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AWA Dec 09. 2022

恋した私の東京-1

사랑했던 나의 도쿄


7년간 일본에서 생활하다 돌아온 지 4년, 이렇게 오랫동안 도쿄를 못 가게 될 줄 몰랐다.


일본에서 살던 그 시절에 한국에서 도쿄로 가는 비행기 안의 순간은 언제나 슬프고 아쉬운 기억들 밖에 없었다. 공항에서 나를 보내는 엄마 아빠의 못내 아쉬운 표정과 우리 손녀 언제 다시 보게 될까 하며 우시는 할아버지의 얼굴. 그 무거운 마음들에 애써 괜찮아! 나 또 올게! 하며 씩씩하게 돌아선 둘째 딸이지만, 비행기 안에서 몇 번이나 울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귀국 후 다시 한국에서 생활하고 있는 지금에 가는 도쿄로의 비행은 설렘과 그리움만이 가득 찼다.

 


그리고 약 4년만에 다시 와 본 도쿄 신주쿠.


내 대학생활부터 직장생활까지 살았던, 안쓰럽고 즐거웠던 기억의 도시.


일본에서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나는 운 좋게 대기업 패션 회사에 취업해 본격적이고 재밌는 직장생활을 시작했지만 동시에 마음이 시들어 갔다.


패션회사에 다니는 사람들에 대한 '품위유지'가 엄격했던 회사였기 때문에 매일 적정 미용 체중을 유지해야 한다는 스트레스와 완벽한 비즈니스 일본어 극존칭어(尊敬語)를 사용해야 한다는 부담감


그리고 무엇보다 스스로 이방인으로써 그들과 간극을 좁힐 수 없음을 느끼는 좌절감 등, 끊임없이 이어지는 부정적인 생각들이 나 자신을 갉아먹고 있었지만 일을 하고 있을 때나 친구를 만날 때는 괜찮았기 때문에 스스로 얼마나 힘든지를 인지하지 못했다.


그러다 문득 내가 많이 지쳤구나를 깨달았던 건 평소처럼 일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이 신주쿠 밤거리에서 그냥 내일이 안 왔으면 좋겠다 생각하며 '혹시 차에 치여버리면 내일 출근을 안 해도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평온하게 하고 있는 나 자신을 깨달았을 때다. 그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는 스스로가 안쓰러워 질질 짜면서 이 거리를 걸었었는데..


오랜만에 온 신주쿠는 그때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그리고 이번에도 이 거리를 걸으면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다만 힘들어서가 아닌 그때의 내 즐거웠던 감정들이, 그리고 힘들었던 감정들이 온전히 생각이 나서.

 


그리고 이 도시에서 만난 일본에서의 인연들. 


MOON언니는 나를 22살 때부터 봐온, 벌써 10년째 이어지고 있는 인연이다.


언니와의 인연은 내가 언니가 있던 칵테일바에 아르바이트를 지원하면서 시작됐다. 당시 매니저로 있던 언니는 사장님과 함께 면접을 보며 "청소나 뒷정리 잘하세요?"를 질문했는데 이 물음에 1초도 고민하지 않고 씩씩하게 "네! 저 청소 잘해요!"를 연발해 뽑혔었다. (당연히 뻥이었지만.... )


그렇게 함께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게 됐는데 언니랑 나는 개그코드도 잘 맞고 패션 스타일도 잘 맞았다. 지금 생각하면 4살이나 어린 동생에게 언니가 일방적으로 맞춰준 거였겠지만, 그 덕에 언니와는 정말 빠르게 친해졌다.


둘이서 손님이 없을 때는 언니가 아보카도를 잔뜩 넣은 샐러드를 만들어줘서 먹고, 달달한 걸 좋아하는 날 위해서 초콜릿을 잔뜩 사와 준비해두기도 했다. 또 손님들 간식(つまみ)으로 스파게티 면을 튀겨서 준비해두었는데 이 튀긴 스파게티면이 진짜 맛있어서 나중에 이거 먹으려고 손님들 몰리는 거 아니냐, 생활의 달인에 나오는 거 아니냐 등 과대망상을 하면서 웃어대기도 했다.



그런 나의 추억을 함께한 언니는 일본에서 정착하고 살고 있기 때문에 내가 한국에 귀국 한 후로는 오랫동안 못 봤지만 언니는 여전히 내가 좋아하는 초콜릿 시리즈를 기억해 본인은 먹지도 않는 초콜릿을 일부러 잔뜩 사둘만큼 나를 생각해주는 사람이다.


