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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하지 Oct 20. 2022

지역아동센터의 아이들, 그리고 '충북 보은'이라는 곳

청소년 전용 공간 | 다문화 가정 지원 정책


  겨울방학에 알바를 했던 곳인 지역아동센터에 놀러 갔을 때의 일이다. 그곳에 있는 사회복지사님과 센터장님, 조리사님, 여사님이 먼저 반겨주셨다. 아이들은 처음에는 낯을 가리다가 게임을 같이 몇 번 한 후에야  즐겁게 대해주었다. 센터는 전과 같이 조용하고 아늑한 분위기였다. 나중에야 들었는데, 중학교 3학년에 올라가는 남자아이들 2명이 센터에서 나갔다고 한다. 그 두 명은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들이며, 활발하고 장난기가 많았다. 분위기 메이커라고 할 정도로 밝은 아이들이었는데 센터를 나간 이유가 궁금했다. 알고 보니 여러 친구들을 만나면서 친구들한테 "지역아동센터 왜 다녀?"라는 말을 자주 들었나 보다. 지역아동센터가 방과 후에 맞벌이 가정의 아이들이 머물 곳이 마땅치 않아 방문하는 곳인데 학교 내에서는 "불쌍한 아이"로 낙인 받기 쉬웠나 보다. 일주일에 한 번, 2주에 한 번... 방문이 점점 뜸해지다가 결국 남자아이 두 명이서 "저희 안 나오겠습니다."라고 폭탄선언한 후, 그 뒤로 한 번도 눈에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며칠 뒤, 지역아동센터를 안 가니 밥 먹을 곳도, 잠깐 머무를 곳도 없어서, 지역아동센터에 같이 다녔던 친구한테 "지금 선생님 계셔?"라며 몰래 들어오려는 시도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선생님은 강경한 태도로 그 아이들을 다시는 받아주지 않을 거라고 하셨다. 나는 선생님이 '조금 너무하시다.'라는 생각을 했지만, 선생님께서는 "한 두 번씩 받아주다 보면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할 거예요. 자기의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걸 가르쳐 줘야죠."라고 하셔서 단번에 이해되었다. 하지만 조금 슬픈 사실은 지나가면서 두 남자아이 중 한 아이를 마주치면 흔히들 '노는 무리'라고 부르는 친구들과 어울리고 있었다. 밤 12시까지 읍내에서 돌아다니곤 하는데 머무를 곳이 없어서 청소년 문화의 집이나 도서관에 머물다가 간다. 이들은 화장은 물론이고 렌즈도 끼며, 여자 친구도 사귀었다고 한다. 나는 그들이 엇나갈까 봐 정말 걱정됐지만 사실 아무리 주변에서 "너 그러면 안돼."라고 해도 스스로 깨달을 때까지 사람은 바뀌지 않는다. 지켜보는 사람의 입장으로서는 그저 한 발짝 멀리 떨어져서 그들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또 다른 남자아이는 중학교 3학년임에도 초등학교 6학년 수학을 배우고 있을 정도로 수학과 거리가 먼 아이였다. 그래서 알바를 할 때 최대한 구체적으로 가르쳐주고는 했는데, 지역아동센터도 안 다니니 가르쳐줄 곳도 없고, 이 아이는 나중에 더 따라가기 힘들 것 같다. 이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아무것도 해줄 수 없다는 사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이 남자아이들의 공통점은 부모님의 관심이 다른 가정보다 조금 떨어진다는 것이다. 화장을 하거나 렌즈를 껴도 부모님이 못 알아보시며, 옷을 안 빨다 보니 옷에서 땀냄새가 그대로 난다. 그래서 다른 선생님이 세탁기 돌리는 방법까지 알려주시곤 했다. 부모님의 관심, 사랑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나이인데도 이들은 받지 못하고 있다. 마지막 공통점은 두 남자아이의 부모님 중 한 분이 외국분이라는 것이다. 더 자세히 말하자면 동남아에서 오신 분들이며, 다문화 가정의 아이들이다. 가뜩이나 시골이기 때문에 인프라가 없는데 여기에 오실 정도면 경제적 상황이 안 좋다는 것을 예측할 수 있다.




  이 아이들의 이야기를 전해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청소년 공간'이 필요하다는 것과, '다문화 가정'을 위한 정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충북 보은에는 청소년 공간이 사실상 청소년 문화의 집 밖에 없다. 그 공간도 몇십 년이 됐고 리모델링은커녕 유지를 하고 있는 정도이다. 학원에 안 다니는 친구들이 갈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면 좋을 것 같다. "애들이 학원 가 있는 동안 너는 뭐해?" "피시방에 있거나 편의점에서 애들 기다렸다가 애들이랑 놀아요." 그 남자아이의 말이다. 학원을 안 다니면 놀 친구가 없어서 학원을 다니는 아이들도 있다. 반면, 학원에 가 있는 친구들을 기다리는 아이들도 있다. 이 친구들뿐만 아니라 다른 중고등학생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청소년 공간은 절실하다. 조별과제, 수행평가 등 만남이 필요한 일들은 늘어나는 반면, 이들이 머물러서 조별과제를 할 곳은 값비싼 카페밖에 없다. 하루에 4,500원씩이라고 하면 결코 작은 돈이 아니다. 이들이 편하게 머물며 간식도 먹고 수행평가도 마음 놓고 할 수 있는 공간이 생기면 좋겠다. 아니, 생겨야만 한다. 청소년 공간이 생긴다면 그저 ‘공간’이 ‘문화’를 만들 것이라고 나는 굳게 믿고 있다. 몇 년간 충북 보은군에서 청소년 공간을 만들어달라는 청소년의 외침이 있어왔고, 나도 그중 한 명이다. 그러나 군청에서 돌아오는 답변은 “청소년 문화의 집이 있는데 공간이 왜 필요하죠?”이다.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청소년 문화의 집은 접근성도 좋지 않고 몇십 년이 됐기 때문에 시설이 많이 노후화됐다. 따라서 청소년 문화의 집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청소년 공간은 필요한 것이다. 스터디 카페 형식의 청소년 공간을 만들기 위해 나는 현재에도 노력하고 있다. 많은 사람이 청소년 공간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고 동참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또한, 보은에는 다문화 가정이 점점 늘어나는 추세이다. 보건소에서는 태교 교육, 도서관에서는 그림책 만들기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다문화 가정의 어머니들은 그 프로그램에서 소외되고 있다. 눈치가 보이셨는지 방문이 뜸해진다고 한다. 눈치는 아마 다른 한국의 어머니들이 알게 모르게 줬을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상황 속에서 다문화 가정은 점점 소외되고, 위의 남자아이들처럼 보살핌을 못 받게 되는 상황이 굴러간다. 다문화 가정에 대한 인식 개선 교육과 더불어, 다문화 가정을 위한 문화, 복지, 교육 프로그램이 도입되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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