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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리바라기 Jul 22. 2024

책들의 시간 95. 랑데부

# 김선우, 이 광막한 우주에서 너와 내가 만나_흐름출판

   책을 다 읽고 기분이 좋아졌다. 작가에 대하여도, 책에 대하여도 배경지식이 전혀 없었지만, 그냥 이 책을 읽고 싶다고 생각한 건, 짧은 수필집이란 생각과 책 속 그림들이 마음을 붙들었기 때문이었다. 또 김숙의 추천사, 단 몇 줄의 짧은 추천사였지만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추천하는 책이니,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다 읽고는 참 좋아서 가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두 권을 주문했다. 한 권은 내가 가지고, 한 권은 며칠 뒤에 만나기로 약속한 제자에게 주어야겠다.   

  

  화가인지도 몰랐다. 김선우 작가님이. 책을 읽으면서 전시회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직접 그림을 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어, 혹 전시회가 열리고 있는 건 아닌지 찾아보기도 했다. 지금은 전시회가 없지만, 나중에라도 미술관에서 직접 그림을 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그럴 수 있을 것 같은 느낌. 왜냐하면 나는 이제 김선우 작가님의 이름을 알고 있으니까. 나에게 또 하나의 마음의 원, 어떤 영역이 생긴 기분이다.      

  책 속 26쪽에 나오는 그림(Life is wonderful)은 많이 본 그림이었다. 익숙하기도 했으며, 어떤 포스터의 느낌이 들기도 한. 분명 직접 보지는 않았겠지만, 인터넷 검색을 통해 보았으리라. 그래서 작가님이 표현하고자 한 상징성에 공감이 갔다. 작가님은 도도새를 그리는 화가로 유명했다. 도도새의 일화를 처음 알게 되어, 재미있기도 했고, 날 수 없는 ‘새 인간’과 스스로 날기를 포기한 ‘도도새’와의 연결고리도 재미있었다. 하지만 책을 읽을수록 그림 속 도도새는 나에게 현대인의 비극으로 다가온 것이 아니라, 쉼과 꿈, 삶과 희망으로 다가왔다. 그림이 참 좋았다.      


1. 라보레무스(LABOREMUS), 그리고 행복


 이것은 비단 예술에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닐 겁니다. 삶을 살아가며 ‘하고 싶은 일’을 더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하고 싶지 않은 일’의 비율을 필사적으로 줄여가는 것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과정에서 ‘원하는 일’과 ‘현실 세계’와 관계를 맺는 방식, 책임을 담보하는 방법을 자연스럽게 체득하게 됩니다. 그래서 제가 생각하는 ‘직업적 순수성’의 척도란, 자신의 일을 대하는 책임감의 크기와 그 정교함의 정도입니다. 제가 느끼기에는 ‘일’이 ‘업(業)’이 되는 방식이 그렇습니다. (21쪽)      


  가장 좋아하는 일이 직업이 된다는 건 그 일이 더 이상 개인적인 취미의 영역에 머물 수 없음을 의미합니다. 현대사회에서 정의하는 ‘직업’이란, 좋게 포장하더라도 결국 생존과 직결되어 있습니다. 외부의 무수한 평가 속에서 납득 가능하고 타당한 책임을 담보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좋아하는 것과 인정받는 것, 직업인으로서 예술가의 딜레마는 꽤나 복잡합니다.(158쪽)


  ‘라보레무스(LABOREMUS)’의 뜻은 책을 읽고서야 알게 되었다. 능수능란하고 강인했다는 평가를 받는 로마 황제 중 누군가의 유언, ‘자, 일을 계속 하자’라는 의미. 책을 읽으면서 내내 느꼈던 마음 중의 하나는 ‘성실한 일상’이었다. 작가님은 일정한 시간에 출근하듯 작업실에 가서 내내 그림을 그리고, 일을 마치면 달리기를 하고 집에 들어가는 사람이었다.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생각나기도 했고. 


  나를 대표하는 이미지에도 성실함이 있다. 그래서 나는 성실한 어떤 사람에 대한 관대한 마음의 지지와 응원이 있다. 작가님의 그런 모습이 끌렸는지도 모른다.      

