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 – 실패는 마침표가 아니라, 쉼표였다
실패 속에서도 계속되는 믿음의 기록
인생을 누군가에게 이야기하려면,
성공하고 합격해서
누군가에게 희망과 본이 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그래서 나에겐 '성공'이라는 마침표가
살아가는 자의 '쉼표'보다
훨씬 더 중요해 보였다.
그러나 인간의 일생을 논리적으로 생각해 보아도
인간의 삶엔 죽음 외에는 진정한 마침표가 없다.
학창 시절엔 졸업이 마침표인 줄 알았지만 아니었고,
대학도, 취업도, 밥벌이도 마침표는 아니었다.
언제나 마침표라고 생각했던 순간들은
죽음을 향한 긴 쉼표처럼 느껴졌다.
그런 의미에서 나의 실패도
마침표가 아니라 쉼표처럼 생각되었던 시점이
이 시점이다.
성공의 마침표가 없다면,
실패 또한 마침표일 수는 없지 않을까.
결국, 살아 있는 모든 순간의 방점은
마침표가 아니라
쉼표와 물음표, 그리고 느낌표의 서사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이 내 안에서 어렴풋이 시작된
변화의 시작이었다.
내가 계획한 것 만이 전부고 내가 바랬던 것만이 유일한 길이었던
생각이 무너지니 순간을 못 참고 그새 파고드는
좌절과 절망 그리고 열등감이 엄습해 온 것도 사실이었지만
그 속에서 '간절함'과,
어울리지 않게 피어난 '자신감'이 희한하게 공존했다.
분명,
민망했고 부끄러웠다.
근데 뭐가 그렇게 부끄러운지 알 수 없었다.
왜냐면 길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무너져 내 눈엔 보이지 않는다.
무너져 내 세상엔 없다.
뭐가 있어야 부끄럽기라도 할 텐데
무너져버린 내 길이 왜 부끄러운지 몰랐다.
친구들에게 어떻게 말할지,
부모님께 뭐라고 설명할지,
그게 부끄러웠던 걸까?
그랬던 것 같다.
내 주변에 비춰질 내 모습이 부끄러웠다.
군 전역 이후 대학 졸업도 앞두었지만
아직도 학원 생활 중인 편입생이란 시선이
장성한 몸으로도 밥 한 끼 책임지지 못하고
집에서 밥을 달라해야 하는 식충이가 된 시선이
시간은 흐르고 있었는데 사랑하는 사람에게조차
남들이 사주는 평범함도 못 채워주는 시선이
부끄러웠다.
그런데,
부끄러워졌기 때문에 간절해졌고,
간절해졌기에 이상하게도 자신감이 생겼다.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아니라,
뭐라도 해야겠다는 자신감.
그리고 그 시기,
이상하게도 하나님은 공평하시다는 믿음이
더 강해졌다.
나는 중고등학교 시절,
남들이 공부할 때 놀았다.
누군가가 피땀 흘려 공부하던 시간에
나는 그러지 못했다.
그렇기에 내 마음의 결단과 의지가 발동했다고 하여
극적인 순간이 무조건 다가오지 않는다는 것을 배운 시간이었다.
드라마 미생을 보면 장그래라는 주인공의 대사가 있다.
기재가 부족하다거나, 운이 없어 매번 반집차 패배를 기록했다는 의견은 사양이다.
바둑과 알바를 겸한 때문도 아니다.
용돈을 못주는 부모라서도 아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가 자리에 누우셔서가 아니다.
그럼 너무 아프니까.
그래서 나는 열심히 하지 않는 편이어야 한다.
열심히 안 한 것은 아니지만
열심히 안 해서 인걸로 생각하겠다.
난 열심히 하지 않아서 세상에 나온 거다.
난 열심히 하지 않아서 버려진 것뿐이다.
공감이 되었다.
근데 공감으로 끝나지 않았고 이 대사가 내 현실로 다가왔다.
장그래의 실패 이후 입사라는 인생의 기회가 찾아왔듯
희한하게, 나에게도 기회가 왔다.
분명 실패한 자였는데 일이 들어왔다.
공부하던 학원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수 있는 기회였고
그 기회로 몇 십 명 앞에서 처음으로 무언가를 가르쳐 본 기회를 얻었고
그 기회로 한 사람에게 집중을 다하여 과외를 할 수 있는 기회도 얻었다.
생각해 본 적도 없었고
결과는 실패였는데,
그 과정 속에서 기회가 피어났다.
세상은 결과가 중요하다.
대부분의 결과는 한 번의 순간으로 결정된다.
한 번의 시험,
한 번의 시합,
한 번의 인터뷰.
그 한순간, 그 한 번,
너무 중요하지 않은가?
하지만 그 한 번의 순간을 위해 준비한
수많은 걸음들 속에는
결과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정신, 자세, 인격, 마음 같은 것들이 있다.
우린 이걸 쉽게 잊는다.
눈에 보이는 것들에 익숙한 우리 모두는,
눈에 보이는 결과가 아니라면 등한시하며,
눈에 보이지 않는 땅 속 씨앗의 기다림을 놓치고,
눈에 보이지 않는 땅 속 씨앗의 생명력을 잊고 산다.
하지만 인간이란 참 복잡하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는 하지만,
그 하나를 본다고 모든 걸 안다고는
쉽게 말할 수 없는 존재,
그게 바로 인간이다.
나의 경우, 결과는 실패였다 말할 수 있지만
그 과정 속에는 결과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무언가를 바라봐주었던,
누군가가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나는 실패 속에 기회를 얻었다.
한 순간을 위해 준비해 온 열정으로 인해
내가 원한 결과는 아니었으나
최선을 다한 실패가
나를 새로운 길로,
새로운 세상으로,
새로운 도전으로 이끌었다.
'빠르게 실패하기'란 책에 이런 글이 있다.
분명한 사실은 성공한 대부분의 사람이
계획을 세우는 데 시간을 쓰기보다 행동하는데 주력했다는 점이다.
그들은 과감한 시도 속에서 많은 실수를 저질렀다.
그리고 그 안에서 예상치 못한 실패와 기회를 찾아냈다.
-<빠르게 실패하기>, 존 크럼볼츠 · 라이언 바비노-
실패 속에서 피어난 기회를 경험한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실패는 인생의 마침표가 아니라, 쉼표라는 사실을.
그리고 그 작은 생각의 전환이
내 삶에 진짜 변화의 시작이 되었다.
그 변화는 작지만 동시에 거대한 시작이었고,
새롭게 열린 시각의 문을 통해 나는 한 걸음을 내디뎠다.
물론,
앞으로 펼쳐질 삶이 내가 예상하지 못한 길이었단 걸
그때는 알지 못한 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