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완서님의 도둑맞은 가난을 읽고
상훈이는 멕기 공장 (목걸이 도금공장) , 나는 서름질 (제주 방언으로 설거지) 을 하며 연명하고 있다. '나'는 공장에서 일하며 빈민촌 산동네에서 어렵게 살아가는 여공이다. 가족을 모두 잃고 같은 동네에 사는 청년 '상훈'과 방을 합치며 동거를 시작한다.
상훈은 '나'보다 더 지독한 가난을 겪고 있는 것처럼 보였고, 서로의 처지를 의지하며 정을 쌓아간다. 어느 날, 상훈은 갑자기 사라졌다가 부유한 대학생의 모습으로 다시 나타났다.
알고 보니 상훈은 부유한 집안의 아들로, '가난이 무엇인지 체험해 보기 위해' 방학 동안 빈민가에 숨어들었던 것이다. 그는 고마움을 표하며 돈을 건네려 하지만, 나는 그가 자신의 삶을 단순한 '체험 학습'이나 '놀이'로 여겼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는다.
(줄거리 : AI 요약본 발췌)
지금에서 생각해 보면 대부분이 어린 시절 가난했다. 그건 지금에서 생각했기 때문이고 그 어린시절 내가 가난이란 것도 잘 몰랐고 불편한 것도 잘 몰랐다. 그러다 초등학교 4학년 때 가난 비슷한 느낌을 알게 되었다. 친구의 생일잔치에 갔는데 근사한 아파트였다. 화장실도 근사했고, 우리 집처럼 좁은 방도 아니고 소파에 큰 TV. 큰 냉장고 그리고 양변기가 있는 화장실이 너무 멋있었다.
그러면서 나는 우리 집이 초라해 보이고 불편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지만 우리 집은 가난하다. 가난이 싫다. 싫다. 이렇게 미치도록 몰입해서 생각해 본 적은 없다. 배고프지 않고, 춥지 않고, 내가 돈을 쓸 일이 없어서였으리라 생각한다. 우리 엄마와 아빠는 진짜로 궁핍함을 벗어나려고 발버둥 쳤겠지만.
대학교 입학했더니 차를 몰고 다니는 친구가 등장했다. 차에 익숙지 않은 시대에 여대생이 차를? 꽤 부자이구나 느꼈다. 친구의 아버지는 큰 수산회사에 다니셨고 친구가 결혼하자 사위에게 양식장을 해보라며 지방에 양식장을 차려주셨다.양식장은 양식장대로 하면서 아울렛 매장에 수입 명품시계점 4개를 열었다.
그렇게 부자인 친구는 최근에 동업자의 배신으로 파산하게 되었다. 나는 그 친구의 변호사 비용에 쓰라고 얼마 안되는 돈을 보태주었다. 그렇게 친구는 사업을 끝냈다.
지금 음식점을 하고 있는데 그간 친구가 느꼈을 고통의 수준과 종류를 잘 알지 못해서 미안하기도 하다.
아니 솔직히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더 미안하기 싫어서.
'도둑맞은 가난'이라는 책을 읽고 나니 사람마다 사는 상황에서 가난이란 것은 언젠가는 한 번쯤 맞이하는 것 같다. 시간은 좀 걸리겠지만 슬기롭게 견디며 극복하는 방법 밖에 없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