  그러면서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 그것이 주는 감사함에 대하여 생각했다. 

  예술가의 딜레마일 것 같다. 좋아하는 일이 직업이 된다는 것의 의미. 


  대학교 2학년 때부터 지금까지, 나는 가르치는 일 외에 다른 일을 해 본 적이 없다. 아르바이트로 특별한 어떤 일들을 하긴 했지만, 결국 직업의 범주에서는 늘 ‘선생님’, 즉 ‘가르치는 일’이 있었다.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기도 했으며, 지금은 이렇게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고. 감사한 일이다.      

  작가님이 정의한 ‘직업적 순수성’의 척도. 자신의 일을 대하는 책임감의 크기와 정교함의 정도. 처음 선택한 아르바이트가 학원강사였고, 그것을 벗어나지 못한 채 야간학교에서 나이 많으신 학생들을 가르치는 봉사활동을 했으며, 그리고 지금은 학교에서 일을 하고 있다. 처음엔 책임감이 큰 만큼 정교함도 가지고 있었으나 지금은 비슷하게 굴러가는 하루와 한 달과 일 년에 익숙해져서 정교함이 줄어들고 있다. 그럼에도 교사라는 직업이 주는 사명감에 대하여는 늘 생각한다. 어떤 선생님을 만나냐는 삶의 복불복이라 할지라도 나는 좋은 선생님이 되고 싶은 마음, 그래도 괜찮은 선생님이 되고 싶은 마음이 있다. 그러고 싶은 마음이 여전한 건, 내가 이 일을 참 좋아하기 때문이라는 것, 그래서 잘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는 것. 다행히 하고 싶은 일을 직업으로 삼고 있다는 행운 때문이라는 것을 잘 안다. 참 감사한 일이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맛보게 되는 여전한 행복, 그것이 나에겐 행운이다.      


  물감을 잔뜩 산 영수증에 작가님이 적은 ‘라보레무스(LABOREMUS)’. 일을 계속하자. 그렇게 일상을 살아가는 것, 그림을 그리는 것, 그리고 좋아하는 일로 인정받는 것, 그 과정 가운데 작가님은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나는 언제 꺾이게 될까?’ 그 질문에 대한 고민과 불안이 작가님을 더 오래 좋아하는 일을 하게 되는 사람으로 만들 것 같단 생각을 해 본다.      


2. 눈물


  그러던 어느 날, 새벽의 어둠 속에서 문득 한 표지석을 발견했습니다. 목적지인 산티아고까지의 거리가 40킬로미터도 채 남아있지 않은 걸 알려주고 있었습니다. 여정이 끝난 것도 아니었는데 자꾸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그 새벽의 숲길 위로 오래도록 울며 걸었습니다. 그 눈물은 처음 순례길을 걸었던 10년 전의 저에게 건네는 위로이자 안부였습니다 

  이제는 스스로에게 조금 더 당당해졌다고, 긴 방황 끝에 그 초라했던 두 손이 나만의 쓸모를 찾았다고, 그리고 마침내 이곳에서 오래도록 너를 만나러 돌아왔다고. (98쪽)     

  여태껏 그렇게 완벽한 춤을 본 적이 없었습니다. 중력조차 방해하지 못하는 자유롭고 숭고한 춤, 그 순간, 저는 어디에서도 얻을 수 없는 종류의 미적인 경이로움을 느꼈습니다. 동시에 예술을 업으로 삼아 그 일에 종사하는 한 인간으로서, 어떠한 방법으로도 흉내 낼 수 없을 그 절대적인 미(美)에서 비롯되는 무력감과 충만함의 감각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라 그만 저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고 말았습니다. 그런 압도적인 아름다움 앞에서 저의 창작이 이 세상에서 전혀 무용(無用) 한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136쪽)


  순례길과 오로라. 인용한 부분은 작가님이 순례길을 다시 걸었을 때 느낀 마음과 오로라를 보고 눈물을 흘렸던 경험을 적은 부분이다. 책을 읽으면서 눈물을 흘리는 순간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다. 과거의 자신에게 건네는 위로와 안부의 눈물과 압도적인 아름다움 앞에서 한없이 작은 자신을 느낄 때 흘리는 눈물.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참 다른 눈물이다.    

