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괜찮냐'는 말의 의미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정확히 말하면, 나 자신에게만큼은 언제나 '괜찮음'만을 강요해왔기 때문이다.
기분 좋은 어느 날, 잔병치레조차 없던 나에게 지독한 감기가 찾아왔다.
이불을 여러 겹 뒤집어쓰고 땀을 흠뻑 흘리면 금방 털고 일어날 줄 알았다.
낫기는커녕 나를 보호해주어야 할 이불의 무게만큼 허리의 통증만 무겁게 더해질 뿐이었다.
출근길, 경비원 아저씨께 아팠던 얘기를 했더니 걱정 어린 말투로 그렇게 버티다가는 후유증이 남으니 병원 약을 처방받았어야 했다고 말씀하셨다.
그 말을 오래도록 곱씹었다.
나는 정말 낫기 위해 노력했던 걸까, 아니면 그저 시간이 나를 관통해 지나가기만을 기다리며 무모하게 버티고 있었던 걸까.
나를 좀 더 아껴주자고 뒤늦은 다짐을 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결국 터질 게 터지고 말았다.
몸 곳곳에 대상포진이 올라오기 시작한 것이다.
기미가 보이자마자 이번만큼은 나를 방치하지 않겠다고 결심하며 응급실로 향했다.
면역력이 바닥을 보일 때만 기회를 틈타 찾아온다는 그 바이러스는 무서운 속도로 번져나갔다.
젊은 나이에 찾아온 대상포진의 원인은 명확하다고 한다. 스스로를 한계까지 몰아붙인 것이 그 이유고 혹독한 결과였다.
나는 비로소 내 상태를 직시했다.
나는 마치 차에 치이고도 멀쩡히 걸어가는 사람 같았고, 총탄을 맞고 쓰러져 가면서도 아픔을 느끼지 못하는 병사 같았다.
생존을 위해 모든 감각을 팽팽하게 긴장시킨 채, 몸이 스스로를 마취시키며 통증을 유예하는 것.
심리학에선 이를 '투쟁-도피 반응'이라고 한다.
그 가혹한 마취제 덕분에 나는 부서진 채로도 걸을 수 있었지만, 그것은 회복이 아니라 파멸을 늦추는 위태로운 유예일 뿐이었다.
마침내 긴장이 풀리고 몸이 이완되는 순간, 댐이 무너지듯 억눌려 있던 질병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다. 아이러니하게도 몸이 안전하다고 느끼는 그제야, 비로소 마음 놓고 아플 수 있게 된 것이다.
나는 제때 아파야 할 시기를 놓치고 지나쳐온 사람이었다.
그래서 무너졌다.
내가 안 괜찮으면서 타인에게만 '괜찮냐'고 물어왔던 지난날들이 떠올랐다.
내가 타인에게 그 질문을 자주 건넸던 건, 어쩌면 내 안의 결핍을 밖으로 투사하며 나의 상태를 확인받고 싶었던 처절함이었을지도 모른다.
나조차 나를 이해하지 못하면서 그 누구를 진심으로 품어줄 수 있었을까.
슬플 때는 슬퍼야 하고, 흔들릴 때는 흔들려야 한다.
고통을 유예하지 않고 싶다. 좀 더 잘 버티고 싶다. 잘 살아가고 싶다.
내가 나를 좀 더 깊이 이해하게 되어 타인을 더 진심으로 품어줄 수 있는 커다란 나무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