면서 지금 이렇게 네 팔을 꽉 잡고 있는데 엄마는 너밖에 없는데 넌 왜 엄마의 그런 맘을 몰라주니....'





너무 슬프고 화가 났다.






그래서 꽉 잡고 있는데 막 땀이 났다. 그런데도 팔을 놓고 싶지 않았다. 이유는 모르겠다. 그냥 여기서 이 힘겨루기에서 지기 싫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어처구니가 없다. 그까짓 한글을 좀 더 늦게 떼어도 숙제를 안 해도 그게 뭐 그리 큰 잘못이고 큰 일이었을까 싶은데 그때 성인의 몸이지만 7살 정신연령을 가졌던 나는 뭐가 그리 두려웠을까






내 삶에 대한 불확신과 두려움이 아이에게 갔어야 할 여유를 다 잡아먹었었던 것은 아닐까






정말 아들의 말처럼 아들과의 팔씨름에서 지고는 어디 가서 옷걸이라도 가져와서 아들 말처럼 두들겨 팼었을 수도 있겠다 싶다.






그렇다면 나는 티브이에 나오는 자식을 때리는 엄마랑 대체 나을 것이 무엇이 있는가






티브이에서 학대받았다는 아이들 뉴스를 접하고는 "어머 어쩜 저럴 수가 있어..." 그러면서 나는 마치 전~~ 혀 일도 상관없는 그저 언제나 아이에 대한 사랑과 헌신으로 가득 찬 엄마인척 했던 것은 아니었었는지...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고 한글도 다행히 떼어주고 나도 진로를 정해 공부를 시작하면서 아이의 미운 7살도 끝나고 나도 다시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스위트 한 아들바라기 엄마로 돌아오게 되었다.






그게 진짜였다면 엄마랑 심적 절연이라도 했어야 하는데...






아직 너무나도 착한 엄마 아들로 살고 있는 우리 아들에게 무얼 어떻게 고마움을 표현해야 할지






어쩌면 이제는 엄마보다 훌쩍 커버려 나를 내려다보며 말하는 아들이 그저 맨날 참'나' '진정한 나의 자아'를 찾겠다며 아등바등 하루하루 버티기를 하며 살고 있는 쬐깐한 '엄마라는 이름의 여자 사람'이 안쓰러워 봐주고 있는 것일 수도....






여느 때 같으면 "너 숙제는 하고 게임하는 거냐!"라고 소리 지르며 방문이라도 활짝 열어재꼈을 텐데... 오늘은 왠지 자기 방에서 집이 떠나가라 낄낄 거리며 친구들과 게임에 열중하고 있는 아들의 웃음소리가 싫지 않다.






고마워






엄마랑 아직 살아줘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