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신 - 프란츠 카프카 : 뭐가 본캐지?

by 포미

내가 바퀴벌레가 되면 어떻게 할 거야?


우리가 한 번쯤 농담으로 들어봤을 법한 질문이다.

글쎄, 내 기억이 맞다면 나는 그때 "일단 재밌게 키울 것 같다."라고 난 말한 것 같다.

그 정도로 농담 삼아 넘길 수 있는 이 소재를 카프카의 소설 <변신>에서는 심오하게 다루고 사회가 인간을 바라보는 차가운 시선을 날카롭게 드러낸다.

주인공 그레고르는 성실한 영업 사원으로 가족을 부양하던 인물이지만, 벌레로 변하는 순간 더 이상 경제 활동을 할 수 없는 무력한 존재가 된다.

그가 변신했을 때 가족들이 느낀 감정은 슬픔이 아니라 당혹감과 혐오에 가까웠다.

가족들은 가족애와 책임감으로 그를 돌보려 하지만 점차 그가 더 이상 쓸모없는 존재라고 여겨지자 짐처럼 취급하고 나중에는 방치하여 죽음에 이르게 한다.

가장 잔혹한 대목은 마지막에 그의 죽음을 확인한 가족들은 오히려 안도하며 새로운 미래를 꿈꾸게 된다는 점이다.

마치 그가 가족을 위해 쏟아온 헌신이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말이다.


뭐가 본캐지?


이 소설은 결국에 우리에게 불편한 질문을 던진다.

“과연 인간은 ‘쓸모’가 있어야만 가치를 인정받는 존재인가?”


우리는 사회적 역할을 잃더라도 여전히 내면을 가진 존재다.

그러나 조금만 상상을 해봐도 사회적 기능 앞에서 우리의 내면은 쉽게 흔들리고 무너지는 것처럼 보인다.

개발자인 나로서 상상을 한다면 내가 당장 손이 없어지는 상상을 해볼 수 있을 것 같다.

당장 회사에서 잘릴 것이고 사회적인 기능이 완전히 소멸되었다고 느낄 것이고 동시에 내면의 나도 흔들릴 것이다.

어찌 보면 사회적 기능 앞에 우리의 내면은 하찮은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인 걸까, 우리는 흔히 ‘내면의 나’보다 ‘사회적 역할로서의 나’를 더 중요하게 여긴다.

성공과 인정으로만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려 애쓰고 때로는 그것을 위해 더욱이 대체 불가능한 사람이 되기 위해 스스로를 채찍질하기도 한다.

나 역시 한때는 그랬다.

그러나 사회적 정체성은 예기치 못한 실패, 사고, 환경 변화로 언제든 무너질 수 있다.

특히 AI 시대에 들어서면서 이러한 취약성은 더욱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AI는 개인의 사회적 정체성을 위협하거나 약화시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는 AI 때문에 생긴 문제가 아니라 원래부터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었던 특성이다.

즉, 우연한 상황 하나로 언제든 우리는 무용한 존재가 될 수 있었던 것이고 단지 AI가 이를 더 짙게 채색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유퀴즈에서 수학자 허준이 교수가 말한 “근거 있는 자신감은 쉽게 무너진다”는 말이 생각나기도 했다.

우리의 자신감과 가치의 근거가 지식이나 실력 등을 기반으로 한다면 언제든지 대체가 가능해질 수 있고 결과적으론 무너지는 것이다.

만약 나의 가치가 오직 ‘사회적 유용함’에만 있다면 나는 끊임없이 나의 쓸모를 증명하기 위해 스스로를 몰아붙이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기능을 상실하는 순간, 나의 존재 의미 또한 사라지고 만다.


여담이지만 이러한 방식으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려는 사람들은 때로 허세나 과도한 자신감을 드러내기도 한다. 허세는 말할 것도 없지만 과도한 자신감조차 개인의 진정성이 흐려지는 태도와도 맞닿아 있을지 몰라서 인간관계에서의 거부감이 드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언발란스


요즘 재밌게 봤던 허경환 님의 유행어인 '언발란스한~'이 떠올랐다.

결국 자아란 내면을 돌볼 줄 아는 힘과 사회적 역할을 수행하는 능력 사이의 밸런스 위에 존재하는 듯하다.

어느 하나에만 의존하는 삶은 지나치게 낭만적이거나, 혹은 지나치게 현실적이다.


어쩌면 타인과 나 자신을 오직 ‘쓸모’라는 잣대로 평가하는 사고방식 자체가 이미 우리를 ‘벌레’로 만들고 있는지도 모른다. 사회적 역할을 잃더라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단단한 내면이 필요하며, 동시에 내면이 흔들리지 않도록 사회적 역할을 성실히 수행하는 나 또한 중요하다.

그것이야말로 갑작스러운 ‘변신’의 순간에도 우리가 인간다움을 잃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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