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급류>에서는 서로의 아픔을 공유하는 도담과 해솔 이야기가 흥미롭게 전개된다.
정말 흥미로운 주제를 담고있으니 꼭 읽어보길 추천한다.
책을 덮고 가장 오래 여운이 남았던 주제는 단연코 ‘사랑’이다.
이 책에는 여러 인물들의 사랑이 다양한 형태로 등장한다.
누군가를 지키기 위한 사랑
나를 지키기 위한 사랑
말하지 않는 사랑과 말하는 사랑
참는 사랑
현실적인 사랑
감정만 불타는 사랑
생각과 감정이 불일치하는 사랑
헌신적인 사랑과 헌신하지 않는 사랑
이렇게나 다양한 사랑의 형태가 한 권의 책 안에 담겨 있었다.
그중에서도 나는 낙차가 가장 컸던 도담이 가장 오래 마음에 남았다.
그래서 도담의 시선에서 표현된 사랑을 먼저 살펴보고 싶다.
사랑은 급류와 같은 위험한 이름이었다.
휩쓸려 버리는 것이고, 모든 것을 잃게 되는 것, 발가벗은 시체로 떠오르는 것, 다슬기가 온몸을 뒤덮는 것이다.
더는 사랑에 빠지고 싶지 않았다. 왜 사랑에 ‘빠진다’고 하는 걸까. 물에 빠지다. 늪에 빠지다. 함정에 빠지다. 절망에 빠지다. 빠진다는 건 빠져나와야 한다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 하나 건사하기도 힘든 세상에서 서로를 의지한다는 건 함께 가라앉는 것 같았기에.
도담은 더 이상 먼저 손 내미는 사람이 아니었다.
도담은 그날 이후 자기감정을 의심하는 사람으로 자라났다. 누군가에게 끌리는 감정을 느끼면 강하게 의심했고, 행복을 느끼면 자신이 겪게 될 낙차를 두려워했다.
오직 사랑만이 최고라고 조금의 의심도 없이 말하는 사람들, 그들에게 사랑은 종교나 다름없었다. 언제나 사랑만이 답이라는 허술한 교리를 가진. 사람을 믿지 못하고 사랑을 믿지 않는 나 같은 사람은 사랑스럽지 않겠지. 도담도 모르는 건 아니었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서로를 아끼고 위하며 사는 사람들이 있고, 그 모습이 아름답기까지 하다는 사실을.
위의 문장만 보면 그녀는 다소 사랑에 대해 냉소적인 시선을 가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도담은 가장 격정적으로 사랑했던 인물이고 또 가장 차가워졌다.
도담은 어느 순간부터 누군가에게 마음을 쉽게 내어주지 못하는 사람이 되었다.
성인이 된 도담에게 사랑은 늘 경계의 대상이었다.
사랑이라는 감정을 의심했고 행복해지는 만큼 다가올 낙차를 먼저 떠올렸고 그 결과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만 노력하는 사람으로 보였다.
도담은 마음에 있는 무거운 짐 때문에 쉽게 사랑에 빠지고 싶어 하지 않는다.
누군가와 감정 소모를 하거나 상대의 기대를 감당할 자신이 없었고, 결국 상대방보다는 현실의 자신을 선택한다. 도담에게 그러한 선택은 어찌 보면 생존 수단 중 하나였을 것이다.
그러다 도담은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상처받은 남자를 만나게 된다.
그들의 사랑은 서로의 감정을 책임지지 않는 관계였다.
서로의 깊은 상처만을 방치한 채, 서로의 외로움을 유지한 채, 현실만을 바라보고 서로를 돌보지 않는 상태로 이어지는 혹한의 사랑이었다.
도담의 사랑이 무거운 현실 속에서 감정을 절제하는 형태라면, 그와 반대되는 사랑이라면 어떨까
현실을 잊기 위해 낭만에 기대는 사랑이다. 도담도 한 때는 그런 사랑에 취해보기도 했다.