   

  나는 언제 눈물을 흘렸던가? 아직 나에게 건네는 위로이자 안부였던 눈물을 잘 생각나지 않는다. 하지만 나도 경이로운 자연 앞에서 눈물을 흘렸던 적이 있었다. 올 초 강릉 일주일 살기를 하면서 정동진 해돋이를 보았다. 새벽에 차를 달려 정동진까지 달려갔을 때 이미 많은 사람들이 모래사장에 서 있었다. 하늘은 해가 뜰 것임을 미리 알려주듯 밝아있었고, 저 멀리 구름이 새빨갛게 물들면서 해가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일출. ‘정말 예쁘다’를 입 밖으로 내뱉는 순간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새로운 해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좋은 사람과 함께 하는 순간이기도 했지만, 다른 감정도 함께였다. 압도적인 아름다움 앞에서 창작이 무용하다고 여겼던 작가의 마음에 비할 수는 없지만, 나는 해돋이 앞에 나보다 더 크고 높은 어떤 존재에 대한 감사가 먼저 나왔다. 그것이 눈물이었고. 감사와 반성과 안도와 기쁨이 뒤섞인 어떤 감정의 표현이었다.      


3. 정리


  철없던 시절의 우리가 무작정 두려워했던 ‘보통의 삶’이란, 어쩌면 남들과 확연히 구분되는 특별함을 좇는 일이 아닌, 결국 각자의 삶 속에서 자신만의 ‘보통’을 찾아가기 위한 단 하나의 특별한 여정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합니다. 

  모자라거나, 넘치지 않는 그 보통의 균형을 찾아가는 삶의 고단한 여정을 지속하는 데에는 스스로에 대한 믿음도 중요하지만, 결국 나의 보통 속에서 가장 반짝이는 무언가를 알아차려주는 이들이 있기에 우리의 삶은 비로소 서로에게 특별한 의미로 다가오게 됩니다.      

  우리를 이 세상 속에서 함께 존재하게 하는 일.

  서로에게 무해한, 보통의 삶을 살아가는 일이란 그런 것일지도 모릅니다. (113쪽)


  예술가의 삶에 대하여 생각해 본다. 참 멀리 있다고, 나와는 다른 어떤 존재라고, 흔히들 이야기하는 4차원일지도 모른다고 그렇게 생각했더랬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학교에서 볼 수 있는 어떤 선생님을 만난 기분이었다. 또 내가 참 좋아하는 누군가도 생각나게 만들었고, 그에게 도도새와 별빛과 수풀의 그림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서로에게 무해한, 보통의 삶’이란 구절도 참 좋았다. 보통의 사람들이 모여, 서로 각자의 빛남을 발견해 주는 것이 삶이란 생각에, 내 옆에 참 좋은 사람들이 있음이 벅차도록 감동적이었다. 나의 빛남을 발견해 주는 그들이기에.           


  작고 아름다운 섬, 천적이 없는 평화로운 환경 속에서 날아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 결국 날지 못하던 새 도도새, 도도새가 주인공인 작가의 그림은 날지 못해도 꿈을 찾아, 별빛을 찾아, 그리고 탐험의 시간으로 걸어가는 많은 도도새를 보여준다. 책에 실려 있는 그림 속 도도새 중의 하나가 나임을 발견하는 시간이었다. 참 좋다.      


[이야기 나눠 보기]

1) ‘라보레무스(LABOREMUS)’의 뜻은 ‘자, 일을 계속하자’입니다. 지금 나는 무슨 일을 하고 있으며, 그것이 업(業)과는 어떤 관계가 있는지 이야기를 나눠 봅시다. 

2) 위로이자 안부였던 눈물, 또는 압도적인 아름다움 앞에서 무용한 자신을 깨달아 흘리는 눈물, 그런 눈물을 흘렸던 경험이 있는지 이야기를 나눠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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