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야 갚는 촌지

by 아침해


선생님께 돈 봉투를 드리는 장면을 분명히 보았다.


초등학교 2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 수술을 받으셔서 엄마와 함께 병문안을 갔을 때였다. 선생님의 성함이나 얼굴은 이제 기억나지 않지만, 유독 선명하게 기억나는 장면 하나가 있다. 엄마는 선생님과 대화를 나누다 “선생님, 어서 쾌차하세요.” 하며 봉투를 선생님 손에 쥐여드리고는 악수하듯 손을 흔드셨다. 선생님은 얼른 이불 속으로 손을 가져가셨고, 다시 빈손으로 엄마의 손을 덥석 잡으셨다. 키 작은 꼬마의 눈앞에서 마술처럼 나타났다 사라진 봉투의 존재. 나는 그렇게 ‘촌지’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선생님은 나의 머리를 쓰다듬으시며 방학 동안 '노인과 바다'를 읽고 독후감을 써오라고 하셨다. 길게 쓸수록 좋다는 당부도 잊지 않으셨다.


개학 후, 방학숙제인 '탐구생활'과 함께 여러 과제를 제출했다. 물론 책을 거의 베끼다시피 한 두툼한 원고지 뭉치도 함께였다. 나는 그 글로 최우수 독후감 상을 받았다. 진정 내 실력인지 아니면 어떤 ‘수작’이 있었던 건지 알 수 없었지만, 어린 마음에도 기분은 참 좋았다.


당시 우리 집은 일정한 수입이 없던 아빠 대신 엄마의 ‘융통’으로 굴러가고 있었다. 아빠는 구청에서 서류를 대필해 주고 고작 몇 푼을 받아오는 게 전부였고, 엄마는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 일을 하셨다. 동네 사람들이 우리 집을 ‘일수집’이라 부르는 이유를 사춘기가 지나서야 겨우 깨달았다.


긴 치마를 즐겨 입던 엄마의 ‘치맛바람’은 그 치마 길이만큼이나 엄청났다. 첫딸인 내가 공부를 제법 잘했던지라 엄마는 더욱 가열차게 학교를 드나드셨다.2학년부터 6학년까지, 엄마는 면담 때마다 신의 경지에 가까운 손기술로 촌지를 꽂아 넣으셨을 게 분명했다. 영화' 선생 김봉두'를 보며 나는 우리 담임 선생님들이 그 주인공과 쌍벽을 이룰 만큼 봉투를 잘 받으셨다고 확신했다.물론 그중에도 거절하는 분은 계셨다. 4학년 담임이었던 젊은 총각 선생님이 그랬다.


체육 시간 직후, 4학년 담임선생님과 의례적인 면담을 마친 엄마가 준비해 간 봉투를 건네려던 찰나였다. 선생님은 손사래를 치며 자리에서 일어나셨고, 엄마는 봉투를 전달하려 선생님의 손을 낚아챘다. 선생님이 허공에 손을 뿌리치자, 작은 키의 엄마는 선생님의 손을 잡으려 점프하며 버둥거리기까지 했다. 결국 엄마는 번개 같은 몸놀림으로 선생님의 트레이닝복 바지 주머니를 포착해 봉투를 쑥 밀어 넣었다. 엄마의 강한 손놀림에 바지 가랑이가 휘청거릴 정도였다. 목적을 달성한 엄마는 뒤도 안 돌아보고 교실을 뛰어나오며 문간에서 짧고 굵게 외쳤다. “선생님, 수고하세요!”


집에 돌아온 엄마는 승전보를 전하는 개선장군처럼 그날의 일을 소상히 들려주셨다. “내가 바지에 손을 넣어서 어찌나 민망했는지 몰라.” 하며 묘한 웃음을 지으시던 모습. 엄마의 추태를 상상하니 부끄러움은 오롯이 나의 몫이었다. 다음 날부터 선생님은 나를 이래저래 챙겨주셨지만, 나는 4학년이 빨리 지나가기만을 바랐다.

그 시절 나는 매년 임원을 맡고 큰 상을 휩쓸며 높은 자존감을 쌓았다. 하지만 그것이 오로지 나의 실력이었는지, 아니면 엄마의 ‘촌지 신공’ 덕분이었는지 알 수 없는 채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이제는 법으로 엄격히 금지되어 음료수 한 병도 마음 편히 주고받지 못하는 세상이 되었으니, 엄마의 그 기묘한 기술도 이제는 저 세상의 신기한 옛날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엄마에게 '돈'이란 생존을 위한 수입원인 동시에 자식을 키우는 ‘부스터’였던 셈이다.


내일모래 아흔살이신 엄마. 요양병원에 계신 엄마는 가지고 있지도 않은 통장의 돈을 운운하신다. 내 통장에 6억 2천만 원이 있다고 자랑하는 통에 돈자랑 그만하라며 병실할머니들의 타박을 들으신다. 그분들과 소리를 지르며 싸우기도 하신다. 엄마는 기가 죽기는커녕 더 큰 소리로 "나는 월세도 받고 우리 딸은 장학금도 받는다"며 돈 이야기를 멈추지 않는다. 결국 ‘돈 자랑 빌런’이 된 엄마는 다른 병실로 옮겨가야만 했다. 다행히 새로 옮긴 곳은 간병 여사님이 처신을 잘해주시는 분이었다. 여섯 명의 환자를 돌보며 고된 일과를 보내는 여사님은 엄마의 반복된 돈 타령을 치매 증상이라 어쩔수 없다며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잘 흘려주셨다. 그 모습이 감사해 나는 여사님을 슬쩍 불러냈다.

그리고 으슥한 곳에서 돈을 접어 여사님의 앞치마에 쓰윽 밀어 넣었다. “여사님, 커피 사 드세요.”

여사님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손사래를 치시더니, 이내 “고맙십니다” 하고 받으셨다. “어머님이 내 말은 잘 들어요. 순하디순해서 반항도 안 하시고 잘 지낼 겁니다. 어머니 식사가 좀 부족해요 뉴케어 그거 알죠? 필요하니까 좀 보내주세요.”

여사님은 받은 만큼 보답해주겠다는 의지를 보여주시듯 나에게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쏟아내셨다. 그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앞으로 얼마나 사실지 모르는 엄마를 위해, 나는 이제야 그 옛날 엄마가 내게 아낌없이 주었던 그 촌지를 갚아나가고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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