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발 다가가면, 두 발 도망가는 마음
가까워지려 할수록 멀어지고 싶어진다.
참 이상하다. 마음에도 작용과 반작용이 있는 걸까?
다정한 말 앞에서 무뚝뚝해지고, 따뜻하게 다가오면 괜히 차가워지는 나.
이 법칙은 이상할 만큼, 엄마 앞에서 더 격하게 작동한다.
“나 왔어~”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부터 뭔가 다르다.
알콜이라는 가면을 슬쩍 쓴 엄마의 발걸음엔 묘한 들뜸이 묻어 있다.
쉴 새 없이 쏟아지는 말들.
오르락내리락, 빠르기도 하고 길기도 한 목소리의 변주들.
그 모습에, 나는 달팽이처럼 스르르 안으로 숨는다.
트라우마라는 이름으로 남은 감각들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동굴에 들어가고 싶다. 아무 말도 하기 싫다.
좋다는 호흡법도, 천천히 숫자 세는 것도 소용없다.
그럴 땐 그냥 잔다. 그래야 도망칠 수 있다.
눈을 감고 있는데, 조심스럽게 문이 열린다.
“엄마가 술 마셔서… 너 화났어?”
머뭇거리는 목소리.
아니, 엄마에게 화난 게 아니다.
가볍게 술 마신 엄마를 여전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나 자신에게 화가 난 거다.
엄마는 많이 달라졌다는 걸 안다.
예전 같지 않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심장은 여전히 옛날에 머물러 있다.
머리는 괜찮다 말하지만, 몸은 아직도 그때를 기억한다.
그게 참 얄밉다.
그리고 조금, 슬프다.
그렇게 얼마나 흘렀을까 조용히 닫히는 문소리와 함께 다시 찾아온 정적.
문이 닫히고 나서야, 마음이 천천히 내려앉는다.
나의 기분을 이해해주고, 조심스레 배려해준 엄마의 다정함에 순간 발동했던 편도체의 경보가 조용히 가라앉는다. 그리고 그 자리에 미안함과 고마움이 채워진다.
미안해, 엄마야.
내가 아직 치유가 덜 되었나 봐.
고마워, 엄마야.
그런 날 이해해줘서.
시무룩하게 돌아선 엄마의 얼굴을 상상하니 괜시리 미음이 저릿해져온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다정한 사과를 건네야겠다는 다짐과 함께 스르르 잠에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