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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침해 Apr 24. 2024

시각장애인은 어떻게 핸드폰을 쓰지?

다가온 설날.

으레 추석날 우리가 얻어먹었으니 밥 한 끼 해줘야 하겠다는 심적 부담이 밀려와

우리 아파트로 제부와 동생을 저녁 식사에 초대했다.

(제부라고 글로 쓰지만 내입으로는 한 번도 불러보지 못한 호칭이다)


우리 집에 도착했다.

눈이 성한 우리들이야 문이 어디고 의자가 어디인지 알지만 B군은 손으로 공간을 익히고 있었고

동생은 B군의 눈이 되기 시작했다.


"왼쪽에 소파 긴 게 있고, 그 앞에 탁자가 있어.

오른쪽에 식탁이 있는데 지금 음식이 차려져 있어. 의자 내가 빼 줄게 “


저리도 친절한 여인이 다 있을까?

나는 내 동생의 살가운 모습에 다시 한번 감탄하고, 남편이 준비한 음식상을 도왔다.

(우리 남편은 “서초아빠셰프 대상” 받은 남자)


소고기 부위마다 구워 주면서 조금씩 맛보라고 잘라줬다.

동생이 다시 고기에 소금을 적당히 묻혀 집기 좋게 드문 드문 접시에 놓는다.

주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나 고기 배분 의식으로 제대로 밥맛을 느낄 수 있을까 싶었다.

고기를 먹기 도장깨끼를 시작했고, 성공률 100%에 육박하는 실력으로 제대로 집었다




식사를 마치고 과일과 음료를 먹기 위해 소파로 장소를 옮겼다.

남편의 최애 레코드판 속의 7080 음악을 들으며,

무슨 이야기부터 해야 하나 잠시 머릿속을 헤엄치고 있다가 무심코 내가 입을 떼었다.


“회사에서는 무슨 일 해요?"

“장애인 신문을 만들어요. 점자로 된 신문이죠”

신문을 일단 PC로 만들고, 그것을 점자로 인쇄하는 모양이었다.


“관련된 곳에서 사진과 기사를 보내주고, 필요하면 기사를 요청하기도 해요”

“그런데 기사를 어떻게 읽고, 편집해요?"


공무원인 B군은 나라에서 일정 비용을 지원해 주는 업무 도우미가 있다고 했다.

70년대생 아주머니이신데 글을 읽어주고 회의등 업무를 많이 도와주신다며 말이다.

대부분은 읽어주는 프로그램으로 잘 듣긴 하는데, 이미지 등은 읽지 못하는 경우도 많아서 도움을 받아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곧 인공지능 AI로 시각장애인 프로그램이 나오겠지 당연한 상상도 해봤다.


“그럼, 퇴근 후에는요? 휴대폰으로 인터넷도 봐요?”

나름 날카로운 질문이라고 생각하기 무색하게 예상했던 질문이었는지 준비된 답변을 말하기 시작했다.


“아이폰 하고 갤럭시폰 모두 시각장애인을 위한 모드가 있어요.”

동생이 받아쳤다.


“그 겨울, 바람이 분다 드라마를 보면 송혜교가 시각장애인이거든,

그런데 아이폰으로 전화를 받고 잘 쓰더라고. 그래서 아이폰을 사줬어”


동생이 시각장애인 모드(보이스 오버)를 설정해 주고,

사용법을 알려줬는데 너무 어렵고 익숙하지 않아서 몇 번은 안 쓰겠다고 내 던졌다고 했다.


핸드폰 화면을 터치하면 어떤 아이콘인지 읽어주고, 화면 전환시 소리로 전해듣는 방식이었다. 

한 번 본 나로서는 굉장히 사용하기 힘들다 생각했지만 설득 끝에 계속 쓰다 보니 

이제는 핸드폰 없이는 살 수 없게 되었다고 했다.

동생은 헬렌켈러의 설리번 선생님 못지않은 동기부여 하는데는 실력자임에 틀림없다. 


더불어 죽기 전에 한번 만난다면 (정말 영광이겠지만)

송혜교가 시각장애인을 연기한 것에 대하여 대신 감사하고 싶다.






B군이 피소드 보따리를 열었다.

하루는 이불을 털다가 이불에 딸려온 휴대폰이 창 밖으로 던져졌다.


리모컨이 떨어졌나 보다 생각했는데, 휴대폰임을 알고 헐레벌떡 아래층으로 도움을 구하러 갔다.

“저와 함께 1층에 가서 제 전화 번호로 전화 한 통만 걸어 주시겠어요?”

시각장애를 가진 B군의 부탁에 아랫집 와이프는 거절을 했고,

거칠게 생긴 남편은 "그게 뭐라고 해드리죠~" 하며 같이 1층 내려갔다.

아래층 남자로 전화를 걸어 결국 B의 휴대전화를 온전히 찾았다.


휴대폰을 찾은 기쁨만은 아니겠지?

휴대폰을 부여잡고 그날 엄청 엉엉 목놓아 울었다고 했다.

'나쁜 아랫집 계집애. 그집 남편 때문에 봐줬다.'

내 입이 달싹대며 절로 욕이 나온다.



날이 저물어 동생 내외를 집까지 바래다주었다.

돌아오는 길 내내 그리 재밌지도 않고 지루하지도 않게

<핸드폰을 보는 한 사람>의 이야기를 30분 내내 했다. 



휴대폰 보는 시간이

그저 욕먹는 시간 될 수도 있을지언정
누군가에게는 도전과 극복으로 얻어낸 소중한 시간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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