당연하게도 그런 사랑은 사막의 열기와 같은 사랑이고 뜨거워서 소멸할 것 같은 사랑이고 현실이 없는 사랑이다.
이런 사랑의 형태들은 개인에 가치관에 따라 나빠보이기도 하지만 좋아보이기도 한다.
현실적인 면이 더 중요하다면 불타는 사랑은 철이 없어 보일테고, 그 반대로 불타는 것을 원하는 사람이라면 현실을 선택한 사람이 냉혈한처럼 보일 수 밖에 없다.
이렇듯 어떠한 사랑은 개인의 가치관에 따라 어느 때는 정답도 되며 오답도 된다.
책을 덮고 나서 시시각각 변하던 사랑의 형태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한동안 난해했다.
그래서 나는 궁금해졌다.
서로 다른 사랑의 방식이 만날 때, 과연 무엇이 가장 중요할까.
사랑에 대한 가치관이 완전히 같은 사람이어야 할까, 아니면 오히려 정반대여야 할까.
아니면 다른 특별한 무언가가 있는 걸까.
에리히 프롬은 관계에서의 사랑을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배우고 연습해야 하는 능력이자 의식적인 결단이라고 말했다.
사랑은 안전한 것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고 선택하는 의지이자 노력이다.
누구나 자신이 추구하는 사랑의 모양이 있고, 그에 대한 고집도 있다.
하지만 사랑은 각자 자신이 가진 가치관과 본능을 그대로 따르는 것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오히려 본능을 거스르는 선택들이 쌓여 하나의 사랑이 된다.
상황이 좋지 않을 때 나를 먼저 챙기고 싶은 마음이 올라오더라도 상대의 손을 한 번 더 잡아보는 것, 혹은 상대에게만 몰두하다가도 미래를 위해 잠시 냉정하게 현실을 직시하는 것.
“나는 원래 이래”라고 고집하지 않고, 자신의 방식이 틀릴 수도 있음을 인정하는 ‘겸손함’.
상대방의 사랑의 모양을 존중하고, 내 세계에 그 사람의 자리를 조금씩 확장해 가는 것.
너 소용돌이에 빠지면 어떻게 해야 하는 줄 알아?
수면에서 나오려 하지 말고 숨 참고 밑바닥까지 잠수해서 빠져나와야 돼.
책 속에 등장하는 수많은 사랑은 각기 다른 수영법을 배우는 과정처럼 느껴졌다.
나 자신을 사랑하는 수영, 상대방만을 사랑하는 수영, 천천히 나아가는 수영, 급하게 나아가는 수영까지.
처음에는 혼자 수영하는 것조차 버거울지 모르지만, 시간이 지나 하나의 수영법만 제대로 익히게 된다면 앞으로 나아가는 일 자체는 더 이상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혼자 헤엄치는 것과, 누군가와 손을 맞잡고 함께 헤엄치는 일은 전혀 다른 문제다.
누군가와 함께 수영하는 일은 훨씬 더 어려운 도전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단순한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오랫동안 지켜온 사랑의 방식을 내려놓을 줄 알아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돌고래처럼, 처음에는 서툴더라도 결국엔 서로 나란히 헤엄치며 물살에 대한 저항을 줄이고 서로를 보호하며 더 빠르게 나아가는 법을 배워가듯이 사랑도 그렇지 않을까.
서로 다른 사랑의 가치관을 이해하려는 마음, 그리고 내가 가진 사랑의 가치관에 대한 겸손.
그리고 도담과 해솔이 불확실하고 안전하지 않은 미래를 선택하면서도 함께 헤엄치려는 용기를 얻을 수 있었던 이유는, 그동안 충분히 사랑에 대한 다양한 ‘안전한 수영법’을 배우고 준비해 왔기 때문일 것이다.
두 사람 앞에 파도가 일고 있었지만 그들은 수영하는 법을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