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에 우리 : 봄비

by 포미
사랑은 봄비처럼 이별은 겨울비처럼

가벼운 간식거리와 혹시 몰라 휴지 몇 장을 챙겨 들고 아무도 없는 극장 안으로 들어선다.
휴지를 챙긴 이유는 영화의 시놉시스 때문이다.
"가장 초라했던 그때, 가장 눈부시던 우리."
눈부신 장면을 보고 눈이 부을까 봐 챙긴 것이었다.


영화에서 정원에게 은호는 편안함을 넘어선 그 이상의 존재였다.
의지할 곳 없는 세상에서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집'과 같은 존재.

하지만 정원은 그 집을 잃을까 두려워하여 친구로 남고 싶어 했다.
그 장면을 보며, 편안함이란 어쩌면 행복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을 함께 품고 있는 감정이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다.


보통 영화에서는 과거를 흑백으로, 현재를 컬러로 표현하지만 이 작품은 그 반대의 방식을 택한다.

이 영화에서 과거는 오히려 더 생생하게 흐르고, 현재는 스쳐 지나가는 시간처럼 느껴진다.

마치 "네가 없던 나를 준비해 본 적이 없어서, 현실의 내가 사라진 것 같다"라고 말해주는 듯했다.


특히 인상 깊었던 대사들이 있었다.
현실에서 정원은 은호가 통화하는 사이 조용히 떠난다.
그녀를 붙잡기 위해 이곳저곳을 헤매다 결국에 정원을 찾게 된다. 그때 정원은 말한다.
"너는 나를 참 잘 찾아…"
이에 은호가 "매번 네가 찾을 수 있을 만큼만 도망치잖아"라고 답하자,
정원은 "도망친 게 아니라, 떠난 거야"라고 말을 고친다.


또 은호는 묻는다.
"내가 그때 지하철을 탔으면?"
정원은 "만약 지하철을 탔으면 우리는 영원히 함께했을 거야. 아니야. 그래도 결국 헤어졌을 거야"라고 답한다.
상대가 힘들어할 것을 알면서도 감정에 솔직하고 싶었던 마음, 그리고 다시 상대를 위로하려는 태도가 동시에 느껴지는 장면이었다.

이후 은호는 "내가 놓친 거네"라며 자책하지만,
정원은 "놓친 게 아니라, 놓은 거야"라고 말해준다.


이 장면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은호가 그토록 열렬히 사랑하고 노력했음에도 자신을 '놓친 사람'이라 여겼다는 것이다.

은호에게는 자신이 충분히 잘해주지 못했던 기억만 남아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고작 종이 한 장 차이처럼 생각하기 나름인 '도망친 것과 떠난 것', '놓친 것과 놓은 것'의 의미는 과연 누가 정해줘야 하는 것일까 고민했다.

결국에 이 생각의 종착지는 각자 정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함께 정의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너에게, 혹은 너는 나에게 행복한 봄비를 맞게 해 주었는가가 아니라
우리가 함께 봄비를 맞았고, 투박하지만 진심이었던 것들이 더 중요했다는 것을 알려주는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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