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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카이 사람들은 뛰지 않는다

여유로움을 누릴 줄 아는 사람들

by HAWA


해가 바뀌기 전 숨 가쁘게 달려왔던 1년간 수고했다는 의미로 쉬어가고자 친언니와 3박 4일 동안의 짧은 보라카이 여행을 다녀왔다.


나는 동남아 여행이 처음이었고, 언니는 형부랑도 여러 번 다녀왔지만 이번에 다녀온 보라카이 여행이 두 자매의 기억 속에 이번 여행이 기억에 오래오래 남을 것 같아서 짧게 느낀 점들을 적어본다.




#보라카이 사람들은 뛰지 않는다.


이번 여행은 자유 패키지로 떠난 여행이라 한국에서부터 같이 동행한 한국분들이 있었는데, 필리핀에 도착한 순간부터 누가 봐도 우리는 한국사람들이었다.


비단 필리핀 사람들과의 다른 생김새로 구분하여 말하는 게 아닌 "빨리빨리"가 익숙한 나라에서 온 고(高) 효율성에 절여져 버린 민족성에서 바로 보인달까. 칼리보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그 어떤 군더더기 시간도 보내지 않겠다는 의지에서 보인달까.


보라카이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필리핀 칼리보 공항에 내려서 약 한 시간 정도 버스를 타고 또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한다. 사실 말이 선착장이지 우리나라처럼 질서 정연하거나 제대로 된 관계자가 안내해 주는 그런 곳이 아니기 때문에 언니와 나는 까딱하면 우리의 구원줄인 가이드분을 잃어버릴까 이국적인 풍경에 한눈을 팔다가도 얼른 쫓아 뛰어다녔는데 몇 번이나 합류줄로 뛰어 복귀하는 우릴 보고 가이드분이 말씀하셨다.


"뛰지 마세요, 얼마든지 기다려드릴 테니까 뛰지 않으셔도 돼요. 이곳에서 뛰는 분들은 한국인들 밖에 없습니다."



KakaoTalk_20230127_164802333_04.jpg 보라카이로 들어가는 배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여유도 즐겨본 사람이 즐기는 법


보라카이에 도착한 후 자유 일정을 가진 우리는 여유롭게 화이트비치를 걸어 다니며 여유를 즐겨보자 하였지만, 한국에서 그랬듯이 내 앞에 걸어가는 사람의 보폭이 느리면 답답해하며 빠른 걸음으로 앞질러 갔다. 그렇게 언니와 몇 명의 여유로운 사람들을 숨 가쁘게 앞지르다 보니 문득 가이드 아저씨의 말이 떠올랐다.


'이곳에서 뛰는 분들은 한국인들 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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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여운 보라카이 댕댕이


화이트비치의 어느 카페에 잠시 앉아 쉬면서 언니에게 아까 그 말을 곱씹으면서 "여유도 평소에 즐겨본 사람이 즐기는 건가 봐. 우린 급한일도 없는데 대체 왜 이렇게 빠른 걸음으로 다니게 될까."라고 했는데 내 말을 들은 언니도 곰곰이 생각하더니, "사실 한국에서 돈을 펑펑 쓰는 건 쉬운데 시간을 펑펑 쓰는 건 어렵잖아. 지금부터라도 우리도 시간 펑펑 써 재껴 보자."라고 말했다.


그 이후로 언니말처럼 우리는 하루가 48시간인 양 펑펑 써재꼈다.


보라카이의 최대 번화가인 디몰에서도 우리 앞에서 굼벵이처럼 걸어가는 사람이 있어도 앞질러 가지 않았고 줄 서 있는 맛집에 누군가 새치기를 해도 '어차피 시간 쓰러 왔는데 뭘..' 하면서 여유를 부렸다. 그리고 그렇게 여유를 부리다 보니 주변을 하나하나 눈에 더 찬찬히 담게 되고, 언니와도 쓸데없는 얘기가 절반 이상이었지만 많은 대화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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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분에 인생샷도 많이 남김


사실 나는 내가 여행을 별로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왕 여행을 왔으면 전부 보고 즐겨야 하기에 시간을 고효율적으로 쪼개서 관광해야 한다는 그 특유의 압박감이 싫었다. 그런데 이번 여행에서는 가이드분이 툭 던진 그 말 한마디로 동행자와 합의하에 한국에서는 누려보지 못한 초호화 시간 여유를 누리는 여행을 해보니 정말 내가 여행을 왔구나. 하는 실감과 함께 그 어떤 여행지보다도 재밌고 기억에 많이 남았다.


이제껏 손해 본다는 느낌 때문에 이왕 왔으면 전부 다 봐야지 많이 보는 게 남는 거야!라고 생각했지만 오히려 이 시간에 쫓기는 느낌 자체가 내 손해라는 걸 이번 여행으로 알게 되었다.


이제는 여행할 때 효율성을 따지는 부담감을 내려놓고 여유 있게 곱씹으며 많이 다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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