언니는 전형적인 giver다.


예나 지금이나 본인이 받는 것보다 주는 거를 좋아하고 얌체같이 이런 언니를 이용하는 taker들에게 몇 번이나 상처받아도 주고 또 주는 사람이다. 그런 언니가 나는 정말 누구보다 행복하기를 항상 기도하고 바란다.



그리고 일본에서 직장 생활하던 시절의 일본 동료들.


내가 일본 여행을 간다고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비행기 티켓을 올리자마자 만나고 싶다고 감사하게 먼저 연락을 해주어 오랜만에 만나게 되었다. 이 날 또 10일이나 지났던 내 생일도 잊지않고 챙겨주어 축하받았는데, 생각해보면 이들은 일할 때도 유일한 한국인이었던 나를 적대하는 대신 항상 배려해주었던 것 같다.


그리고 사실, 내가 한국에 귀국하면 끊길 줄 알았던 인연들이었다. 하지만 늘 먼저 인스타그램으로 꼬박꼬박 연락해주고 DM으로 행복해 보인다고 잘 지내냐고 너무 보고 싶다는 그들의 메시지가 이어졌기 때문에 이 인연들이 지속 되고 있었다.


그래서 이 날 처음으로 농담처럼 물어보았다. 문화도 생각도 다른, 심지어 이제는 한국에서 살고 있어서 연락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나를 왜 여전히 보고 싶어 하고 좋아해 주냐고, 내 이런 바보 같은 질문에 그들은 응? 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だってキムちゃんは友達だから。

(왜냐하면 우리 친구잖아.)"


그저 그들을 타국의 직장동료라고 생각했던 나 자신이 너무 부끄러웠던 순간이다. 결국 일본에서 철저히 나 혼자라고 생각했던 건, 내가 그들에게 선을 긋고 친구로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겁이 나서 익숙하지 않아서라는 이유들로 시도조차 해보지 않은 미경험의 시간들. 내게는 '스시'또한 그랬다.


어렸을 때부터 편식이 심했는데, 그저 어렸을 때부터 나는 생선을 싫어하고 좋아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일본에 사는 7년 동안 단 한 번도 스시를 먹어본 적이 없었고 시도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러나 한국에서 하나 둘 새로운 경험을 시도해보며 먹어보았던 생선은 꽤 맛있었다. 아니 깨나 내 취향이었다. 그렇게 생선이 익숙해진 나는 이 날 일본에서 처음으로 일본 현지 스시를 먹어보았는데, 정말 정말 맛있게 먹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지독하게 새로운것에 시도하지 않았던 나의 겁 많던 시간에 쪼끔 많이 후회가 되었다.  


하라주쿠
시부야


그리고 이어지는 일본의 밤.


개성 넘치는 사람들과 젊은 패션이 넘쳐났던 하라주쿠는 무서울 정도로 사람이 없었고 모든 상권이 죽어있었는데 하라주쿠에서 멀지 않은, 한정거장 떨어진 시부야의 밤거리는 무서울 정도로 술과 사람들로 넘쳐나고 있었다.


내가 기억하는 하라주쿠는 자유로움의 상징이었다.


 어디서도 보도 못한 본인만의 스타일을 즐기는, 소위 말하는 '일본스럽고 톡톡 튀는 젊은'거리였는데, 혹시 이 '톡톡 튀는 젊은'친구들이 점점 사회에 찌들게 되어 이제는 하라주쿠가 아닌 시부야에서 술 한잔 마시는 그저 그런 대중적인 젊은이들이 된건 아닐까 싶어져서 괜히 슬퍼졌다.


나는 이미 현실에 지독히 익숙해져 있지만 이 거리는 그렇지 않았으면 하는 이기적인 바람을 담아.


                    

그리고 또 하나 익숙한, 변함없이 내가 사랑하는 편의점 음식들.


일본에서 살면서 제일 많이 먹었던 게 편의점 음식들이었어서 그런지, 지금 먹어도 여전히 내 혀 끝이 기억하는 익숙한 맛들이였다.


그리고 비로소 이 익숙한 맛이 내가 익숙했던 일본에 와있구나라는 향수를 들게해 마음 편하게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었고..


그렇게 여러가지 후회들과 익숙함으로 뒤덮인 내가 사랑했던 도쿄. 그리고 나는 여전히 과거형이 아닌 현재진행형으로 이 도시를 아직 사랑하고 있는 것 같다.

작가의 이전글 일본 퀵커머스 시장부터 노리는 일본쿠팡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